베를린에서 25km 떨어진 '포츠담'은 도시 면적의 75%가 녹지대이고, 20개의 강과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소도시이다. 그러나 이곳 포츠담은 우리에게 '포츠담 선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포츠담 선언'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만나 전후처리를 논의한 회담이다. 당시 상징적인 베를린에서 회담하려고 했으나, 베를린은 폭격으로 변변한 건물이 남아있지 않아서 이곳 포츠담에 있는 '체첼리엔호프 궁전'에서 회담을 하게 되었다. 이 회담에서 우리 역사를 뒤흔드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데,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전제로 하되, 미국이 2개월전 개발한 핵무기 사용과 한반도의 독립이 확인되었다. 물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거절했고, 이후 핵폭탄이 투여되었으며, 소련의 한반도 지배를 꺼렸던 미국이 한반도의 남쪽을 세력권에 두게 되었다. 이런 내용은 포츠담 회담의 밀약사항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결국 한반도는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으로 분단되는 비극의 역사를 겪게 되었다.
바로 이곳 포츠담에 세계문화 유산인 '상수시 궁전'과 공원이 있다. 프로이센 제 3대 국왕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2 1712~1786)'의 소망이 담긴 곳이다. 왕은 '볼테르'의 시와 문학을 사랑한 감수성 깊은 사람이었기에 '군인왕'이라고 불리던 아버지와 잦은 충돌이 있었고, 18세 때에는 몰래 망명하려다가 들켜서 가장 친한 친구가 참수당하고 자신은 18개월간 감금당하는 일까지 겪게 된다. 그후 '프리드리히 2세'는 마음을 바꿔 왕이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감수성 깊은 이 왕은 전략가이기도 해서 나폴레옹까지 극찬하게 한 전투의 승리자가 되기도 한다. '감자'를 들여와서 국민들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등 노심초사 정치에 힘써 '감자 대왕'이라는 별칭까지 가진 왕이었지만, 개인은 행복하지 않았던 듯하다. 아내와도 사이가 안 좋았고 자식도 없었다고 한다. 장례는 검소하게 하고, 개들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호엔촐레른 왕가 무덤에 묻혔다가 독일 통일후에야 그의 유언대로 이곳 포도밭 계단에 있는 개들 무덤 옆에 묻히게 된다. 그가 잠시나마 '근심이 없는(Sanssouci)' 곳에서 사랑하는 개들과 쉬고, 죽어서도 개들 옆에 묻히고 싶어했다는 이 상수시 궁전과 공원에는 섬세하고 감성 넘치는 이 왕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마음껏 펼쳐져 있다.
♠ 상수시 궁전 Sanssouci Palace
1742~ 1747년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2. 재위 1740~1786)의 명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지은 여름 궁전이다. 왕이 직접 스케치하였고, '한스 게오르크 벤체슬라우스 본 크노벨도르프Georg Wenzeslaus von Knobelsdorff'가 설계했다고 한다.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라는 뜻을 가진 '상수시 궁전'은 노란 색의 약 97m 단층건물 이다. 실내는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되었으며, 프리드리히 2세의 집무실과 볼테르의 방, 왕비의 방, 대리석의 연회장과 화려한 콘서트홀 등이 있다.
포츠담 외곽의 언덕에 세워진 궁전이었기에 언덕위에 '상수시 궁전'을 짓고, 언덕아래 비탈을 멋진 계단식 포도농원으로 꾸미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궁전에서 대분수가 있는 평지로 내려가는 6단의 테라스 계단을 만들고 테레스 아래 옹벽에는 포도밭을 조성했다.
궁전 동쪽에는 회화관(Bildergalerie)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프로이센 왕가에서 수집한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기도 한데, 루벤스와 반 다이크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가 있다고 한다.
▶ 중국인 집 Chinese House
1755~1764년 사이에 Johann Gottfried Buring가 설계하여 지은 건축물이다. 동양건축 양식을 본뜨고 장식은 로코코 요소를 결합하였다. 당시 서구인들의 중국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건물 외부는 금동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고, 야자수 모양의 기둥 사이에 차를 마시거나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조각이 놓여 있다. 내부에는 중국과 마이센에서 가져온 여러 귀중한 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 로마 목욕탕 Roman Baths
1840년에 완공되었으며, 이탈리아 문화에 심취한 빌헬름 4세가 건축가 샤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과 그의 제자인 루트비히 페르시우스(Ludwig persius)에게 명해 지어진 로마스타일의 목욕탕이다. 고대 이탈리아의 별장 양식으로 지어진 이 집은 가드너의 집, 차 마시는 정자, 여름 별장, 아케이드 홀, 재현된 로마 목욕탕 등이 있다.
▶ 샤를로텐호프 궁전 Charlottenhof Palace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상수시 공원 끝에 있는 땅을 구입하여 그의 아들(프레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주었다. 왕세자는 건축가 샤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에게 의뢰하여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하였다. 싱켈은 실내의 가구까지 직접 디자인했고, 파란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하여 1826~1829년에 완성했다. 건물 외부는 아이보리색의 벽면에 그리스식 기둥을 가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이다. 건물 내부는 10개의 방이 있는데, 인테리어와 당시의 가구가 잘 보존되어 있어, 하루 2번 가이드투어만 허용된다. 건물의 보호를 위해 신발에 커다란 덧신을 신고 관람하도록 한다. 특히 '텐트방(tent room)'이 유명한데, 손님 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원래 평평하고 습지가 있었던 지역이었는데, 잔디와 연못이 있는 영국식 정원으로 꾸몄다. '프레드리히 빌헬름 4세'는 이 여름 궁전을 사랑해서 스스로를 농담삼아 '시암 하우스 건축가'라고 불렀다고 한다. '시암'은 '자유의 땅'을 의미하며, 왕세자가 생각했던 이 궁전의 이름이었다.
정식 이름은 1790~ 1794년 소유주였던 마리아 샤를로테 폰 겐츠코브(Maria Charlotte von Gentzkow)를 기념해서 '샤를로텐호프 궁전'으로 지었다.
▶신궁전(Neues Palais Potsdam)
7년 전쟁이 끝나던 1763년 시작하여 1769년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다. 18세기 건축 중 가장 큰 규모로 지은 이궁전은 왕들의 거주지라기 보다는 왕족과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지은 것이라 하니, 프로이센의 긍지와 자존심을 드러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궁전 설계 건축가 칼 폰 곤타르트(carl von Gontard)가 총책임자였으며, 동서로 높이 220m의 3층 건물로 중앙부 돔 꼭대기에 프로이센 왕관을 받치고 있는 세명의 여신들이 있다. 내부는 왕실과 귀들들과의 접견을 위한 장소로 200개 이상의 방과 극장까지 있는 거대하면서도 호화로운 궁전이었다. 천장의 프레스코화, 금빛을 자랑하는 치장 벽토 장식, 공들여 꾸민 벽, 그림으로 뒤덮인 화려한 벽을 통해 18세기 당시의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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