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섬(무제움스인젤)
박물관 섬(Museumsinsel 무제움스인젤)은 미술 작품과 건축물이 5개 박물관에 나누어 전시되고 있는 베를린 시 한 가운데 있는 섬이다. 마치 우리나라 여의도와 같이 슈프레 강 모래톱이 만든 섬일 것 같다. 5개 박물관은 '페르가몬 박물관(바빌론, 메소포타미아 시대 유물), 신 박물관(이집트, 선사시대), 구 박물관(고대 그리스 로마 유물), 구 국립 미술관(19세기 유럽 , 마네 로뎅 작품 등), 보데 박물관(조각, 비잔틴 전시)'이다. 또 베를린 대성당이 구 박물관 옆에 있다.
이 박물관은 프로이센 왕국의 프레드리히 빌헬름 4세가 짓기 시작하여 여러 대를 거치며 프로이센 왕국의 왕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왕가의 소장품들이 1918년 이후에 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에 위탁되면서 대중에게 공개되기 시작하였다. 냉전 당시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면서 프로이센 왕가의 소장품들 역시 동.서독으로 나뉘어졌으나 통일후 다시 박물관 섬으로 모았다. 1999년에 박물관 섬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박물관 섬(Museumsinsel 무제움스인젤)은 그 규모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하루에 돌아보기에는 너무 힘겹다. 엄청난 양의 미술품들을 한꺼번에 보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은 늘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된다. 그리고 예정된 결과대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머리에 쥐가 나서 쓰러질 지경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 국립 박물관도 한꺼번에 다 못보고, '도자기'만 본다든지, '불상'만 본다든지 하는데, 박물관 섬 전체를 하루에 돌아볼 계획을 했으니.... 중간에 자포자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언제쯤 이런 여행을 그만 두게 될까?
▣ 보데 박물관 (Bode Museum)
중세부터 18세기까지의 유럽 조각품, '틸만 리멘슈나이더, 도나텔로, 조반니 피사노' 등의 작품. 동전 콜렉션, 석관, 상아조각 등 몇몇의 비잔틴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박물관학의 창시자이며 프로이센 문화재단의 총감독이었던 '빌헬름 폰 보데'의 이름을 따서 박물관의 이름을 삼았다. 이곳의 컬렉션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수집한 조각품과 비잔틴 미술이 주를 이룬다
♣ 페르가몬 박물관 ( Pergamonmuseum)
20세기초, 중세 '베르가마(Bergama. 현재 터키 지역.)' 유적을 발굴하여, 고대 그리스 도시의 하나인 페르가몬의 아크로 폴리스에 있던 제단을 가져와서 '페르가몬' 박물관을 건축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그리스, 로마, 바빌론, 중동의 고전 조각품과 건축물을 전시하였으며, 박물관 섬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고대 컬렉션, 이슬람 예술 전시관, 고대 중근동 전시관이 있다. 바빌론의 성문이던 밝은 청색의 이슈타르문(Ischtar-Tor), 로마 밀레투스 시장의 문(Markttor von Milet), 요르단의 유적 므샤타 궁전의 피사드(Mschstta-Fassade) 등이 유명하다. 페르가몬 제단은 보수중이라 2000년까지 개방되지 않는다.
처음 접하는 페르시아 중동의 문화재에 휘둥그레지지만 마음이 편치가 않다. 모두가 약탈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관람 도중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나가 버렸다. 조각상이나 도자기 등을 볼 때는 그래도 그 덕에 인류 문화재가 보존되지 않았나 순기능으로 눈감았지만, 남의 나라 신전의 문짝이나 건물의 일부 등을 떼서 온 것을 보자,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배에 싣기엔 어머어마하게 큰 돌덩어리들을 잘라서 싣고 왔다는 것이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탐욕의 한계치를 보는 느낌이다. 일찌기 '인간의 조건'을 쓴 앙드레 말로가 앙코르와트의 유적을 배에 몰래 싣고 오다가 걸려서 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망연자실해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에 깊이 고뇌했던 인간조차 탐욕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저질러졌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탐욕적인 도적질이 저토록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도덕의 얼굴은 없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거의 헐값에 사거나 망해가는 제국의 황제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유물은 황제 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국민 전체와 역사 전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석굴암을 통째로 가져가서 지금 일본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이 엄청난 도적질이 실감난다. 비단, 석굴암 뿐만이 아니라 부석사 대웅전을, 경복궁 근정전을, 다보탑과 석가탑을 몽땅 들어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리고 절대 돌려주지 않는다면?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들을 보며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던 것은 작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낯 뜨거워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왠지 도적질을 방조한 느낌이랄까?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내내 불편했다.
▶이슈타르 문 (바빌론의 문, Ischtar -Tor von Babylon)
'이슈타르 문'은 기원전 575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지시로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지어진 내성의 8번째 성문이다. 성문의 벽돌들은 고대에 매우 귀했던 보석 '라피스 라줄리' 처럼 고귀하게 보이기 위해 푸른 유약을 입혀 구웠다.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높은 벽 사이에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오면 이슈타르 문으로 이어진다. 이 길의 양편 벽에 '이슈타르 여신'의 상징인 사자의 행렬이 180m이어지는데 양편에 각각 60마리씩 새겨져 있다. 이 길은 '적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길의 끝에 '이슈타르 문'이 있는데, 문에는 바빌로니아의 주신인 '마르둑'과 '아다드' 의 상징인 '용(시루쉬)'와 '오록스'가 새겨져 있다.
이슈타르 문과 그 앞의 거리에서는 1년에 한번 새해를 맞이하여 12일 동안 축제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축제는 춘분(밤과 낮의 길이가 동일해지는 때, 대략 3월 21일경) 에 시작하는데, 새해와 농경의 시작을 축하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거대한 푸른 벽 사이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신들의 행렬과 함께 하는 것은 엄청난 기쁨과 위안이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발굴되어 당시에 발굴된 벽돌들을 가지고 복원하였다. 현재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은 이중문인 '이슈타르 문' 중 높이 14미터, 너비 30미터의 작은 문이다. 더 큰 뒷문은 전시하기에는 너무 커서 창고안에 있다. 비극적 역사는 계속되는데 이라크 바빌론 유적지에서도 사담 후세인 정권 때 '이슈타르의 문'을 복원했었는데,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손되었다고 한다.
* 용 - 마르둑Marduk 신의 상징 , 태양의 아들. 머리, 혀, 꼬리는 뱀을 닮았으며, 머리에는 뿔이 하나 있고, 목은 길고 갈기가 나 있으며, 몸통에는 비늘이 나 있다. 앞다리와 발은 사자의 모습, 뒷다리와 발은 독수리의 모습이며 발톱이 길고 날카롭다.
* 황소(오록스) - 아다드Adad 신의 상징, 날씨의 신, 폭풍우의 신. 풍요를 내려주는 비를 주관하는 신으로 머리에 뿔이 있다.
* 사자 - 이슈타르 Ischtar 신의 상징 , 사랑과 전쟁의 신, 다산과 풍요의 신
▶ 밀레토스의 시장문Markttor von Milet
'밀레토스'는 오늘날 터키 남부 '에게해'에 있는 도시였다. '밀레토스 시장문'은 2세기 경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시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2층짜리의 이 문은 두 개의 광장인 아고라와 남쪽 시장 사이의 관문으로 부유한 상업 도시의 한복판에 지어졌다. 129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10세기 경 지진으로 붕괴된 것을 1900년대 초에 재발굴하여 독일로 가져온 것이다. 가로 30m, 높이 17m 높이, 깊이 5m 의 2층 구조물로 3개의 출입구가 있으며, 1층은 이오니아 식, 2층은 코린트 식 기둥이 떠 받들고 있다. 지붕과 바닥 사이에는 화려한 조각이 장식되어 있고, 1층에는 두 황제의 조각상들이 있다. 문의 60% 정도는 원래의 고대 대리석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전 유물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 된 기념물이다.
▶므샤타 궁전 Msㅊhatta Castle 유적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라는 도시의 남쪽에서 발견된 궁전 유물이다. 743~4년 이슬람 왕조인 '우미야드 칼리프 2세'에 의해 겨울궁전으로 지어지다가 칼리프가 암살되면서 완공되지 못했고, 10~11세기 사이에 지진이 일어나 파괴되었다. 그후 1840년에 발굴되면서 건물의 외관을 오스만의 술탄 '압둘 하미드 2세'가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전시되고 있는 유물은 길이는 33m, 높이는 5m 크기의 궁전 정문 외관을 장식했던 부분으로 초기 이슬람 예술 및 건축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한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돋을 새김 형식으로 제작했는데, 삼각형과 역삼각형의 형태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면의 왼쪽의 장식에는 식물들과 함께 사자, 새 등 동물들이 돋을 새김되어 있고 정면 오른쪽에는 동물 장식이 없는데, 이것은 오른 쪽이 모스크의 외벽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 신 박물관(Neues Museum)
1859년 스튈러(Friedrich August Stueler)의 설계로 완공됐다. 2차 대전 중 파괴되었고, 영국 건축가 네이비드 치퍼(David Chipperfield)가 재건했다. 미라와 조각, 석관 등 고대 이집트 유물과 선사시대 유물, 유럽 청동기 시대 유물 '황금모자' 등을 전시하고 있다.
Bust of Queen Nefertiti from Tell el-Amarna, ÄM 21300, New Kingdom, 18th Dynasty, ca. 1351–1334 BCE 네페르티티 여왕(BC 1370~1330)은 이집트 제 18왕조의 파라오 아크나톤(BC1353~36)의 왕비이다. 투탕카멘의 양어머니로 고대 이집트 왕비 중 최고의 미녀로 알려졌다. 석회석에 여러겹의 채색토를 입혀 조각했다. 목의 힘줄 및 입술 주변의 주름까지 선명하게 조각되었는데, 왼쪽 눈동자가 없다. 미완성인지, 빠졌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독일로 밀반출된 대표적 약탈 문화재의 하나로 이집트로부터 반환 요구를 받고 있다. *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
The Xanten Youth(크샨텐의 소년). Romab. BC 1C. 기원전 1세기의 헬레니즘 양식의 조각상인데, 1858년 독일 크샨텐 지역이 어부들이 발견하여, 이름이 '크샨텐의 소년'이 되었다고 한다. 왼손의 동작으로 미루어 오른 손에는 쟁반이나 그릇을 들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 구 박물관 (Altes Museum)
1830년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설계로 박물관 섬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박물관이다. 이오니아 기둥이 떠받치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 멋지다. 1층 갤러리에선 조각과 꽃병, 묘지 세공품, 보석 등 고대 그리스의 생활 양식과 관련된 것을, 위층에는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이었던 '아가토테몬( Agathos Daimon)'의 몸에 로마 황제 '히드리아누스'의 동성애 애인이었던 '안티누스(Antinous)' 의 머리를 붙여 놓은 것이다. '안티누스'는 나일강에 익사했는데, 황제 히드리아누스가 그의 사원을 지어 그를 신격화했다. 그후 이 미소년의 얼굴은 아주 인기 있는 주제였고, 많은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아가토테몬'은 주로 '뱀'으로 표현되는데, '고귀한 영혼', '포도밭과 곡식의 정령' ,'행운, 건강, 지혜' ,'가정의 수호신' 등으로 알려져 집집마다 많이 그려졌다. 조각상의 왼 손에 있는 것이 '뱀'과 '풍요의 뿔(Cornucopia)' 이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라스와 강의 신 '아켈로우스'가 싸울 때, 헤라클라스가 황소로 변한 '아켈로우스'의 뿔을 뽑아 승리를 차지한다. 그후 풍요의 여신인 '코피나'가 이 뿔에 축복을 내려주어 이 뿔에서는 끊임없이 과일과 꽃 들이 넘쳐나게 되면서 풍요를 상징하는 뿔이 되었다.
▶ 그리스 도자기
고대 그리스 도자기의 역사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가야 하지만, 기하학적 무늬를 새겼던 기원전 1000년 전부터 조금씩 색깔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원전 6~7세기 무렵부터는 흑회식(붉은 바탕에 흑색의 그림) 도자기가 만들어지다가 기원전 5~6세기에 적회식( 검은 바탕에 붉은 그림) 도자기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도자기로는 양쪽에 손잡이 2개가 달린 항아리인 암포라Amphora인데, 물 ,기름, 술, 곡식 등을 저장했다.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의 주제는 주로 영웅, 신화, 연극의 내용, 일상 생활 등인데, 얼굴 표정이나 인물드의 동작이 역동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인물을 그리는 기법은 이집트의 인물 작법과 비슷한 옆모습을 주로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운동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암포라에 담은 올리브 기름을 부상으로 줬다. 올리브 나무가 아테나 여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도 우승컵은 이 암포라의 모양을 본떠서 트로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