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9 독일

베를린 (2019.8.23~24) - 베를린 대성당, 브란덴부르크 문, 라이히스타크 돔, 체크포인트 찰리, 홀로코스트,

여름숲2 2020. 9. 15. 20:25

▶ 마르크스와 엥겔스 조각상

  베를린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이 있다.  '세계를 해석하는 대신 변화시키자' 는 선언으로 한때 전세계 지식인들과 혁명가들의 가슴을 불태웠던 '마르크스'와 그의 영혼의 동지 '엥겔스'를 더이상 그들이 화제가 되지 않는 시대에  갑자기 동상의 형태로 만나는 일은 곤혹스러웠다. 레닌처럼 '동상 따위는 만들지 말라. 결국 비둘기들의 똥으로 범벅이 될 것이니까' 라고 쿨하게 말할 수는 없어도, 작은 공원 한 귀퉁이에 소문도 없이 서 있는 것을 보니 무상하기도 하고, 그래도 조국 땅이라 작은 기념비라도 세웠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동상은 원래 통일 독일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동독시절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통일 후 철거 논란 끝에 겨우 살아남았지만, 지하철 공사 때문에 큰 길가 툭 트인 곳에서 공원 안쪽 외진 곳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앉고 엥겔스는 서 있다.

 

 

 

♣ 베를린 대성당

베를리너 돔(독일어: Berliner Dom)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 개신교 교회이다. 베를린 미테지구(Mitte)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슈프레섬(독일어: Spreeinsel)의 북쪽인 박물관 섬(독일어: Museuminsel)의 랜드마크이다. 독일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최초 건축은 교황의 명에 의해 건립이 되었기 때문에 가톨릭 성당의 건축방식과 각종 성상들과 성체를 보관하는 감실과 가톨릭식의 제대가 설치되었다
종교개혁시기 가톨릭 미사와 유사한 예배형식과 교회건축을 가진 루터교에서 소유하였던 적이 있어서 현재 개신교파에서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루터교 교회의 내외부 장식물과 설치물(제대, 감실, 설교대,개신교에서 만들지도 않고 설치조차 하지 않는 성인들의 조각상과 예수상이 달린 십자가 등등)을 모두 없애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루터교 소유에서 칼뱅파 개신교로 소유가 넘어갔다가 현재는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하는 개신교 교파인 "프러시아 복음주의교회"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다
                                                                 * 위키 백과

이 교회는 1749년~1750년에 초기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것으로, 원래 호엔촐레른 왕가의 묘지로 지어졌기 때문에, 내부에 선제후의 무덤과 프리드리히 1세 부부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밤에 본 베를린 대성당
베를린 성당이 '박물관섬' 가장자리에 있다는 것을 슈프레 Spree 강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성당 입구
벽 장식 조각은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 지도자 들이다.
교회 내부 중앙 제단
독일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레지스터가 113개, 파이프가 7269개라고 한다.  1905년 '벨헬름 자우어Wilhelm Sauer'가 설계한 것인데, 그의 이름을 따서  '자우어 오르간'이라고 불린다. 마침 우리가 가는 날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가 있어서 우리는 이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에서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연주자의 모습
성당 앞에는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이라는 엄청 큰 잔디 광장이 있다.  '환희의 정원'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밤늦도록 광장에는 흥겨움이 넘친다.

 

 

♥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er Tor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 옆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은 1791년 프로이센의 황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건축가 '카를 고르하르트 랑그한스 Carl Gothard Langhans'에게 의뢰하여 지은 문이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참고하여 6개의 도리아식 기둥위에 삼각형 지붕을 얹고, 그 위에 '콰드리가Quadriga,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에 탄 여신상'를 세웠다. 이 콰드리가는 1806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빼앗아 갔는데, 다시 돌아오면서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 Eirene'에서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Victoria '로 바뀌었다. 원래 여신이 들고 있던 깃발에는 월계수 장식만 되어있었는데, 이것을 떡갈나무잎으로 둘러싸인 '철십자(프로이센의 용맹함을 상징)'로 바꾸고 그 위에 프로이센의 상징인 독수리를 추가했다. 나치 시절에는 전쟁터로 행군하는 군사들이 이 문을 지나는 모습을 영화로 촬영해 선전의 수단으로 삼았다. 분단 시절에는 이 문이 베를린 장벽 서쪽에 인접해 있었기에 분단된 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졌었다. 1987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이곳에 한 '고르바초프는 들으시오, 이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연설이 유명하다. 독일 통일 당시에는 서독의 수상 '헬무트 콜'이 이 문을 통해 걸어가 동독의 총리 '한스 모드로우'의 환영을 받기도 했으니, '브란덴부르크 문'은 명실상부하게 베를린 역사의 산 증인이며, 베를린 관광의 1번지이다.   

문 뒤에 보이는 임시 비닐 무대가 오늘 밤 열리는 베를린 필하모니 연주 무대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를 들어보고자 사이트가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접속과 동시에 매진되어서 예매할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는데, 같은 공연이 다음날, '브란덴부르트 문' 앞 광장에서 무료로 있었다. 같은 공연 '베에토벤'의 '합창'이었다. 수많은 베를린 시민들이 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과연 클래식 공연이 가능할까?' 했는데, 놀랍게도 연주가 시작되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들 숨소리도 내지 않고 공연을 즐기고 있었고, 이런 공연 관람 태도는 익숙한 일인 듯 보였다. 무료지만 함부로 들락날락 해서도 안되고 음식물 섭취는 금지되고, 술은 반입이 안된다. 가아드 설치하고 입구에서 가방 검사까지 한다. 물론 콘서트장에서 하는 공연만큼의 음향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한 여름밤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낭만으로는 충분하다. 

 

♣ 라이히슈타크 Reichstag

 '라이히슈타크'는 '제국의회'라는 뜻이다. 1884년 새로운 독일 제국의 '제국의회'로 사용되다가 1933년 공산주의자가 저지른 방화로 훼손되어 히틀러가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이용하였다. 건물은 수리되었으나. 1945년 소련 군대가 이곳에 올린 붉은 깃발이 독일 패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 '라이히슈타크'가 베를린의 인기있는 관광 포인트가 된 이유는 독일 통일 후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의 총책임하에 1999년 완공된 새로운 국회 의사당의 의회 토론실 위에 있는 거대한 유리 돔 때문이다. 이 돔은 원래의 제국의회 건물을 그대로 두고 위에 투명한 유리로 돔을 설치해 씌운 것인데,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 돔에 오르면 의회 내부가 보인다.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의회 진행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정치의 투명성'을 상징하고 있다. 계속해서 원뿔 유리 기둥을 감싼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야외 전망대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베를린의  360로 확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입구
사전예약제로 입장할 수 있다.

 

 

 

◈ 체크포인트 찰리 Checkpoint Charlie

  2차 세계 대전 후에도 동. 서독 간의 이동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1961년 8월 13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의 경계선이 막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철조망과 바리케이트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콘크리트 벽이 되었다.  그래도 외교관과 외국인들이 드나들 필요가 있었기에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프리드리히슈타트의 검문소는 'C'라고 불렸는데, 'C'의 포네틱 코드가 '찰리'여서 '체크포인트 찰리'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앞에는 소련 병사 사진이 뒤에는 미국 병사 사진이 걸려 있다.  한때 이곳에 양국의 탱크가 대치하는 긴장감이 유발되기도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는 1962년 동독을 탈출하던 '페터 페히터'가 총을 맞고 철조망 근처에서 피 흘리는 채로 죽어가는 것이 방치되어 전세계를 경악시킨 일이 있었다. 

* 포네틱 코드 - NATO Phonetic Code. 무전 상황 등에서 소음이 많을 때, 서로의 말을 명확하게 알아듣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약속. 쉬우면서 발음이 분명한 단어와 알파벳이 1대 1로 대응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원래 있었던 부스가 아니라 관광지가 되면서 세운 복제품이다.
소련 병사의 얼굴
미국병사의 얼굴

 

 

♠홀로코스트 추모비 Holocaust Memorial

2005년에 문을 연 축구장 크기의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식 명칭은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는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이 설계했다. 엄숙한 침묵이 깃든 2,711개의 콘크리트 열주가 솟아있다. 출입구가 따로 없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든 접근이 가능하고 자유롭게 이 미로를 둘러볼 수 있다. 관람객이 방향 감각을 잃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곳의 설계 목적이다. 열주는 높이가 각기 다르고, 통로는 밀실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비좁다. 대부분의 관련 기념관과 달리 이곳에선 나치 학살의 피해자인 동성애자와 집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 론리 플래닛 '독일'

 

콘크리트의 열주들은 이렇게 낮은 것부터 사람이 보이지 않는 높은 열주까지 다양하게 서 있다.

 

 

◑ 그밖의 풍경

독일 기차역
우리가 베를린에 있는 동안 묵었던 숙소가 포츠담 역 근처였다. 그래서 매일 이곳에서 지하철을 탔다.
포츠담 역 광장에 있는 '통일정' . 2015년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며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 있는 상량전을 베를린 장벽이 서 있는 자리에 재현한 건축물이다. 강원도 화천 한옥학교에서 우리 소나무로 제작한 다음 이곳 베를린으로 운반해와서 현지에서 조립하고 단청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통일정' 현판은 서예가 소헌 '정도준'이 쓰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인 고권 '김각한' 명장이 글씨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옛 베를린 장벽 세 블록을 구입해 '통일정' 정자 옆의 안내 표지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곳곳에 이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공원으로 만든 흔적들이 있다. 이곳은 포츠담 역 앞이다.
슈프레 강 가의 조형물들
베를린의 상징 '곰'. 베를린의 뜻이 '어린 곰'이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열린 무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