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9 스위스

체르마트 2(2019.8.14.수) - 수네가 5대 호수 트래킹

여름숲2 2020. 8. 29. 01:55
5- 호수의 길 Seenweg 코스 (7.6 km, 약 3시간)
브라우헤르트(Blauherd, 2,580m) → 슈텔리제 (Stellisee, 2,537m) → 그린지제 (Grindjiisee, 2,334m)  
→ 그륀제 (Grunsee,2,300m)   →무수지제 (Moosjiesee, 2,140m) → 라이제 (Leisee, 2,232m)  

 오늘은 마테호른 트래킹 둘째 날이다. 빙하가 만든 호수 5개를 연결한 '수네가 5대 호수 트래킹'이다.  소풍가듯 아침부터 계란을 삶고 도시락을 싸서 가볍게 가기로 한다. 날씨마저 화창하게 개어 제대로 된 스위스의 날씨를 보여준다.  안내서에는 3시간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는 하루종일 놀면서 걸을 생각이다. 

 

  체르마트 기차역에서 고르너그라트 반 승강장 옆길로 10분 정도 걸으면, 수네가 파라다이스행 케이블카 승강장이 나온다. 이런 지하 굴 속을 통과하는 케이블카인데, 5분만에 수네가 파라다이스에 도착한다. 테라스로 나가 장쾌하게 펼쳐지는 전망을 보기로 한다. 그 다음에 8인승 곤돌라로 갈아 타고 가는 블라우헤르트가 오늘 트래킹의 기점이다.

  이 블라우체르크에서 150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로트호른 파라다이스(3100m)에 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마테호른 뿐 아니라 몬테로사 최고봉인 두푸르슈피체부터 바이스호른까지 시원하게 보인다고 한다. '일출 패키지 상품'이 있어 아침 햇살에 황금빛으로 변하는 알프스 산군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수테가 트래킹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지만, 기회가 있다면 시도해보고 싶다.

 

 

수네가 파라다이스 전망대(2300m)

이곳에서 비로소 마테호른의 생생한 모습을 접하게 된다. 역시~ 너 마테호른은 밀당의 고수!  어제는 그렇게 보일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더니, 오늘은 거칠 것 없이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아! 좋다!

 

 

①슈텔리제 (Stellisee, 2,537m)

 

블라우헤르트 역에서 조금만 길따라 걸으면 첫번 째 호수인 슈텔리제 호수가 나온다. 생각보다 아담하지만, 가릴 것 없는 풍광에 마테호른의 반영이 멋진 곳이다.

다들 그렇게 원하던 호수에 비친 마테호른의 모습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마테호른의 삼각형은  낮아보이지만, 일년에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쉽지 않은 직벽 코스이다. 초등은 웜퍼가 1865년 7월 14일에 이루었으나, 하산길에 7명의 등정자 중 4명이 추락사하는 참사를 겪었다고 한다. 호락호락하게 곁을 내주지 않는 마테호른이다. 그래서 더 끌리는 지도 모르지만.

 

 

여름 2000m 고지에는 이렇게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마저 하나의 풍광이 된다. 

  길따라 가다 보면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계곡도 만나고, 작은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뜻밖의 풍경을 접하기도 한다. 우리는 작은 다리 난간에 일렬로 걸터앉아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 별다를 것 없는 도시락이었으나, 커피와 함께 먹는 크로아상은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트래킹이 좋은 것은 이런 평화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무엇엔가 끊임없이 쫓기는 삶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이해관계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걷고 먹고 숨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러고나면 조금 살 것 같아져서 산 아래로 내려갔을 때쯤 되면, 조금 씩씩해진다.  비단 마테호른 같은 특별한 산 뿐만 아니라 동네의 작은 산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주말마다 북한산의 의상능선, 도봉산의 능선들을 걸으며 머리속에 엉켜있던 온갖 생각들을 말끔하게 비웠었다. 비록 엉켰던 것들이 풀리지 않았을지는 모르나, 월요일쯤엔 말끔하게 비워진 머리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니, 산길을 걷는 일이 오래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게다가 산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시로 바뀌는 자연의 풍광과 야생화가 있어 그 모든 아름다움에 홀릭하게 했으니 산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것이 내가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행길마다 간단한 트래킹을 넣은 이유이기도 하다.

 

 

②그린지제 (Grindjiisee, 2,334m)  

 

 슈텔리제를 한바뀌 돌아 비탈길을 20분 정도 걸어 내려오다 보면 키 큰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길 오른 쪽에 있는 이 그린지제를 놓치기가 쉽다. 우리도 길을 놓쳐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았는데, 슈텔리제보다 작은 호수였다. 물빛은 나무 그림자 탓인지 청그린에 가까웠다.

 

역시 마테호른이 호수에 비친다.  호수에 비치는 마테호른도 아름답지만, 우리는 티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아래 우뚝 솟아있는 마테호른을 넋놓고 바라본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얼굴이다. 꼭대기만 삼각형이고, 원만한 능선위에 우뚝 서 있는 형상이라 가까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호수에는 우리의 그림자가 마테호른에 겹쳐 있다.

 

 

 

 

그륀제 (Grunsee,2,300m)

 

그린지제에서 평탄한 길을 따라 낮은 내리막길을 30분 정도를 걸으면 그륀제 호수가 나온다.

 

 호수는 에메랄드 물빛인데다가 물속이 환히 드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주변에 야생화도 많이 피어 있고, 호수 주변에 고운 모래사장과 쉴만한 바위가 많다.  5대호수를 다 완주하는 사람들이 적어서 여기는 사람도 거의 없는 호젓한 호수이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 소풍가서 예쁜 천을 깔고 누울 곳으로  꿈꾸었음 직한 숲 속의 작은 호수, 동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호수이다. 게다가 마테호른까지 살짝 고개를 내밀어 함께 하고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 길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양 바이커들은 망설임을 모르는 것 같다. 어디나 길이 있다면, 두 바퀴는 구른다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또 부럽다.

베르그휘스 그린제 레스토랑

 가는 길에 작은 레스토랑이 있어 잠시 쉬면서 맥주를 마셨다. 한 여름의 땀을 한번에 씻어주는 시원한 맥주, 그래 내 사랑 마테호른과 마주 앉아 맥주 한 잔을 기울여야지~  한 잔, 또 한 잔. . . . 하다가 뭔가 싸늘한 기운이 느껴져서 벌떡 일어났다. 설마 친구들의 서릿발같은 숨결은 아니었겠지?  땀 흘린 상태에서 연거푸 들이켠 맥주 탓에 몸이 차갑게 식은 것이라 중얼대며 다시 트래킹을 계속 했다. 그런데 자꾸 입가에 웃음이 나오고, 입밖으로 나오지 못한 노래가 입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뭘까? 설마 내가 마테호른에 끼 부리고 있는 것이었어?

 

그래도 중간중간 길을 확인하는 척은 해본다.

 

 

무수지제 (Moosjiesee, 2,140m) 

 

  그린제에서 무수지제로 가는 길은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좁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가는 코스가 있어 미끄러짐에 주의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야생화 피어있는 초원 길이었고, 간혹 가로수처럼 서있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길이었는데, 그린제를 지나면서는 길이 숲속 길로 바뀐다. 우리나라 산길처럼 나무 우거진 좁은 산길을 걷기도 하고, 작은 개울을 건너기도 하면서 꼬불꼬불한 길을 걷는다. 그렇게 침엽수가 우거진 숲 속 오솔길을 따라 계속내려가다 보면 옥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무수지제를 만나게 된다. 

 

빙하가 만들어낸 빙퇴석이 바닥에 있어서 이런 색깔인 듯 하다. 이 호수에는 작은 댐도 있어 물을 관리하는 것 같다.

산 할아버지 구름 모자 썼네~~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이렇게 높은 곳에도 마을이 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살았던 마을이 이렇지 않았을까?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가 자꾸 말을 걸어 온다.

 무수지제를 지나면서부터는 숲길에서 벗어나 산속 오르막길과 이런 초원길을 걷게 되는데, 5-호수길 막바지라 꽤 힘이 든다. 고도 100m 를 높여야 하는데, 땀도 나고 힘들기도 하지만, 비탈 길에 보이는 발레 주 특유의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진 광경과 언제나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어주는 마테호른이 있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더구나 발밑에는 수줍게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있어 자꾸 발길을 붙잡는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해서 한걸음 한걸음 아껴가며 걷는다.

 

 

 

라이제 (Leisee, 2,232m)  

 

 드디어 레이제 호수에 도착했다 . 마테호른의 반영이 가장 아름답게 비치는 곳이라 하는데, 오늘은 산들바람이 불어서 그림자가 비칠 듯 말 듯 하다. 이곳은 수네가 파라다이스와 만나는 지점이라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네가 파라다이스에 왔다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곳 레이제 호수에 와서 놀다가 돌아간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심지어 바닷가처럼 누워서 선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행하면서 부럽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던 한 가지가 서양사람들은 이런 물이 있고 햇살이 좋은 곳만 보면, 다른 사람들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 속에 뛰어들거나 선탠을 한다는 것이다. 거칠 것 없는 영혼을 가졌다고 해야 할까?

 

우린 기껏 이런 자세.....  나도 언제가는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수영복 입은 여자아이가 맨발로 엄마에게 다가가고 있다.  한 남자 아이는 스위스의 전통악기 호른을 불어보고 있다. 이런 풍경이 보이는 것은 여기가 종점이라는 뜻이다.

 바로 오른 쪽 위에 보이는 것이 수네가 파라다이스로 가는 엘레베이터가 있는 곳이다. 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체르마트로 가는 푸니쿨라가 있다. 향하는 발걸음이 더디다.

 

알펜 마르게리테 . 학명 Leucanthemopsis alpine
줌프 헤르츠블라트. 학명 Sumpf Herzbl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