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소년이 온다

여름숲2 2020. 8. 1. 12:40

 소년이 온다

 

지은이 : 한강

출판일 : 2014.5.19

출판사 : (주) 창비

 

 


  다리를 다쳐서 하릴없이 집에 있다가 손에 잡히는 것을 읽기로 했는데, 하필 이 책이 그것이었다. 딸은 어쩌다 이런 책을 샀을까? 광주이야기를 ....  환자에 읽기에는 부적합한 책이었으나 읽다가 멈출 수는 없는 흡인력이 있었다. 덕분에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눈물바람까지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1980년 5월 8일 부터 10일간 이어졌던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체를 안치했던 상무관에서 만났던 4명의 인물과 그들 주변의 인물들이 어떻게 죽었고, 살아남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1장 어린 새

: 동호의 이야기(2인칭)

'너'가 화자인 2인칭으로 시작된다. 중학교 3학년인 너(동호)가 친구인 정대의 시신을 찾아서 상무관에 왔는데, 그곳에 정대는 없다. 상무관에서 시체를 닦고 관리하던 은숙(수피아여고 3학년)과 선주(충장로 양장점 미싱사)의 요청으로 일손을 돕게 된다. '너'가 하는 일은 시체가 들어오면 성별,나이, 옷, 신발 등 특징을 장부에 기록하고 번호를 매기는 일이고, 그러면, 진수 형(서울에서 대학다니다 휴교령 때문에 내려왔다)은 그 장부 내용을 갱지에 옮겨 적어 도청 앞에 붙인다. 유가족을 찾기 위해서다. 그밖에 각종 필요한 물품 등을 공급하는 일을 진수 형이 도청을 오가면서 하고 있다. '너'는 엄마와 작은 형이 찾아와 집에 돌아가자고 해도 끝까지 거절한다.

'

어린 시절 온화했던 외할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용서하지 않을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2장 검은 숨

: 정대 이야기(1인칭)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밤마다 시체는 쌓여갔고, 온 몸에 구더기가 끓기 시작했어. 이젠 열십자로 포개 쌓는 것 마저 포기하고 마구잡이로 쌓아올리던 어느 밤, 그들 중 하나가 트럭으로 돌아가 두 손에 가득 석유통을 들고 와서 몸들의 탑 위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어. 그리고 마른 덤불에 불을 붙여 힘껏 던졌어. 숲을 삼킬듯 불길이 치솟았어. 대낮같이 공터가 밝아졌어. 덤불 숲 사이사이로 물러나 서로의 그림자를 스치고 기대며 어루만졌던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에서 뭉클 뭉클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를 타고 단숨에 허공으로 솟아올랐어. 더 이상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았어. 이제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었어.

너에게 가자

그때 소리가 들렸어. 한번에 수천개의 불꽃을 쏘아올리는 것 같은 폭약소리, 먼 비명소리.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놀란 혼들이 한꺼번에 몸들에서 뛰쳐나오는 기척.

그때 너는 죽었어.

3장 일곱개의 뺨

: 은숙 이야기(3인칭)

그녀는 일곱대의 뺨을 맞았다. 오른쪽 광대뼈 위로 실핏줄이 터졌다. 그녀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데, 보안사에 불려가 평범하기 그지없게 생긴 남자로부터 뺨을 맞았다. 보름전 청계천변에서 만난 작가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일곱대의 뺨을 그녀는 이제부터 잊을 것이다. 하루에 한대씩

◆뺨 하나 - 첫번 째 뺨을 맞고 눈을 다시 떴을 때, 그녀는 그 분수대가 생각났다. 그해 유월의 분수대가 눈부신 물줄기를 뿜었을 때,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었다. 하나하나의 물방울들이 내쏘는 햇빛의 예리한 파편들이 눈동자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뺨 둘 - 미안해하는 편집장과 점심식사를 하며, 그녀는 왜 그는 다친 곳이 없지? 하는 생각을 한다. '김은숙이 담당 편집잡니다. 둘이서 청계천변 제과점에서 만나 마지막 교정을 봤습니다. 그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집으로 가면서, 그녀는 자신의 뺨을 때렸던 작은 손, 두껍지도 크지도 않은 손에 대해 생각한다.

◆뺨 셋 -뺨의 부기는 가라앉고 대신 손바닥 크기의 불그죽주한 피멍이 반점처럼 새겨져 있다. 시청 검열과에 간다. 가방 검색을 한다. 문득 4년전 대학생이 되었을 때 무심코 허리를 수그렸다가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었는데, 굵은 글씨로 쓰여진 글귀가 생각난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뜨거운 면도날로 가슴에 새겨놓은 것 같은 그 문장을 생각하며, 그녀는 회벽에 붙은 대통령 사진을 올려다본다. 어떻게 무감각을 , 잔인성을 , 살인을 숨기는가. 뺨의 상처가 달아오른다. 그녀가 받은 가제본은 불타서 검게된 숯덩어리 같았다. 책 전체가 검게 지워져 있었다, 낱장들은 흠뻑 적신 잉크 때문에 가제본은 감각기둥과 흡사한 형상으로 부풀어 있다. 출판할 수 없다.

◆뺨 넷 - 사무실에 서 선생이 왔다. 숯덩어리가 된 책을 보며, '책이 못나온다 해도 공연은 올릴 겁니다 '

◆뺨 다섯 - 광대뼈 언저리에서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던 다섯 번째 뺨.

그해 겨울, 입시에 실패하고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그냥 살아주면 안되겄냐. 내가 힘들어서 그런다. 그냥 다 잊어불고 남들같이 대학가서 네 밥벌이 네가 하고, 좋은 사람 만나 살고. .. . 그렇게 내 짐을 덜어주면 안되겄냐'

되도록 집에서 멀리 가겠다는 마음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다. 그 사이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런 저런 알바를 하다가, 2학년을 마치고 교수 의 추천으로 이 작은 출판사에 입사했다.

그날 그녀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새벽 1시경에 도청을 나왔다. 그녀에게 영혼이있었다면 그때 부서졌다.

◆뺨 여섯 - 검열을 어떻게 통과할 생각이지? 서선생의 책은 결국 미국으로 이민한 편집장의 친척 이름으로 조금 수정된 채 출판되었다.

그날 오전 분수대에서는 물줄기가 뿜어져나오지 않았다. 도청앞 담장 앞에 던져진 주검들,그 중에 있었던 동호의 주검. 인적없이 괴괴했던 거리, 다락방에 숨어 있었던 그녀. 그리고, 계엄령 속에서 학교에 갔던 그녀는 방학하는 날까지 날마다 정류장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여섯번째 따귀를 잊어야 하는 날이지만, 이미 뺨은 아물어 거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이 되어 일곱번째 따귀를 잊을 필요는 없었다. 일곱번째 따귀를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눈송이들 - 서선생의 연극은 무대에 올려졌다. 그러나 배우는 말하지 않는다. 입술을 달싹일 뿐이다. 그녀는 이 입모양을 또렷이 읽을 수 있다. 그녀가 직접 3교정까지 봤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살며시 ...동호야.... 아랫입술을 악문다.

4장 쇠와 피

: 진수와 영재 등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단순 가담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유월까지 차례로 석방되고

평범한 볼펜, 모나미 검정 볼펜은 조사실에 들어가면 변함없이 준비되어 있는 첫 순서 였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두려는 것 같았다. 조서를 쓰지 않는 왼손에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교차시켜 끼우게 한다음 비틀었다. 날마다. 같은 곳을. 나중에는 하얀 뼈가 들여다 보였다. 뼈가 드러나면, 알코올에 적신 약솜을 끼워주었다.

그 순서가 끝나면, 그들은 침착하게 질문을 시작했다.내가 어떻게 대답하든 소총의 개머리판이 얼굴을 향해 날라왔다. 내가 쓰러지면 그들은 등과 허리를 밟았고 몸을 뒤집으면 군화로 정강이를 짓이겼다.

조사실에서 방으로 돌아오면, 모두가 정좌를 하고 정면의 철창을 똑바로 바라봐야 했다. 눈동자만 움직여도 담뱃불로 지져 버리겠다고 한 하사가 말했고, 본보기 삼아 실제로 한 중년 남자의 눈꺼풀을 담뱃불로 문질렀다. 목마름. 배고픔. ....그곳의 한끼는 2인 1조로 나눠 먹게 했는데, 김진수와 나는 한조였었다.

한달 전 김진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고 있다는 선생을 만나 내가 알고 있는 김진수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치겠다고 위협했으며,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고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고 했다. 석방된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고 한다.

감옥에서도 재판에서도 사람임을 잊지않고 씩씩했던 어린 영재는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된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린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린다.

5장 밤의 눈동자

: 선주 이야기(2인칭)

그 일 이후, 당신은 조그만 시민 단체에서 월급대신 활동비를 받으며, 기록물들의 녹취를 편집하고 분류하거나. 자료들을 관리하고 있다.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금액을 받지만, 당신은 오로지 혼자 하는 일이라 만족한다. 그런 당신에게 윤이라는 사람이 심리부검을 하여 논문을 쓴다며, 인터뷰를 요청해왔었는데, 거절했었다.그리고, 십년만에 다시 연락해온 그는 그 논문을 쓰면서 인터뷰했던 10명의 시민군을 수소문 했는데, 그중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중 7명의 허락으로 녹취록을 정리하여 출간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여성으로서 구속됐던 당신이 8번째 증언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당신은 거절한다. 그런데, 며칠 후 휴대용 녹음기와 테이프가 배달되어 온다.

당신은 공장 노동자로 성희 언니를 따라 노동법도 공부했었다. 어용노조를 꺾고 뽑힌 노조 간부들을 구사대와 경찰이 끌고 가던날, '잡아가지 마요'라고 외치며 그들의 둘러샀다. 그리고 누군가 '옷을 벗자, 그러면 못 건드릴거야' 말했고, 모두들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어 흔들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곤봉과 각목이 날라왔고, 열여덟이던 당신은 마지막에 끌려가다 모랫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서두르던 사복형사가 당신의 배를 밟고 옆구리를 걷어찬 후 가버렸다. 응급실로 실려간 당신은 장파열 진단을 받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해고 통보를 들었다. 결국 블랙리스트가 된 당신은 친척의 주선으로 광주 충장로 양장점 미싱사 시다로 취직했다. 그리고 그해 봄, 당신은 광장으로 향했다.

윤은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삼십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을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6장. 꽃 핀 쪽으로(1인칭)

: 동호 엄마 이야기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 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펴 본다이. 아무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너는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싫어했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

열살 때 나는 서울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광주 집의 새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들이 낮게 말하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 집에 새로 들어돈 동호네 가족 이야기. 그후 5.18에 대해 알게 되고, 하나씩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로 하고 학원 강사가 된 동호의 형을 만난다. 형은 말한다. "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로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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