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9 파키스탄

훈자(2019.10.16. 수) - 알티트 성, Ciqam 파트너스, 발티드 성

여름숲2 2019. 11. 18. 00:12

알티트 성 Altit Fort

 

  훈자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고, 7세기에는  토번(티베트)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 후로도 인도와 중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19세기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목이었던 훈자는  이 지역의 패권을 두고 많은 민족들의 각축장이었기에 페르시아 ,티벳, 중국 등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가 섞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티트 성은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인 11세기 훈자강 절벽에 세운 왕궁이자 요새입니다.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이다, 몽골고원을 호령하였던 흉노족의 일부다 라는 말들이 있지만,  이곳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용광로처럼 섞여 딱히 어느 민족의 후손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알티트 성은 발티스탄 출신의 공주가 훈자의 황태자와 결혼할 때, 지참금의 일부로 동행한 건축업자들이 주축이 되어 지었다고 합니다. 1000년이나 되었으니,  발티스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건축이라 하겠습니다. 

  300여년이 지나 이 성이 낡아지자 15세기쯤 훈자의 왕은 '발티트 성'을 짓고 이사를 합니다. 그후 알티트 성은 오랫동안 방치 되다가 최근에 훈자 왕족이 '아가칸 문화 역사 재단'에 기부하게 됩니다. 재단은 노르웨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복원 공사를 한 후 2008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알티트 마을에서 본 알티트 성의 뒷 모습입니다.  알티트 마을은 성을 지을 때 인부들이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이 사진은 알티드 성의 복원 전 사진인데, 성 아래 오른쪽 길이 출입구입니다. 그리고, 성 오른 쪽 옆으로는 훈자강이 흐릅니다. 훈자강이 있는 마을 아래에서 보면, 이 성이 성이라기 보다는 천연 해자를 가지고 있는 요새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에는 훈자강이 뒤에는 울트라 피크 설산이 지키고 있으니까요.

'5060 조은 친구들'카페 에서 '산하'님 사진을 복사해왔습니다. 성의 전체적인 개념을 이해하기에 아주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성에 올라가는 길에는  과실수들과 여러 나무들을 심어 놓은 정원이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꾸미지는 않았지만, 꽤 넓고 시원한 정원입니다. 성은 비록 여기저기 훼손되고 무너져서 누추해졌지만, 늙은 나무들이 크고 푸른 그늘을 만들어 옛 영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경고판입니다.

성의 입구입니다.

성벽을 보면 건축법을 알 수가 있습니다. 
빙하에서 흘러나온 빙토석에 돌과 모래를 섞어 한 단을 쌓은 후에 나무 목재를 올리는 방식으로 켜켜이 쌓아 외벽을 만들고 안쪽에는 흙을 발랐습니다. 이러한 나무와 돌 등을 사용한 건축양식은 카라코람 지진에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지혜로운 건축 양식입니다. 
 건축 방식, 작고 두꺼운 창문, 평평한 지붕 같은 건축 양식은 티벳 건축 방식의 특징이라 합니다. 실제로 티벳에 있는 '포탈라 궁'과 알티트 궁이 비슷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기둥이나 가구에 보이는 나무 조각 등에서 불교적인 문양이 발견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알티트 성은 불교와 힌두의 영향을 모두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출입문이 무척 작습니다. 고개를 숙이게 하여 왕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나타내게 하려는 방식은 어디나 조금씩 비슷합니다. 
문이나 나무 기둥에 이런 조각들을 했는데,  예쁜 꽃입니다. 

 이 나무 가구에는 불교의 卍 자 문양(상자 아래쪽)이 거꾸로 있습니다. 불교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연속된  卍 자 무늬는 '만나라(mandala)'인데, '불법의 모든 덕을 두루 갖춘 경지'를 의미합니다. 또는 테벳에서는 왕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창문이 이렇게 작은 것은 추위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돌과 나무로 외벽을 쌓고, 실내는 이처럼 흙벽을 발랐습니다. 벽의 두께가 이렇게 두껍고 창문이 작아서 실내는 어두컴컴합니다. 

1000년 전의 기둥입니다. 티벳식 건축법이라 합니다.

이 사각기둥은 건물을 지탱하는 것이 아닌데, 왜 있나 했는데, 찾아보니, 300여년 전 왕자가 왕에게 반항하다가 산채롤 매장됐던 무덤이라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사도사자의 뒤주 같은 것이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왼쪽은 포도주 저장고였다고 하고, 오른쪽은 지하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지하실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설명하는 가이드의 얼굴이 너무 서구적이어서 또 놀랍니다. 훈자 사람들의 얼굴은 종종 이렇게 서양사람과 너무 흡사하게 닮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훈자사람들은 자신을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그들의 얼굴은 긍지와 자랑으로 빛납니다.
부엌의 조리 도구를 설명하고 있는데, 천장에 이런 창문이 있어 자연 채광이 가능합니다.

천정은 ㅁ자 형태의 나무를  정사각과 마름모 꼴을 겹쳐 쌓으면서 하늘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게 만들고 마지막에 유리창을 넣을 수 있도록 한 구조입니다.  중앙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서 천장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성 안에 있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성 아래 낭떠러지로 훈자 강이 흘러갑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인데, 안과 밖이 참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지붕에 있는 탑을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이 이슬람 사원, 오른 쪽에 있는 작은 건물(사진에는 없지만, 왼쪽 건물과 비슷함)은 창고였다고 합니다. 

앞쪽에 자연채광을 위한 천장 유리가 보입니다.

 성 앞 쪽의 풍경은 훈자강이, 성 뒤쪽은 훈자 피크가 보이는데, 훈자 피크 아랫 마을이  처음 알티트 성을 세우던 인부들의 마을이라고 합니다. 

짓다 만 것 같은 건물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훈자가 풍요롭다 하나, 살고 있는 집들을 보면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씨캅 파트너스 Ciqam Partners

 

  알티드 성을 나와서 지나가다 우연히 들른 곳입니다. 

  '라오르'나 '이슬라마바드'를 여행할 때,  거리에는 온통 남자들만 있어서 당황했었습니다. 그후로 이슬람 문화에 따라 여자들은 남자와 동행없이는 외출을 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자인 우리에게 쏟아지는 친절하지만 집요한 눈초리에 불안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훈자에 와서 종종 여자들끼리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농사일에 여성 노동력이 필요한 탓에 다른 지방과 다른 독특한 문화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장을 와 보니, 자립적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생생한 여성들의 모습이 그런 변화를 만들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낯선 이방인인 우리에게 긍지를 갖고 이 공장의 역사와 시스템을 설명하는 여성을 보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섣부른 생각일지 모르겠으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여성들이 파카스탄의 미래를 바꾸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씨캅 파트너'

노르웨이 대사관의 지원을 받아서 파키스탄 여성의 지속가능한 삶을 이끄는 단체입니다. 프랑스와 뉴질랜드도 이 사업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파키스탄 여성에게 목공을 가르치고, 더 나은 기술을 위해 노르웨이에 유학을 시켜준답니다. 돌아온 여성들이 후배들을 가르쳐서 친환경적인 목가구를 만들어 파는 회사이면서, 일종의 NGO단체 같은 것입니다.

 작업은 무척 힘들어 보입니다. 나무 먼지와 톱밥이 엄청나게 나오는 작업환경은 건강에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활기차고 당당해보입니다. 

 그녀들이 만든 접이식 의자에 마음이 확 끌렸습니다. 수공예 작품이 갖는 매끈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아주 고급집니다. 

접혔을 때 의자 모습
펼쳤을 때 의자 모습

 가구뿐만이 아니라 집도 짓는다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필요할 텐데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모두 직접 한다고 하니 놀라울 뿐입니다. 독일 여행 중 여성 기차 승무원이 여행객들의 캐리어를 번쩍 들어주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과 겹치면서, 여기 파키스탄 여성들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냅니다. 

 

 

 

발티드 성 Baltit Fort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인 14~15세기쯤, 알티트 성이 낡아지자  훈자 계곡의 맨 위 해발 2500m에 새로 세운 성입니다. 그 후로도 주인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구조가 바뀌고 증축되면서 1950년까지 실제로 훈자의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구조는 1892년 격렬한 저항 끝에 영국군에게 훈자를 점령당했을 때, 파수대와 옹벽 등 방어용 시설이 모두 철거된 후의 상태라고 합니다.  1945년 훈자지역이 파키스탄령이 된 데다가 성이 너무 낡아서 훈자왕 가문의 후손은 이 성을 비우고, 산 아래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후 오래 비워둔 성은 서서히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게 되고, 훈자 왕의 후손은 이 성을 1996년 '아가칸 문화 역사 재단'에 기부하게 됩니다.  이후 재단은 복원을 시작하여 1996년 성의 일부를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아가칸'은 이 지역 이슬람 지도자인데, 그의 후원과 가르침으로 이곳 훈자는 다른 곳보다 교육, 의료, 경제 등의 수준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성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길가에는 많은 상점들과 식당들이 있어서 관광객들의 메인 스트리이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높은 옹벽위에 발티드 성이 보입니다. 

성의 전체적인 샷을 보려면, 가운데, 원통형과 사각형의 목조 테라스가 있고  양 옆으로 흰색 벽의 건물이 있는 형태입니다.

옹벽의 구조를 보면, 알티드 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빙하가 밀어낸 퇴적물 위에 돌과 흙으로 벽을 쌓고, 그위에 나무를 올리고, 다시 돌과 흙으로 쌓는 형식입니다.  그런 옹벽위에 흰벽의 3층 건물과 검은색 목조 건물을 세우고, 작고 좁은 창문과 평평한 지붕으로 이루어진  티벳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알베트 성과 마찬가지로 좁은 출입구입니다. 왕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고개를 굽히도록 하는 디자인이지요. 
 

역시 이곳 가이드도 열심히 설명하는데. . .   부엌 살림도구와 천장의 창, 지하의 창고 등 알티드 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알티드와 마찬가지로 옥상으로 올라오면 사방이 탁트인 360도 전망을 자랑합니다. 오른쪽은 히말라야 산양인 아이벡스 Ibex의 뼈입니다.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눈바람 휘몰아치는 설산에서 빙하를 건너가는 한 마리의 산양을 상상해봅니다. 신비롭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령스러운 짐승인 듯 여러곳에서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발티트 성 박물관에 있는 박제된 산양

옥상의 구조입니다.  원형의 정자에서 왕이 신하들 혹은 사신들과 담론하는 사진이 발티트 성 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정사를 논했던 것 같습니다. 

 성 안에는 박물관도 있어 마지막 훈자 왕의 유품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위 사진은 역대 이슬람 지도자들입니다. 훈자의 이슬람은 시아파의 한 분파인 '이스마일-니자리' 라고 합니다. 훈자 주민 92%가 추종하는 이 종단은 예언자 모하메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이스마일과 딸 파티마의 후손을 예언자의 정통 후계자(이맘)로 받들고 따릅니다. 지금 이맘은 '아가 칸 4세'인데, 하버드를 나온 인텔리이며 부자라고 합니다. 훈자지방의 도로 포장, 학교와 병원 설립, 전통 건축물의 복원 등 그는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만을 위한 '아가칸 여자 고등학교'도, 파키스탄 제일의 '아가칸 병원'도 다 그의 업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덕분인지 훈자의 문자 해독률은 77%( 파키스탄 평균 58%)이며, 30세 이하에서는 99%라고 합니다.  이 교파는 삶의 질과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공동체적인 삶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훈자 사람들은 잘 살지는 않지만,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전에는 세계 3대 장수마을로, '장수의 원인은 맑은 공기, 살구, 훈자 워터(빙하의 물, 그러나 석회석이 섞여 회색빛입니다) 때문이다' 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장수마을이 아니라고 합니다.  훈자워터(사실 영양학적으로 이롭지 않다 합니다)도, 살구도, 맑은 공기도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암' 같은 질병에 더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관광객들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식습관이 깨지고 인스턴트 같은 도시의 먹거리를 먹게 되고, 자동차 같은 문명의 이기가 건강한 생활 습관을 버리게 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살구꽃 피는 파라다이스는 더 이상 파라다이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뒤쪽으로는 설산이, 아래쪽로는 가을이 깊어가는 훈자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이곳 발티드 성의 전설입니다. 이곳 관리인인데, 멋진 콧수염을 자랑하며,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어 유명합니다. 우리도 한 장 찍기를 청했는데, 하필 역광이라 그의 멋진 콧수염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청하면, 꼬아서 귀 뒤로 넘긴 콧수염을 멋지게 풀어 양 볼밖으로 펼쳐주신다는데, 부끄러워서 부탁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짖궂은 조카 녀석이 길가의 공예품점 매대에 올라가 공예품과 살구를 팔고 있습니다. 마음 좋은 주인아저씨가 먹어보라며 말린 살구를 자꾸 권합니다. 우리 자매들은 사이좋게 말린 살구를 사고, 살꾸씨를 한 입 가득 넣습니다.   

 훈자에 와서 반한 먹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살구씨'였습니다. 아몬드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고소한 맛이 일품인데다가 훈자인들의 장수비결에 들어가는 만병통치약이라 합니다. 귀가 얇은 우리 자매들은 여행 내내 이 살구씨를 입에 달고 다녔지요. 그리고, 마침내 귀국 선물은 이걸로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캐리어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살구씨를 사고, 식구들이 먹을 말린 살구를 사는 것으로 파키스탄 쇼핑을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와서 지인들에게 나눠줄 요량으로 지퍼백에 봉지봉지 나누어 담고, 내일 이 선물을 받고 좋아할 지인들을 생각하며 흐믓하게 핸드폰을 검색해봤습니다. ㅠㅠㅠㅠ  폭망입니다. 살구씨가 몸에 좋기도 하지만, 청산가리 성분이 있어서 위험하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은행에 들어있는 시안화수소가 들어있어 살구씨는 우리나라에서 식품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훈자에서 인터넷 검색이 안된 탓에 일어난 치명적 실수입니다. 서너알 먹는 것은 괜찮다고 하지만, '청산가리'라는 단어를 본 다음에는 그것을 선물로 줄 수는 없으니까요. 

아! 살구씨 땜에 망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사온 이 살구씨는 어쩌라구요!!!

 

 훈자 카리마바드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훈자 피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발티드성과 울타르 빙하로 올라가는 길이 나누어집니다. 수많은 트래커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빙하 트래킹이지만, 최근에 여러번 인명사고가 난 탓인지 트래커들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트래커들뿐만 아니라 관광객 자체를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파키스탄의 정세가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졌으니, 서양의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 탓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나에게  '파키스탄' 여행을 간다고 하니, 여권에 파키스탄 도장이 찍히면 미국은 못간다고 협박(?)하기도 했으나까요.

 

교복입은 훈자의 초딩이 너무 귀엽습니다

 

발티드 성에 올라가다 보게 되는 학교 입니다.
훈자 자동차 번호판입니다. 히말라야 산양 아이벡스를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