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9 파키스탄

훈자를 떠나며 (2019.10.17.목) - 훈자 가네시 마을, 길기트

여름숲2 2019. 11. 18. 00:30

  아침마다 눈을 떠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창문을 열고 훈자계곡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계곡의 나오시카'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바로 그 풍경은 언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게 모르게 쌓인 마음 속 상처들이 조금씩 아무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그저 아름다움이 주는 떨림에 몸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훈자는 핸드폰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저절로 문명 세상과도, 그리운 이들과도 소통할 수 없고, 오직 여기 이곳에서의 생활만 있을 뿐이지요. 그저 마을 길을 걷고, 빙하에 가보고,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단순한 일들은 적당히 몸을 피곤하게 하여 꿈없는 잠을 선사합니다. 눈을 들어 어디를 보든 펼쳐지는 설산의 장엄함은 마음을 서늘하게 하였고,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좁고 먼지나는 길을 염소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일은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런 훈자에서의 아침을 뒤로 두고 떠나는 일은 번잡한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겠지요? 여전히 그곳은 하루하루 숨통조이는 욕망과 좌절로 들썩이고, 속에서 끓어오르는 말들은 제멋대로 터져나와 시끄럽겠지요? 자의반 타의반 꺼져 있던 핸드폰을 켜는 순간 온갖 도시의 번잡함도 함께 오는 것이겠지요?

 

훈자를 떠나는 날 아침, 그 사이 가을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천년마을 '가네시' 마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천년마을이라 불리는 '가네시' 마을을 들렀습니다. 훈자 강 옆에 있는 마을인데,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 지구로 지정된 동네라고 합니다. 지은지 1000년이 넘었다는 집들이 있어 '천년 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이슬람 사원입니다. 돌아보는 내내 이슬람 사원의 기도소리 '알림'이 들렸습니다. 경전을 읽는 듯도 하고, 노래를 부르는 듯도 한데, 설산 아래에서 듣는 소리는 꽤나 운치 있습니다.

 

 가운데 사각형의 연못을 두고 빙 둘러서 집들과 나무들이 있습니다. 이 물은 빙하가 녹아서 지하통로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물이라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식수와 생활 용수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여름에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수영도 한다 하니, 어떻게 수질관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곳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훈자 수로처럼 인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만든 설비 위에 자연이 그저 얹혀지는 것이겠지요?

이런 탑이 여러 개였다고 하는데, 지금 온전하게 남은 것은 1개라고 합니다.

 

 이슬람 사원이 있는 연못을 돌아 이런 문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좁은 돌담을 구비구비 돌며 사람 사는 집들을 지나쳐 갑니다. 

 

소가 누워 있는 담벼락 위로 고양이가 슬며시 지나가네요

 기본적으로 집의 구조는 2층(이라기 보다는 1.5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아래 층에 짐승을 키우고 사람들은 위층에 살고 있습니다. 천년이 되었다는 이 마을은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둘러보는 일은 사람사는 집들을 기웃거리게 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그냥 먼 경치로만 보고, 마을의 공공장소로 이동합니다.

 

 오래된 이슬람 사원과 공용 장소같은데, 지은지 1000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나무로 지은 집이 1000년을 보존하려면, 전쟁과 약탈이 없어야 하고, 그 어렵다는 화재도 없어야 하며, 이것을 뽑아다 쓰게 하는 가난도 없어야 합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보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짐작이 있다면, 종교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그저 '천'이라는 숫자를 하나씩 세어볼 뿐입니다

 

이슬람 사원 내부를 살짝 찍어 봤는데, 아무것도 없네요

내부의 문양이 각양각색입니다. 아마 티벳의 전통 문양일 듯 합니다.

 

선명하게 보이는 卍자와  오른쪽 사진의 기하학적인 무늬와 원형 문양이 눈에 띱니다. 불교와 이슬람의 양식이 골고루 들어간 것이라고 하네요

 

 

▶ 훈자의 거리에서 

 

 우리의 떠나는 아쉬움을 알았는지 길가에는 온통 사과입니다. 물 많고 단단한 훈자의 사과를 잊지말라고 개나 소나 물고 다니는 사과가 지천입니다.

 

왼쪽 아래는 훈자의 배입니다. 달콤하면서 아삭거리는 맛이 좋습니다.

 

인심좋은 훈자의 할머니가 사과를 듬뿍 주십니다. 
길기트로 가는 봉고차 안은 온통 사과향으로 달콤합니다.

 

 

 

  깉기트

훈자에서 길기트까지는 봉고차로 3시간 걸립니다. 우린 길기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이슬라마바드로 비행기를 타고 떠날 예정입니다.

 여행자 숙소로 유명한 '마디나 Madina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넓은 마당이 있어 좋고, 식당에서 각국의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 있는 숙소입니다. 이곳에서 투어 부터 예약까지 모든 걸 대행해 주는 듯 합니다. 그러나 실내는 어둡고 습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입니다. 

 

  여기에서 '올드 실크로드'에서 만났던 오토바이를 만났습니다. 오토바이 옆에 달고 다니는 가방에 인터넷 주소와 여정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부터 이곳까지 온 것으로 보입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 한계를 뛰어넘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어를 잘한다면, 그도 아니라면 사교성이라도 좋다면, 그와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여행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만, 그저 그림의 떡이네요.....

 

길기트 시내 풍경입니다.

곳곳에 경비가 삼엄합니다.

이 흰색 트럭이 공공 버스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