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9 파키스탄

훈자(2019.10.15.화)- 울트라 메도우 가는 길 , 듀이카르 마을 산책, 훈자의 수로, 이글네스트 선셋

여름숲2 2019. 11. 17. 23:47

울트라 메도우 가는 길  

 

 오늘은 쉬어가는 날입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울트라 메도우 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길이 위험해서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더니, 울트라 메도우 트래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글네스트에 있는 우리 숙소인 '하드락 호텔'은 해발 2800m쯤 되는데, 바로 호텔 뒤쪽으로도 울트라 메도우 가는 길이 있습니다. 물론 울트라 메도우 가는 일반적인 길은 발티트 성 올라가다 나오는 갈림길에서 시작합니다. 

호텔을 돌아서 막 산길로 들어서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왼쪽 아래 사진에 보이는 염소가 점프하더니 사과를 땄습니다. 그리고는 시치미를 떼고 아삭아삭 씹어먹더군요. 순식간에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입니다.
이곳 훈자는 누구나 지나가다 사과를 따 먹습니다. 아이들은 사과를 먹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누구네 것인지도 모를 사과를 따서 줍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항상 입에 사과를 물고 다니지만, 개나 염소도 사과를 입에 물고 다닙니다. 그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이상한 나라'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작은 길을 따라올라갑니다

  첫날 해발 2500m의  발티트성 근처의 숙소에서 적응한 후 숙소를 바꿔 해발 2800m까지 적응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얼마 안 올라갔는데도 숨 쉬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거기다가 조카가 뚱뚱해서 통과하지 못할거라고 겁 줍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숨을 참아 몸의 부피를 줄이는 신공을 보여줍니다. 느리게 한걸음 한걸음 올라갑니다. 옛날 사람들이 농사졌던 곳까지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뒤돌아 보니 이글네스트 언덕이 보이고, 그 뒤에 8000m 급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습니다.

 

확대한 사진입니다. 왼쪽 아래 흰색과 빨간색 지붕의 계단식 건물이 우리 '하드락 호텔'입니다.

 

앞에 펼쳐진 계곡이 훈자 계곡,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계곡의 나오시카'의 영감을 얻었다는 그 계곡입니다.

 

가는 방향 앞쪽으로는 '레이디핑크''훈자피크' '울타르피크'가 보이고,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면 '골든피크'  '데란' '미르쉬카르' '락카로시'가 보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군가 옛적에 지었던 돌집과 밭을 일궈 돌담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집은 무너졌지만, 집 앞에 심었던 나무는 여전히 잎을 피우고 가을 햇살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해발 3000m에서 이렇게 나무를 키우고 가축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훈자 수로' 덕분이겠지요, 이 길을 계속 따라가면, 울트라 메도우로 이어지는데, 그곳에 가면 넓은 목초지가 있고, 울트라 피크의 빙하가 녹은 물을 이용한 '훈자 수로'를 볼 수 있다 합니다.  아쉽지만, 길이 험하고 위험하다 하니, 그 수로를 멀리서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하늘은 쨍하게 맑은 코발트 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희디 흰 히말라야의 설산과 매마른 암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가을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훈자마을과 비취빛 훈자강이 무심히 빛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끝까지 가면 고요해지나 봅니다. 마음도 맑게 가라앉아 무심해집니다. 눈물나게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이곳에서 왼쪽 길로 더 가면, 3270m 높이의 초원지대인 울타르 피크와 훈자워터의 근원인 울타르 빙하가 잘 보이는 곳이 나온다고 합니다만, 우리는 여기서 멈춥니다. 

 

 

 

이글네스트 호텔 카페 

 

 훈자에는 크게 카라마바드, 알리아바드, 알티드, 듀이가르, 가네쉬  등의 마을이 있습니다. 시장과 상가가 조성된 곳이 알리아바드이고, 이곳을 지나면 '발티트 성'과 여행자들의 숙소가 몰려있는 '카리마바드' 마을이 있습니다.  알티트 성이 있는 알티트 마을에서 한참을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와야 '이글네스트 언덕(2850m)'이 있는 '듀이가르'  마을이 나옵니다. 

 '이글네스트 호텔'은 이곳 관광의 초창기에 세워진 호텔로 뷰가 너무 아름다워 유명해진 호텔입니다. 식당  겸 카페도 운영하고 있으니, 이 호텔에 묵지 않더라고 이글네스트 언덕에 왔다면, 잠시 들러 차 한잔 하고 가면 좋습니다. 

 

이글네스트 언덕이 보입니다. 언덕 올라가는 입구에 유명한 이글네스트 호텔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호텔 입구입니다. 

 

호텔 벽에 걸어놓은 오래된 사진들입니다. 우리가 보는 산들의 이름이 나와있습니다.

이곳 지도입니다.

 

  누군가가 섬세하게 이글네스트에서 360도 회전하며 바라본 봉우리들을 그리고, 그 봉우리들의 이름과 높이를 써 넣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이 너무 오래되어서 액자를 내려놓고 자세히 보지 않는한 알아볼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이 호텔 식당의 식사는?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일반 식당보다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그리 비싼 것도 아닙니다. 

 전망은?

 소문대로 훈자계곡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멍 때리기 좋은 풍경이지요. 다만 우린 호텔 방에서도 똑같은 전망을 보기 때문에..... 

 

 

듀이가르 마을 산책

 

 점심을 먹고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마을 산책을 나가보기로 합니다. 

 

사과 나무 위로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걸 먼 설산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길가에 사과가 지천입니다. 개나 염소나 물고 다니는 사과. 가이드가 따도 된다고 하니, 조카가 신이 나서 땁니다. 우리도 볼 붉은 훈자의 아이들처럼 사과를 입에 물고 행복한 걸음을 걷습니다. 

 

이번엔 조카와 가이드가 살구 서리에 여념이 없습니다. 살구꽃 핀 봄의 훈자를 보지 못했으나 따는 이가 없어 하릴없이 땅에 떨어지는 살구가 안타까워 몇 개 따 보는 조카의 손길과  그걸 받는 동생의 모습이 참 고운 훈자입니다.

 

▶ 훈자의 수로

 

  훈자를 지금의 훈자로 만든 '수로'입니다.  강수량이 연간 100mm 밖에 안되는 훈자는 농사지을 수 없는 황무지였다고 합니다. 처음 이곳에 정착했던 훈자 사람들은 이 척박한 땅에서 먹고 살 도리가 없었습니다. 해발 2000m넘는 산악지대에는 풀 한포기 변변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하여 그들은 이곳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이나 승려들을 약탈해서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악명 높은 '훈자의 도적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던 그들의 삶은 10세기 후반에 훈자 왕 '나짐 칸'이 관개수로 공사를 하면서 달라집니다. 그들은 바위투성이의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깎아내고, 물이 새지 않도록 2~3m 높이 방벽을 쌓아 훈자강 주변에 퇴적된 흙을 져 올려 그 속에 부었습니다. 그렇게 훈자인들은 수십년을 노역하여 비옥한 다랑이 밭을 카라코람의 가파른 산비탈에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다랑이 논은 수시로 일어나는 산사태 때문에 쉽게 망가졌지만, 그들은 돌과 바위로 축대를 쌓으면서 밭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타르피크의 해발 3000~5000m 지대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의 물을 경작지로 끌어들이는 관개수로 개설의 대역사를 완성하였습니다.

  황무지의 땅에 울트라피크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물이 수직의 절벽을 깎아 만든 고랑을 타고서 마을로 흘러들어 와 살구나무와 미루나무를 키워내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감동적입니다. 

 

 수로의 물은 빙하가 녹은 물이기에 차갑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땅을 파서 저장 창고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오른쪽 사진의 작은 문이 그 창고의 문입니다. 일종의 냉장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수로가 있어서 계속 관리하기도 하지만, 많은 수로들이 소실되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수로를 보수하고 그 어려운 농사를 짓는 일 대신 도시로 나가거나 관광수입 등으로 먹고사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탓일 겁니다. 

 무심한 염소가 수로를 건너 갑니다.

 

흙먼지 폴폴 날리는 길을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네 시골의 옛 풍경처럼 뒷짐지고 지나가면, 염소 떼도 낳선 이방인들을 보면서 태연히 지나갑니다. 

 

수확의 계절입니다. 이곳 저곳에서 양, 염소, 소 등을 일을 거들고 있는 것 같네요. 

이곳은 붉은 단풍이 드뭅니다. 주로 노랗게 물드는 미루나무인데,  사과나 살구 같은 과실 수도 슬쩍 미루나무를 닮아 갑니다.  옥빛으로 흐르는 훈자강은 어디서나 아름답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밭을 보면서 훈자의 도적들이 칼을 던지고 곡갱이를 들어 산비탈을 개간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길고 힘든 시간이었을 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목숨을 건 도전 끝에 이룩한 된비알 밭들이 먹거리를 만들어내고, 토지를 비옥하게 하며, 나무와 가축을 키워낸 것이라 생각하니, 이토록 풍성하고 아름다운 훈자의 풍경이 눈물겹습니다. 자신의 조건을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 의지에 가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더 산 쪽으로 올라간 언덕이 오늘의 종착점입니다.

어디서나 훈자강은 옥빛으로 아름답습니다.

360도 회전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져서 안하던 짓을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지켜보던 가이드도 부끄러운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저만치에서 딴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매의 쇼가 조카에게는 먹혔나 봅니다. ㅎㅎ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랑스럽지만, 자매를 따라오기는 아직 멀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양 떼를 봅니다. 

 

 이번엔 염소가 자꾸 길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 녀석들은 겁이 많아서 낯선 사람을 보면 길밖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길밖은 낭떠러지인데 낯선 이방인 때문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일반인이 연예인 걱정하기'를 시연합니다.ㅋ  마음씨 좋은 염소 주인이 조카에게 막대기를 주고 몰아보라고 합니다. 신이 난 조카가 막대기를 들고 몰아보는데, 사실은 염소는 자기 갈 길을 알아서 가고, 조카가 열심히 따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린 조카가 꽤 긴 길을 염소를 따라 갔다 돌아옵니다. 

 훈자는 이렇듯 참 따뜻합니다. 자연도 사람도 짐승도

 

 

 

이글네스트 선셋

 이글네스트는 해발 2850m에 있는 바위 언덕으로  360도 방향으로 설산을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라서 훈자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1일 코스로 이곳에 많이 옵니다. 특히 선라이즈와 선셋 시간에는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도 이곳이 숙소였기 때문에 일출 일몰 시간을 맞춰 몇번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멋진 일출과 일몰은 번번히 허락하지 않네요. 

 

 올라가는 입구입니다. 해발 높이 2850m는 대단하지만, 우리가 있는 숙소에서는 15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 낮은 언덕입니다. '이글네스트'란 이름은 언덕 위에 독수리 모양을 한 바위가 많았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문득 저 언덕 머리가 민둥머리의 독수리 머리를 닮아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정도 상상력을 발휘하면, 저 바위들이 독수리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선셋을 보려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파키스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왼쪽 끝에 석양을 받고 있는 봉우리가 '골든 피크'인데, 좋은 날은 석양에 진짜 골드색으로 변한다 해서 이름도 '골든 피크'입니다. 

이번엔 레이디핑크 쪽입니다.  첫날 본 불타는 레이디 핑크는 끝내 보지 못합니다.

 

어두워집니다.  비록 멋진 선셋은 아니었지만, 360도 막힌 곳 없이 펼쳐지는 전망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