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제주 3주 살이

제주 - 에필로그

여름숲2 2018. 5. 15. 14:57

제주 3주 살이


 '여행'이 낯선 곳에서의 탐험과 휴양이라면, '살이'는 여행에 일상을 덧입히는 일이 아닐까?

 '살이'에 적합한 집을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고, 배를 타고 차를 가져가기로 하면서 자전거와 소소한 짐 문제가 해결됐다.

 '제주 3주 살이'는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해원 상생굿'을 보면서 시작됐다. 심방(무당)의 소리가 깊어가면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굿장단을 '살려주고, 살려주고, 살려주고...'로 듣고, 따라 외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중산간의 아름다운 오름에, 눈부신 유채꽃 아래에, 떨어진 동백꽃에 원혼들의 핏방울이 스며있음을 기억하겠다고. 가방에 동백꽃을 달게 된 이유다.

 날이 좋은 날은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오름이나 숲길을 걸었으며, 비가 오는 날은 비올 때만 생긴다는 '엉또 폭포'에 가기도 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갔다. 가끔은 표선 5일장에서 어슬렁대기도 했으며, 동네 맛집을 찾아 가기도 했다. 또, 동네 주민의 문자를 받고 '평화협정기념' 공짜 냉소바를 먹으려고 동네 소바집에 들어서기도 했다. 제주에 놀러온 친구네 숙소에 가서 하룻밤 자기도 했으며, 울집에 놀러온 친구를 재우기도 했으니 '살이'에 일상이 덧입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날들은 안도다다오와 이타미준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했다. 섭지코지의 '유민 미술관과 글라스 하우스',  서귀포 안덕면에 있는 '본태박물관'과 '방주교회'였는데, 각각 성산일출봉과 산방산을 끌어들여 4계절 변화무쌍한 화폭을 만들었다. 특히 물 위에 떠있는 '방주교회'가 햇살 아래 빛날 때는 숨이 멈는 듯 했다. 그러다 문득 저 '방주교회' 안의 구원받은 자들과 홍수의 한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는 사람들이 떠올랐는데, 왠지 나는 후자들 틈에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이 아름다운 건축물과 땅의 주인이 삼성, 현대, SK 라는 생각에 미치자, 육지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짓밟혔던 섬사람들의 역사와 4.3이 겹쳐져서 잠시 심란했다. 제주 부자 '김만덕 할망'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제주살이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자전거로 제주 해안 도로를 일주하면서 쪽빛 바다에 마음을 내줄 때였으며, 가장 평화로운 순간은 제주집 식탁에 앉아 무 밭 너머로 저녁 빛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바라보며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때였다. 매일 아침 지나쳤던 삼달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것은 남겨둔 시간이며, 친구가 신신당부한 고사리 꺾기는 능력 밖의 아쉬움이고, 야심차게 준비해간 회칼은 순진한 낭만주의자의 농담이 되었다.

 다시 돌아와 만난 현실은 켜켜이 쌓인 번잡함으로 얼룩진 일상이었으나, 말갛게 씻어 널어놓은 제주에서의 일상이 맑은 바람과 햇빛에 빛나던 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지만 모든 것이 잘 구비되어 있던 ZEZUZIP 

제주집에서 요리한 음식들.  갈치조림, 뱅코 돔 조림, 샐러드, 전복구이, 가다랑어 구이, 목이버섯(위 왼쪽부터)




제주 4.3 평화공원. 희생된 모녀상 뒤로 전시관이 보인다




제주 바다와 사랑에 빠진 자전거


옥빛과 쪽빛이 넘실대는 제주 바다




라산  사라 오름. 오름의 분화구가 산정 호수다


위 사진: 한라산의 '사라 ' 오름

아래사진: 검은 오름, 용눈이오름, 따라비 오름, 다랑쉬 오름(위 외쪽부터) 



사려니 숲길



한라산



엉또 폭포. '엉'은 작은 굴, '또'는 입구를 표현하는 제주어다.

비오는 날만 생긴다는 이 폭포는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엄청난 기세로 내리꽂는 폭포수의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이다. 엄청난 소리와 무서운 기세로 내리꽂는 폭포수의 모습이 장관이다.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모두들 한번쯤 '짜장면 시키신 분~~~' 하고 외쳐보았을 그곳.

 딸은 인생 짜장면을 이곳에서 맛보았다고 하나 수학여행와서 바다 빛에 반한 소녀의 마음이 매긴 점수일 거라 생각되고.... 그래도 먹어본다면, 들뜬 여행객의 마음으로 드시는 수밖에.



가파도. 청보리 축제 기간이라 갔는데, 간 김에 올레 10-1 코스도 걸었다. 마라도와 산방산, 한라산 등이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제주의 건축물. 방주교회, 도립미술관, 유민미술관. 본태 박물관, 추사관, 글라스 하우스(시계방향으로)


벚꽃 진 자리에 피어난 꽃, 암대극, 동백꽃, 찔레꽃, 양귀비꽃, 천남성, 구슬봉이, 돈나무꽃, 유채꽃, 괭이밥(위 왼쪽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