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8 인도('18.1.4~18)

바라나시(1월 13~15일)

여름숲2 2018. 1. 24. 02:11


* 1월 13일 토요일

  어제 마신 술 탓인지 감기가 심해졌다. 밤새도록 계속 잠이 깼다. 결국 비몽사몽간에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5시15분. 그런데 바라나시 안개 때문에 3시간 연착이란다. 헐!
  11시에 바라나시에 왔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바로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고 가트에 가보기로 한다. '가트'란 강가와 맞닿아 있는 계단이나 비탈면을 말한다. 바라나시에는 100여개의 가트가 있다. 왕이나 귀족이 건축물을 짓고 조성한 것인데, 아시 가트,하리시 가트 찬드라 가트, 다샤스와메드 가트, 마니까르니카 가트, 빤치강가 가트가 유명하다. 그 중 유명한 '다샤스와메드 가트'는 창조의 신 브라마Brahma가 10 마리의 말을 바치는 희생제를 거행했던 곳이라고 한다. '다스'는 10, '아스와'는 말,'메드'는 희생이라는 뜻이다. '아씨 가트'는 80이라는 뜻인데, 바라나시 가트 중에서 북쪽 철교 부근에 있는 라즈 가트(Raj chat)부터 맨 마지막에 있는 80번째 가트라는 의미이다. 우리 숙소는 아씨 가트에서 걸어가는 거리다. 저녁에는 가트에서 강가의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의식인 아르띠  뿌자Arti pooja가 열린다. 등에 불을 붙여 정해진 동작으로 춤을 추는 의식이다.

  드디어 갠지스강(강가).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온갖 풍문이 무성한 강가에 도착했다. 더러웠지만 생각만큼 악취가 심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사리같은 아이들이 맨바닥에 방치돼 있었다. 좀 큰 아이들은  구걸을 하고, 겨우 걷기 시작한 아이들이 구걸하는 엄마 옆에서 눈만 똘망똘망하게  뜨고 있었다. 엄마들은 적극적으로 구걸하지는 않았으나,돌아올 때 보니  스텐그릇을 앞에두고 긴 동냥행렬에 끼어있었다. 참혹했다. 시선 둘 곳이 없었다.

  그래도 가트들을 지나 계속 걷다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화장장이었다.  이제 막 화장장에 도착한 시신, 한창 타고 있는 중인 시신, 다 타고 재만 남은 시신, 끊임없이 머리를 들이대는 개들.....그 옆에서는 천연스럽게  내일 있을 연날리기 축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청년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삶과 죽음이 이처럼 극명하게 갈릴 수 있을까?  계속 보는 것이 힘들었다.


*1 월 14일 일요일

  오늘은 부처님의 초전 설법지인 '사 지'에 갔다오기로 했다. 우리 호텔의 택시가 비싼 듯하여 옆 호텔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예상치 않게 일찍 바라나시역에 도착했다. 그래서 다시 가트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제 갔던 선재네로 다시 가자는 의견이 있어 그리로 가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걸었다.

 " 저한테 문자하신 분이세요? " " 아닌데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 제가 철수예요"

  아? 그러고 보니 가트에 철수네 보트라고 쓰여 있었다. 조금 있다가 선셋 보는 보트가 출발한다고 하니, 엎어진 김에 보트 투어를 하기로 했다. '철수'는 한비야가 지어준 이름이란다. 한국말도 능숙하게 하고, 이미 한국에도 왔다 갔다고 말하는 철수는 장사수완이 뛰어나 보였다. 그러니, 생각없이 지나가는 우리 일행을 한번에 잡아댕겼지.ㅎㅎ  15명 정도 모였는데, 모두 한국의 젊은이들이었다. 바라나시라는 도시와 가트의 역사에 대한 철수의 설명을 들으며, 강건너로 갔다.

   내리자 마자, 누군가 다가와서 악수를 청한다. 엉겁결에 손을 마주잡았더니, 그래도 그의 손이 팔을 타고 어깨까지 올라온다. 순식간에 팔과 어깨 마사지가 끝난 것이다. ㅋ 정말, 인도는 멘탈이 강해야한다. 수수료를 주며, 한국에 돌아가면 이 새로운 인사법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하고 모두 다짐했다. ㅋㅋㅋㅋ 여행기간 내내 우리는 순식간에 이런 식의 인사를 하며 낄낄 댔으니, 작은 돈을 주고 웃음을 얻은 셈이다.

  그 사이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인도인 가족들이 뭔가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제법 물이 차가운데도 강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비록 더럽고 차가운 물일지라도 '신성한 물'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보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할머니를 비롯한 대가족이 배를 타고 강가로 떠나는 것을 보니, 애잔하면서도 할머니부터 어린 꼬마에 이르기까지 한가지로 흐르는 끈이 아름답기도 했다. 그것이 종교든, 가족애든.

  다시 우리도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갔다. 멀리서 뿌자 의식이 치뤄지고 있었다. 이 뿌자의식은 갠지스 어머니 강가 여신에게 드리는 제사이다. 연기를 피우고, 불이 켜진 등불을 들고 춤을 추고, 꽃을 뿌리는 의식이 진행된다. 이 제사를 통해 산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씻으며,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기원한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뿌자 의식은 브라만 계급의 사제가 주도했으나, 요즘에는 브라만 계급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생을 쓴다 하니, 의식은 경건하고 화려하나 내용은 세속적이다.

 그 옆에 있는 '다사스와메드 가트'에서는 아직도 화장이 계속되고 있다. 끊임없이 시체를 맨 사람들이 가트를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바라나시에서 두번째 보는 화장 장면이라 나는 그만 보고 싶었다. 죽음이 이렇게 근처에 있어도 되는 것인지 두려웠다. 더구나, 첫날 뭔지도 모르고 앉았다가 막 가트를 내려온 시체를 장작 더미에 내려놓는 과정에서 천이 벗겨져, 나는 그만 그의 얼굴을 봐 버렸다. 얼굴을 보기 전에는 시체인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얼굴을 마주 한 이상 그는 생생한 실체로 다가왔다. 거기다 다 탄 장작더미를 헤치며 뭔가를 찾는 개떼를 보니, 존재가 한낱 물체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몸처리쳐졌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바라나시의 개는 크기도 크지만, 사납기도 하다. 실제로 봉지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납게 달려드는 개를 보기도 했다. 그런 개들을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이모든 것이 윤회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없는 일이었다. 나는 절대 방금 전까지 따뜻했던 나의 어머니가 내가 보는 가운데, 불구덩이 속에서 타고 있고, 다 탄 재에는 개떼들이 달려들어서 뭔가를 물어뜯는 광경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문득 황동규의 '풍장'이 떠올랐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풍장(風葬)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 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化粧도 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 1월 15일 월요일

  바라나시의 마지막 날.

  어제 철수가 이야기한 베나레스 힌두 대학에 가보기로 한다. 복잡한 거리를 걷고 걸어 드디어 대학에 왔는데, 축제일이라 어는 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박물관을 열었겠지 해서 가봤는데, 역시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엄청나게 큰 대학이었지만, 단과대학별로 구획되어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어느 곳에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키 큰 나무가 가로수인 길들만 하염없이 걸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람 나가르 포트 Ram Nagar Fort' 였다. 람나가르 요새는 바나라스(Banaras)의 마하라자(Maharaja)가 강가(Ganga)강변에 1750년에 세운 붉은 돌로 만들어진 요새다.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마하라자의 궁전이었다고하나,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의복이나 무기류는 그만그만한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내부는 그다지 볼 것이 없는데, 뜻밖에 궁전 안쪽으로 가면 갠지스 강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보는 갠지스강의 풍광이 장쾌했다. 잠시 바라나시의 번잡함을 잊고, 마음 편하게 강바람을 맞고 있는 시간이 평화로웠다.

  아씨까트에 한번 더 가 보기로 한다. 그런데, 차가운 거리 양쪽을 가득 메웠던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함께 나와 구걸하던 거지들의 모습이 이어졌다. 옆에 이불이 말려 있는 것을 보면, 거리에서 밤을 지샌 것 같았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식사 중이었다. 똑같은 음식을 먹는 걸로 보아 누군가의 적선이 있었던 듯하다. 혹 몇몇은 버너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 무엇인가 끎이기도 한다. 

  바라나시의 첫날 본 화장터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급습한 불가촉 천민들의 참상은 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했다. 어디를 가나 거지는 있다. 우리나라 서울역에만 가도 가난한 노숙인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 바라나시처럼 엄청난 수의 젊은 여인과 간난 아기들,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하지는 않는다. 손이라도 뻗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give!'를 외치며 불쑥 앞길을 막는다. 그리고 끈덕지게 쫓아오고, 누가 뭔가를 주면, 더 달라고 또 손을 내민다. 나는 여기 바라나시에서 누구에게도 돈을 주지 못했다. 아니, 사탕 하나도 주지 못했다. 이 수많은 아이들과 여자들의 시선이 공포스러워서 감히 내 가방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통로를 빠져나가야 했다. 인도가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카스트 제도를 폐지했다면서도, 수드라나 불가촉 천민들의 젊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못해 거지로 만드는 나라, 그러면서 사랑영화나 제작하는 나라, 그런데도 IT 강국이라는 나라, 나는 기차가 연착해서도 아니고,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나서도 아니고, 모든 도시에게 잿빛 스모그로 가득차 있어서도 아니고, 틈만 나면 돈을 떼먹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서도 아니고, 이 가난하고 처참한 아이들과 여자가 있어서 슬프고 화가 났다. 이제 그만 바라나시를 떠나고 싶었다.

 

바라나시(Varanasi) :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온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갠지스 강 중류에 아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 석가모니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카시 왕국의 수도였으며 가까이에 있는 사르나트는 그가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이다. 1194년부터 3세기 동안 이슬람교도가 점령하고 있을 때 힌두 사원들의 상당수가 파괴되었고 학식있는 학자들이 다른 지방으로 피신하는 등 쇠퇴의 길을 걸었다.
18세기에는 독립왕국이 되었다가 뒤이어 영국의 지배를 받은 시기에는 상업과 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앙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 바라나시를 방문하여 그 길을 걸어보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하므로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방문하며 수많은 사원이 있다.(* 다음 백과) 



파일:Ganges-Brahmaputra-Meghna basins.jpg

갠지스 강과 바라나시 개념도(* 코인 위키 인용)



 바라나시 공항과 우리가 타고 온 SpiceJet!  바라나시에서 처음 연착이란 걸 경험했다. 안개 때문이라던데, 바라나시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아? 그래서 바라나시쪽으로 가는 모든 기차들이 그렇게 심하게 연착을 하는 구나!

Varanasi는 부처님 당시에 카시(Kashi '삶의 도시'라는 뜻)라 불렸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우리에겐 힌두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히말라야산맥에서 시작한 갠지스강이 야무나 강과 합류하여 바라나시를 기점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흐르다가 벵골만으로 빠지는 지역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남쪽에서 재생을 상징하는 북쪽으로 흐르는 곳이며, 시바신이 우주를 창조한 신성한 공간이기에, 이곳에 찾아와 신성한 물에 몸을 적시면 죄를 씻게 된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이를 이곳에서 갠지스 물에 적신 후 화장하고 재를 뿌리는 것이다.


  갠지스강 가트 풍경

갠지스 강과 관련해서 인도 고대의 이야기인 '라마야나'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산의 왕인 히마반(히말라야를 관장하는 신)과 그의 아내 마노라마(강의 신)에게는 '간가(언니)'와 '우마' 두 딸이 있었다. 히마반은 데바들의 요청에 따라 간가를 신들의 나라에 보냈고, 우마는 시바의 마음에 들어 그의 아내가 되었다. 오래전 아요디아의 사가라 왕에게는 아들이 없어 왕비들이 히말라야로 가서 타파스(수행, 고행)를 행했다. 그 결과 왕비 캐시니는 가문을 이을 아들 '아사만자스'를 , 수마티는 힘센 6만명의 아들(알)을 얻었다. 아사만자스는 잔인하여 추방당했고, 그의 아들 '암수만'은 덕을 갖췄다. 사가라 왕이 큰 야가를 준비하면서, 암수만에게 말을 책임지게 했는데, 락샤사로 분장한 인드라가 그 말을 훔쳐가고 말았다. 6만명의 아들들이 말을 찾아나서게 되었는데, 그만, 인드라의 꾐에 빠져 도둑인 줄 알고 현자 카필라(비슈누의 화신)의 묵상을 방해하는 바람에 카필라가 눈을 떴고, 순식간에 6만명의 아들들은 재가 되었다. 암수만은 삼촌들을 찾아 저승에 갔고, 사가라 왕의 둘째 부인인 수마티의 동생이지 새들의 왕인 가루다(비슈누의 현신 나라야나를 태우고 다녔으며 머리는 독수리이고 몸은 사람의 형상임)로부터 6만 왕자들의 영혼이 편히 쉴수 있도록 잿더미에 물을 뿌리고 싶다면, 데바들의 나라에서 강의 여신 간가를 이곳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암수만의 아들 딜레파, 딜레파의 아들 '바기라타'는 용감한 왕이었다. 그는 자식을 얻고 간가를 저승으로 내려오게 하기 위해 고카르나로 고행을 떠났다. 그는 한 달에 한번만 밥을 먹으면서 몸 전체에 불을 붙이고 뜨거운 태양에 머리를 태우는 가혹한 고행을 계속했다. 그 후 바기라타는 인내심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감동한 브라흐마 나타나 지상은 간가가 내려오는 힘을 지탱할 수가 없으니, 간가다라(시바의 화신)를 향해 타파스를 행하라고 알려준다. 결국 시바가  도와주기로 약속했고, 간가는 브라흐마의 명을 받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바의 머리위로 떨어진 간가는 오만하게도 시바를 저승으로 떠밀려고 했다. 화가 난 시바는 간가의 물을 거대한 그릇처럼 시바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빨아들였다. 다시 타파스를 행하고, 결국 시바는 그를 가엾게 여겨 간가의 물을 일곱 갈래의 작은 지류로 흐르도록 서서히 방류시켰다. 그 물의 세 지류는 서쪽으로 흐르게 했고 다른 세 개는 동쪽으로 흐르게 했다.그리고 일곱 번째 강은 바기라타의 뒤를 따라 흘렀다. 그런데 바기라타의 뒤를 따라가던 간가가 현자 자누의 야가 제단을 손상시켰고, 화가 난 자누는 강물을 모두 손에 담아 마셔버렸다. 데바들의 간청으로 자누는 간가를 오른쪽 귀를 통해 내보냈다. 간가는 저승에 도착했고, 바기리타는 그 신성한 물로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지냈고, 조상들은 하늘나라고 갔다. 바기리타의 고행을 통해 간가는 하늘나라에서 지상으로내려왔으며, 일곱 줄기의 평온한 강물로 흐르고 있다. (한일미디어 '라마야마' 책에서 요약한 것임)



가트 내려가는 길







왼쪽은 바다니 가트(Bhadaini Ghat), 오른 쪽은 시바 사원이 있다는 쳇 싱 가트(Chet Singh Ghat) , 그래서 그런지 쳇싱 가트 앞에 시바신의 소 '난디'가 있네, 그런데, 하두 바라나시가 더러워서 흰색이 검은색이 돼버렸네 그려.







사두(Sadhu)

사두는 모든 종교 수행자 또는 성자를 의미한다.

사두 계층에는 많은 교파의 참된 성자뿐만 아니라 육체와 정신수련에 전념하기 위해 가정을 떠난 남자(드물게 여자도 있음) 및 은둔자·마술사·점술가와 종교적 태도가 모호한 이들도 포함된다. 스와미는 특정 종단에 입문한 수행자를 말하는데, 특히 최근에는 보통 라마크리슈나 선교회에 속한 수도승을 말한다. 시바 신을 믿는 시바파 사두는 일반적으로 산니아신 또는 다슈나미 산니아신이라고 불리는 반면, 비슈누 신을 믿는 비슈누파 승려는 바이라긴이라고 불린다. 자신의 정신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체계화한 요가의 가르침을 수련하는 고행자는 요긴 또는 요기라고 한다. 자이나교 수행자는 '무니'라고 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려는 '비구'라 한다.

사두는 보통 특정 교단에 속한 사원(maṭha)에서 공동생활을 하거나, 혼자 또는 작은 집단을 이루어 각지를 떠돌아다니는데, 작은 오두막이나 동굴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 청빈·금욕의 수도생활을 하며 음식은 재가신자에게 구걸한다. 그들의 옷과 장신구는 교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황색(아주 드물게 흰색) 가사를 입는다.

그들은 머리를 삭발하나 어떤 이들은 머리를 어깨에 헝클어진 채 늘어뜨리기도 하고 상투를 틀기도 한다. 그들은 보통 최소한의 소지품만을 지닌다. 지팡이(daṇḍa)·물병(kamaṇḍalu)·발우·염주 그리고 형편에 따라서는 여벌 옷 1벌과 부젓가락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사두는 월식(月蝕)이나 각 교파의 회합(melā)과 같은 중요한 종교행사 때 모이는데, 이들은 1년 내내 바라나시(베나레스)와 하르드와르 같은 성도(聖都)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다음 백과)




칼리 Kali 여신. 시바의아내이자 죽음과 파괴의 신.

악마가 고행을 통해 신들에게 영생을 얻었다. 그 결과 악마의 악행을 막을 자가 없어서 세상은 고통에 쌓이게 되었다. 이에 시바신이 칼리를 보내 악마와 싸우도록 했다. 악마는 목이 떨어져도 피가 땅에 닿으면 다시 살아나기에 칼리는 악마의 목을 치고, 피를 땅에 떨어지지 않게 그릇에 받았다. 그리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사람들을 죽이자 시바가 말리러 왔다. 칼리는 시바를 죽이려고 발로 가슴을 밟다가 그가 시바인 줄 알아보고 놀라 혀를 내밀었다고 한다.

풍요의 신으로 수확과 은혜를 베풀어 주는 대가로 산제물을 요구한다고 한다.







아씨 가트에는 큰 보리수나무가 있고, 그 아래 시바신의 상징인 링가(liṅga) 와 ,요니(yoni) 가 있다. 지난 밤 뿌자 의식 때 사용한 꽃의 흔적이 보인다.



 가트 뒷골목 풍경




                                      가트 내려가는 길. 길가에 있는 거지들.




가트 뒷쪽으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및 여행사들이 있는데, 좁고 더럽고 음습하다. 밤에 혼자 다니면 뭔 일이라도 날 것 같이 어두운 미로가 이어져 있다.







바라나시의 유명한 왼쪽 '선재'네와 오른쪽의 '철수'네.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에서 보트 투어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이 식당에서 한국식으로 식사를 한다. 우리도 첫날은 '선재'네에서, 둘째날은 '철수'네에서 라면, 닭도리탕, 된장찌개를 먹었다. 특히 된장찌개는 비교불가로 철수네가 음식 맛이 좋았다. 그러나 철수네 가는 길은 공포영화 찍어도 될 것 같이 무서운 골목이다. 철수도 곧 돈 벌어서 옮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ㅎㅎ


바라나시의 민낯



바라나시의 안개


아씨 가트



아씨 가트에 있던 사람들


쓰레기를 뒤지는 소들


뜻밖에 아씨가트에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저 빨간 모자 쓴 처자에게 무슨 행사인가 물었더니, 아가씨가 엄청 흥분한다. 외국인과 말해보는 것이 처음이라며....... ㅋㅋㅋㅋ..... 갠지스강을 더럽히지 말자고 캠페인하는 거라고 한다. 일종의 환경단체인 듯 했다.



* 1월 14일 일요일


 보트 투어


생각지도 않게 이 앞을 지나다가, 철수씨에게 잡혀 보트투어를 하게 되었다. 다른 보트는 값이 저렴했지만, 철수네 보트는 한국어로 설명을 해준다기에 우리는 흔쾌히 신청했다. 거기다 때마침 지금 바로 출발한다니.... 그러나, 이날 우리가 먹은 것은 호텔 식당에서 먹은 아침이 전부였다. 보트는 4시 40분 출발했다.


저 멀리 보이는 강둑까지 건너간다. 우기가 되면 시체가 강건너로 떠밀려 와서 개들이 뜯어 먹는다고 철수가 말했는데, 믿기지는 않는다. 바라나시에서는화장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물에 수장하기 때문이란다. 화장할 수 없는 시체는 임신한 여자, 7세 이하의 어린이, 뱀에게 물려죽은 사람, 수도자, 짐승 등이라고 한다. 화장하는 사람들은 불가촉 천민인데, 정작 그들은 화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브라만이 그들을 위해 의식을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강 건너편에서 가트 쪽을 바라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침이를 떼고 말끔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철수씨가 배에서 갠지스 강과 뿌자, 화장 등에 설명해주고 있다. 놀랍게도 앞에 보이는 이 소년이 배를 모는 선장이다. 발로 야무지게 시동을 걸고, 자기 보다 어린 소년과 함께 배를 능숙하게 몬다. 살짝 이 아이들은 철수씨와 어떤 관계일까 생각해본다. 학교는 다니고 있나? 하는 생각도.

이렇게 인도에는 참 많은 '원빈'이 있다.

 아래 보이는 작은 꽃이 디아(Dia). 소원을 빌며 어두운 밤 강가에 띄우는 작은 불꽃이다. 하나에 20루피(400원,가트에선 10루피에 팔았다.ㅋ)씩 팔았는데, 나도 할까 하다가 이또한 갠지스강을 더럽히는 일이기에 그만 뒀다.







'디아' 를 준비하고 불을 피워 강가에 띄워 보내고 있다.




마침 한 인도인 대가족이 갠지스강의 여신 강가에게 의식을 치루고 떠났다.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끈이 살짝 보이는 듯 했다.


다사스와매드 가트(Bhadaini Ghat)에서 밤에 있을 '뿌자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가운데, 판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Ganga seva nighi

Save Ganga the source of life


보트를 타고 본 뿌자의식.



보트에서 바라본 화장장의 모습.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1월 15일


힌두 베네레스 대학


가는 날이 장날이라, 축제일라고 학교 문을 모두 닫았다.


 람 나가르 포트 Ram Nagar Fort




바라나시의 강가 남쪽 끝에 있는 람 나가르 포트는 원래 마하라자의 성이었던 곳으로 17세기에 세운 것이다. 바라나시의 마하라자가 머물렀던 궁전으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을 무기류, 의복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리 상태도 좋지 않아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았다. 대신 안에 이런 중정이 있어서 우리는 잔디에 앉아 바나나도 먹고 햇빛 바라기도 하면서, 잠시 바라나시의 번잡함을 잊었다.







중정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궁전의 외관이 보인다. 그리고....






진짜 이곳의 묘미는 박물관, 중정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오면, 갠지스강과 만난다는 데 있다.




거기에 사원이 하나 있는데, 앞에 난디와 링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시바신의 사원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