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집트(09.1.14-22)

제 5일 (에드푸와 콤옴보)

여름숲2 2009. 2. 25. 13:25

에드푸

크루즈의 이틀 밤을 보내고 가장 여유있었던 하루였다.

오전에 크루즈(낮에 주로 이동하고 밤에는 정박해 있다)가 도착한 곳은 룩소르 남쪽 110km 지점의 나일강가에 있는 소도시 에드푸였다.

에드푸 신전은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에게 바쳐진 신전이었으며 19세기 초 발굴 때까지 모래속에 그대로 파묻혀 있어서 이집트 내에서도 보존 상태가 양호한 사원일뿐만 아니라 카르낙 신전 다음가는 큰 사원이며 BC 237년부터 180년동안 지어졌다고 한다.

 

**호루스 (Horus)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그의 아내이자 최고의 여성신인 이시스(Isis)의 아들이며,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의 남편이다. 이시스가 오시리스를 부활시켜 주문의 힘으로 잉태해 태어났다. 유년시대에는 '아기 호루스'라 하여 땋은 머리 외에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갓난아기 모습 또는 이시스의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빠는 모습 등으로 표현된다.
원래는 매우 허약하였으나, 이시스의 마법으로 각종 위험이나 병을 물리칠 수 있었고, 성장해서는 오시리스로부터 병법을 전수받아 결국 아버지의 동생이자 원수인 세트를 죽이고 통일
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이후 곳곳에 신전을 세우고, 통일 이집트를 평화적으로 다스리면서 이집트 왕들의 화신으로서 영원히 이집트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이집트의 모든 국왕들은 누구나 '살아 있는 호루스'로 불렸다.
오시리스·이시스와 함께 이집트에서 최고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왕자 또는 신의 아들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저승에서 오시리스 앞으로 사자()들을 이끌어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을 감독하는 감독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보통은 태양·하늘의 화신()으로서, 매[]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표현된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남매간이면서 부부가 되어 이집트를 잘 다스려 풍요로은 나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남동생이면서 황폐한 사막을 다스리던 사악산 세트가 오시리스를 나쁜 꾀로 살해한 후 오시리스를 넣은 관을 지중해에 던져 버렸다. 이시스는 온 세상을 찾아다니 끝에 오시리스의 유해를 찾아내서 환생케 했다. 그러나 세트가 또다시 잠자고 있는 오시리스를 죽인 후에 시체를 토막내어 온 나라에 뿌렸다. 이시스는 다시 온 나라를 뒤진 끝에 유해의 토막들을 모아(성기는 나일강의 물고기가 이미 먹어 나무로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시신을 짜맞추었다. 그녀는 오시리스를 환생시키기 위한 의식을 거행하엿으나 오시리스는 이미 세상을 떠나 사후 세상을 관장하는 왕이 되어 있었다. 죽ㄱ은 자들의 지배자인 동시에 재판관이 된 오시리스는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제 인간들은 설사 죽음을 맞는다고 하여도 몸만 죽는 것이고 영혼은 계속 살 수 있게 되었고 사후 세계에서 부활판결을 받으면 완전히 환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시리스가 사후세계의 왕이 되어 이 세상에 없게 되자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유체를 통해 호루스를 잉태하고 출산하였다. 호구스는 오시리스에게서 지혜를 배워 사악한 세트와 싸워 물리치고 상하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다. 호루스는 하늘의 신이며 정의의 신이다.  그는 하늘의 신이기에 태양과 달을 관장하게 된다. 그래서 후대에는 호루스가 태양시 라와 동격시 되기도 한다

 


 

 에드푸 선착장에서 '호루스 신전'까지 타고 간 마차

신기하게도 사람을 기억했다가 돌아가는 길에도 태워준다

 

 남북 길이 137m, 동서너비 80m에 달하는 호루스신을 모시는이 신전은 그리스계 왕조인 프톨레마우스 3세 때인 기원전 337년 8월 23일 착공되어 프톨레 마우스 12세 때인 기원전 5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나일강 바로미터

- 나일강의 수위를 재던 곳

 

 기독교인들(콥트 교인)에 의해 심하게 훼손된 부조들,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쪼아놨다

 

 신전 안쪽의 가장 성스러운 곳에 위치한 지성소

앞의 것은 신의 나룻배를 놓아두는 제단이고 뒤의 것은 신상 봉안소이다

 

 

 호루스 상.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이중관을 쓰고 있다

 

 

 

 

 

 

 

콤옴보

호루스 신전을 관람하고, 다시 크루즈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4시까지 휴식을 했다. 그동안 크루즈는 콤옴보로 이동하고 있었다. 

 콤옴보는 룩소르에서 167km 남쪽에 위치한 나일강 동쪽 강변에 있으며, 이 부근 일대의 농업과 공업의 중심지로 번영하고 있다. 올림포스의 언덕이란 의미의 아랍어인 콤옴보는 예전에는 올림포스라 불리기도 했다. 도시 남쪽 약 2km, 나일강으로 돌출한 언덕 정상에는 콤옴보 신전이 있다. 룩소르나 아스완에서 출발하는 펠루카나 크루즈는 신전 바로 밑에 정박한다.

 

 콤옴보 신전은 원래 신왕국 시대의 투트모스 3세때 건설되었는데, 천년 후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BC332-385)에 새롭게 개축된 것이다. 이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신전의 기둥 장식의 스타일은 관람자에게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우상숭배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로 콥트 교도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을 입었고,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다. 1893년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신전은 호루스 신과 악어 신인 소베그신위해 세운 것이라고 하는 데, 그 이유인지, 신전 전체가 2중 구조로 되어 있다. 보통 다른 신전의 경우 중앙에 통로가 한개씩 있지만, 콤 옴보 신전은 좌우로 두 개의 통로가 있고, 탑문 입구나 방 입구도 2개씩이며, 지성소도 남북 두개로 나뉘어 있다.

  

 입구에 뱀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

 

 

콤옴보신전은 나일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강가에 위치한 거대 신전으로 내부에 악어의 미이라가 장식되어 있고, 악어 머리를 가진 세베크 신과 매의 머리를 가진 호루스 신을 모신 BC 2세기의 신전 등의 유적이 있다

 

 

 

 해는 끝없이 지고 또 지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고, 또 떠오르고

지평선이 어디에서나 보이는 이집트에서 한도 없이 보는 석양과 일출의 장관!

그래서 이집트 사람들은 파라오가 죽어 밤새 사악한 것들과 싸우고 아침에 부활한다고 믿었나보다

 

 호구스 신(왼쪽)과 악어(소베크신)이 새겨져 있다

 

**소베크 신 

    악어의 신으로 천지창조와 관련된 원시시대의 신으로서 풍요를 관장하고 악을 퇴치하는 신으로 받들어졌다. 이집트 사람들은 신들이 이 세상에 현신할 때에는 동물에 깃든다고 생각하여 동물숭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는데, 문명이 발달해 감에 따라 신들의 모습도 동물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이에 따라 신의 개념이 동물과 인간이 혼합된 성격을 갖게 되었으며 소베크 신 같은 경우에 악어의 얼굴을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기둥들에서 콤옴보 사원을 증축하고 개축한 프톨레 마이오스 왕조가 그리스 양식을 많이 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악어 신을 모시는 사원답게 악어 미이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