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집트(09.1.14-22)

제4일(룩소르)

여름숲2 2009. 2. 23. 22:27

**인용자료 : 파라오 이집트의 영광 (델리아 펨버턴. 심산)

                 이집트로 가는길(정규영, 르네상스)

 

룩소르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어제 저녁 크루즈에 탑승했다.

서울에서부터 크루즈가 뭔지 몰라서 여행상품을 몇번이고 바꿀까 했다. 말이 크루즈지 호텔보다 열악한 환경과 불편함을 걱정하며 대안이 없어 선택했던 크루즈였다. 결과는?

대만족!  딸내미는 이집트여행에서 제일 좋은 것이 크루즈였단다. 그만큼 기대이상으로 편안하고 행복했다.

크루즈의 첫날은 룩소르 관광이었다. 그런데, 크루즈 출발시간이 2시 30분이라서 2시까지는 탑승해야 한다고 한다. 헐!

그래서 새벽 4시부터 룩소르 관광이 시작되었다

 

멤논의 거상

 

 

 

 

 여명이 트면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멤논의 거상!

 

 

테베 서쪽 콤 엘헤탄에 있는 아멘호텝 3세의 장업한 장제 신전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유적.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신전의 정문 파일론 앞에 서 있었건 것이다. 이 거상의 이름 멤논은 신전을 관람한 고대 그리스 관광객들이 붙인 것으로 .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에게 살해당했던 전설의 에티오피아 왕 멤논에게서 따 온 것이다.

 

♠아멘호텝 3세 (BC 1390-1352년경)

   12세에 왕위에 올라38년 동안 이집트를 태평성대로 이끌었던 왕. 아문신을 섬겼고 화려하고 장대한 장제신전을 세웠지만 람세스 시대부터 무너져내리기 시작해 현재는 잔해만 남아있다

 

 

하트셉수트의 신전

테베의 서쪽 강둑 너머 데이르 엘바하리의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면해 멘투호텝2세의 옛 무덤과 사원을 따라 나란히 들어선 신전은 전대 왕의 유적에 비해 두배이상 크다. 멘투호텝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하트셉수트의 신전은 원래 스핑크스가 지키는 커다란 둑길로 주 신전과 연결되는 '계곡 신전'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곡신전에는 나무들이 행렬을 이루고 작은 연못이 파진 정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부조로 새긴 장면들이 가득한 테라스 기둥들은 전투나 정복을 그린 다른 왕들의 것과 달리 평화로운 모습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 신전의 중간 테라스 기둥들. 하토르 연신의 두상이 기둥을 장식하고 있다.

서쪽의 여신 하토르은 태양신이 저물 때마다 그를 맞아 품어준다. 새벽이 오면 더 밝은 빛으로 빛나도록!

풍요와 생산의 신으로 소의 형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하토르 여신의 귀는 소의 귀이다.

 

*이집트의 암소의 여신. 누트(Nut) 신과 레(Re) 신의 딸. 초기 이집트 신화에서 그녀는 하늘의 신 호루스의 어머니였으나, 나중에 그 역할을 이시스 여신에게 넘기게 된다. Hathor신은 그래서 호루스 신의 보호자가 되었다. 암소의 모습이거나 암소의 뿔들 사이에 태양원반이 달려있는 모습의 왕관으 쓴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이름은 "호루스의 집"이란 뜻이며, 하늘의 여신으로서의 그녀의 역할을 상기시키며, "집" 이란 것은 거대한 암소로 묘사되는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Hathor 신은 종종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여겨지며, 파라오들은 스스로 "Hathor 신의 아들" 이라 지칭한다. 파라오들은 또 이시스 여신의 아들 호루스라고도 여겨졌던 바, 호루스 신이 원래 Hathor신의 아들로 여겨졌던 데서 그 기원을 갖는다 하겠다. Hathor는 Re 신의 눈의 전설에서 인성이 부여되지 않는 파괴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전설에 따르자면 Re신은 자신에게 거역할 음모를 짜고 있다고 생각되는 인간들을 파멸시키기 위해 자신의 눈을 하토르 신의 모습으로 하여 보낸다. 그러나 Re 신은 마음을 바꾸어 대지를 맥주로 홍수를 내어 마치 피처럼 붉게 물들어 버린다. Hathor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멈추었고 이내 취해버려 그의 위험한 사명을 수행하지 않게 되었다. Hathor 신은 파피루스 문서에서 종종 뱀과 sistrum이라고 알려진 딸랑이로 묘사된다. 그녀의 像은 이집트 건축에서 기둥머리를 장식하는데에도 사용된다. 그녀의 주된 성소는 Dandarah에 있었으며, 그곳은 그녀의 숭배가 초기에 집중된 곳이기도 하며, 아마도 진원지이고 할 것이다. Dandarah에서는 특히 풍요, 여성, 아이의 여신으로서의 역할과 관련하여 숭배된다. Thebes에서는 태양신 Re가 서쪽의 지평선밑으로 하강한 것과 관련하여 "서부(西部)의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명계의 여신으로 여겨졌다. 그리스 인들은 Hathor신을 아프로디테와 동일시여겼다.

 하트셉수느가 다스리는 동안 푼트(아프리카, 향료의 땅)신비의 땅을 찾아 나섰던 2년여에 걸친 탐험대의 활동을 그린부조. 여기서 이집트 병사들은 무기와 각종 장구를 종려나무 줄기와 함께 들고 있다.

 

 

 

 

 

 얼굴은 다 부서져 있다.

 

* 하트셉수트 (BC 1479-1458년경)

   투트모세 1세의 딸이자 투트모세 2세의 으뜸왕비였다. 투트모스 2세는 왕위에 오른지 얼마되지 않아 죽음을 맞았다. 하트셉수트는 그때까지 왕자를 생산하지 못한 탓에 왕위는 첩이 낳은 아들의 차지가 되고 만다. 투트모스 3세가 어린 나이였기에 어린 파라오의 섭정을 맡았다가. 뒤에는 직접 파라오의 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남자가 아니였기에 (왕은 태양신 호루스가 현세에 현현한 것이고, 호루스는 남자였다) 대둥앞에서 남성복장을 하고, 파라오가 전통적으로 달던 가짜 수염도 턱에 붙였다. 그리고 자신이 아문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면 재임기의 대부분을 신전을 세우는데 헌신했다.  이 장제신전은 건축가 세넨무트(하트셉수트의 연인이었다고 하며, 몰래 함께 묻히고자 하다 처형당했다고 한다)가 당대의 최고 기술과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라 한다.

 후에 유폐되었던 투트모스 3세가 장성하면서 살해 혹은 유폐되었다고 하며, 사후에 모든 조각상들이나 유적이 파괴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 이집트는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여성에게 있었다고 한다. 제 1공주는 왕이 될 수 없었으나  왕위계승권을 가진 공주와 결혼하는 자에게 왕위의 정통성이 인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람세스 2세의 경우는 자신의 어머니,딸들과 결혼한 것이다. 딸과 결혼한 자에게 왕권을 위협받는 일이 없어야 하므로. 하트셉수트도 자신이 첩의 자식으로 반쪽짜리 파라오 혈통을 가진 투트모스3세 보다 자신의 혈통이 진짜 파라오라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왕가의 계곡

 입구. 이곳에서 조그만 미니 버스를 타고 계곡으로 들어간다

 

 무덤입구

 

 

 발굴현장을 보게 되었다. 이곳은 지금도 여전히 뭔가 발굴되고 있었다

 

 

 

 람세스 1세의 묘 입구와 카르투쉬(cartouche)

 

 

 투트모세 3세의 묘와 입간판. 묘지 안의 그림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장엄한 입지나 파격적인 설계와 장식 등 어느모로보나 걸출한 무덤이다. 계곡 남단의 우뚝 솟은 암벽 속에 둥지를 튼 무덤의 입구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직사각현의 벽이 가로막는다. 여기를 지나면 무덤의 행랑과 만난다. 벽 뒤의 장방형 석실은 일종의 대기실이다. 그 벽에는 지하세계의 신들을 그린 그림들이 가득하다. 시신을 모신 석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무덤의 주축과 직각을 이루게끔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바닥 한쪽 구석에 감추어진 계단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있다

  커다란 타원형으로 되어 있는 묘실은 네 개의 곁방들을 가지고 있다. 왕을 위한 부장물을 넣어 두는 곳이다. 묘실의 한쪽 끝에는 투트모세의 화강암 석관이 있다. 왕의 카르투슈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진  석관에는 수호 여신들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벽면에는 장례식 때 읽는 파피루스와 같은 흘림체의 비문들이 새겨져 있다. 크림색 같은 색깔 위로 약간 빛이 바랜 검은색 글씨가 등장하는가 하면 핑크와 붉은 새으로 강조해 놓은 곳도 보인다. 여기에 그려진 장면은 암두아트(지하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책)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장례용문서에 나오는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골자는 태양신이 밤이 되면 지하세계로 내려왔다가 열두 시간의 밤이 지나면 다시 떠오른단는 이야기다. 왕은 여기서 신들을 도와 혼란과 어둠을 낳는 신 아펩(뱀의 신)을 물리친다.

 --그림은 펜터치 처럼 가볍게고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얼핏 보면 유치원생이 그린 것처럼도 보인다

*투트모세 3세(BC 1479-1425년경)

  54년간의 긴 통치기를 가진 왕으로 이집트가 낳은 위대한 전사로 명성을 날린 왕이다. BC 1458년경부터 의봇어머니 하트셉수트를 몰아내고, 왕으로서 전권을 행사했다. 첫 해 그는 카데시 전투와 미타니 전투에서 적들을 물리치면서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집트 패권의 틀을 공고하게 다졌다. 그의 재임 말기에 이집트 제국은 남쪽으로는 나일강 제 4폭포에서부터 북쪽으로는 터키까지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다.

 

 

 다시 보트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룩소르 신전

 

 룩소르 신전

 

 

 

 

 

 

 

 '생명'을 의미하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 '앙크'가 보인다

 

 람세르와 네페르타리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와 하이집트를 대표하는 연꽃을 묶어 보임으로써 상하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보는 부조 중 하나다

 

 

 

 

 

 

 카르나크 신전

   

           아문신( "숨겨진 자" 이집트의 하늘의 신으로 태양의 신과 이집트의 만신전의 우두머리의 신으로 여겨졌다. 그는 "숨겨진 모습, 신비스러운 형태"을 하고, 보이지 않으나 우주전체에 걸쳐 편재하는 것으로 말해진다. Amun의 성스러운 동물은 숫양과 염소이다. 그의 제일 중요한 성소는 테베의 근방인 Karnak와 Luxor에 있다.)을 섬기는 핵심 성소인 카르나크는 고대 테베의 가장 중요한 기관이었으며, 동시에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곳이다. 거의 2.5km에 달하는 카르나크신전은 모두 세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문 신에게 헌정된 중앙 구역이 가장 크고 또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이런 아문의 대 신전과 나란히, 다른 중요한 신들을 섬기는 작은 규모의 사당과 사찰들이 들어서 있다. 그 북쪽은 테베의 전쟁신 몬투의 영역이고, 남쪽은 아문의 아내인 여신 무트의 영역이다. 아문 신전을 이루고 있는 각종 유적들은 거의 2000년이 넘는 세월동안(중왕국에서 프톨레마우스 왕조와 로마시대) 만들어진 것이다.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잇는 행진로를 따라 도열해 있는 양들의 스핑크스들. 매년 열리는 오페트 축제(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며 열림. 아문 무트, 콘수 등의 신들 조각상을 나일강가로 나르고, 온갖 악대와 가수들이 강둑에서 노래로 환희한다. 이렇게 해서 신은 왕모의 몸과 하나가 되어 왕을 생산한다. 다시 말해서 왕은 이렇게 신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축제는 보통 여름철 11일이 걸렸는데, 제 20왕조 때부터 27일로 연장되었다. 룩소르 신전의 벽화에 축제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기간동안 아문과 그의 아내 무트 그리고 아들 콘수를 상징하는 신성한 조각상들이 이 길을 따라 카르낙 에서 룩소르로 행진했다. 때에 따라서는 배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쌓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유적. 흙으로 산을 세워 돌을 올린 것

 

 

 

 오벨리스크- 장엄하고 아름답다

 

 쇠똥구리. 태양과 파라오의 부활을 상징한다

 

 그 앞에 있는 '신성한 호수'

 

 

 

하트셉수트 여왕과 그의 정적인 투트모스 3세의 오벨리스크 

 

 

 

 

 

전부 134개의 거대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카르나크의 거대한 기둥 신전. 그 골조는 세티 1세 가 세웠으며, 기둥의 부조나 벽화등은 그의 아들 람세스 2세가 완성했다. 높이 23m 지름 3m의 원주들. 이집트 상형문자의 파피루스의 꽃(기둥 위), 아문신을 숭배하는 왕의 치적들이 새겨져 있다

 

 

크루즈

 

 

 우리가  탑승했던 미스월드호

 

 

 

 

 유유히 떠가는 나일강의 아름다움

시시각각 색깔을 달리하며 햇빛에 반짝이던 물결과 그 너머 보이는 이집트의 마을 풍경들, 오후 2시30분에 들어와 쉬던 그 한가롭던 시간들, 해가 저물녁의 나일강빛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