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9 독일

드레스덴(2019. 8.21~22 )- 발칸 익스프레스 랠리,레지덴츠,젬퍼오퍼, 카톨릭 궁정교회, 츠빙거 궁전, 군주의 행렬, 프라우엔키르헤, 브륄의 테라스

여름숲2 2020. 9. 9. 20:34

★ 드레스덴 Dreaden

 드레스덴은 작센 왕조의 예술적이고 사치스러웠던만큼 호화로웠던 수도로서 유구하고 긴 역사를 지니고 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때인 1945년 2월, 연합군 공군의 폭격으로 도심부가 파괴되고, 2만 5천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되어 동독의 중요 도시 중 하나로 공산 진영에 속해 있었고 1990년 독일의 통일 이후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욕심이 많았던 것으로 유명한 작센의 지배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 I., 1750-1827)가 만든 보물 저장고 녹색의 둥근 천장(Grünes Gewölbe)를 비롯해,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젬퍼 오페라하우스, 레지덴츠 궁전, 츠빙어 궁전 등 많은 관광 자원을 지녀 관광도시로서 명성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산업관광명소로는 폭스바겐 그룹의 세그먼트 세단인 페이톤을 생산하는 공장이 유명한데, 1억 8,700만 유로가 투입되어 2001년에 완공되었으며 7,300여 평의 작업장은 모두 캐나다산 원목마루가 깔려 있다. 생산직 직원들은 흰 가운을 입고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헤드셋을 낀 채 수작업 공정을 통해 페이톤은 물론 벤틀리 컨티넨탈의 프레임도 생산한다고 한다. 모든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유리공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02년 당시 엘베 강의 홍수로 오페라하우스가 침수됐을 때 이 곳에서 공연이 열렸다고 한다.
                                                                                              * 위키 백과 

드레스덴 역

 

▶발칸 익스프레스 자동차 경주 Balkan Express Outo Rallye

 

 드레스덴의 첫날, 아침에 시내로 나가다가 바로 이 놀라운 경기를 목격했다. 이곳 드레스덴 Altmarkt에서 출발하여 14개 국가 1400km 거리를 10일 동안 자동차로 완주하고 종착점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마치는 경기이다. 그런데 이 경기가 놀라운 것은 '차량은 최소 20년 이상일 것, 네비게이션 장치를 사용하지 않을 것(지도 책 허용),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을 것, 자선을 위하여 기부금을 모을 것' 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대략 170 여개 팀이 지금 경기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 경기에 참가하기 전부터 무슨 단체를 후원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사전에 후원금을 모으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준비하여 이 경기에 참가한다. 참가 선수들에게는 랠리 중간 중간에 수행해야할 체인지들이 주어지는데, 예를 들면, '체코 Eulau에서 정지하고, Sneznicka로 가는 산길을 운전할 것, 혹은 양을 차의 휠 뒤에 올려 놓고 사진 찍기 ' 등의 첼린지다.  체인지 완수, 각 포인트 인증, 준비사항 및 과정 등이 점수화되고, 최종 목적지에서 우승이 결정된다. 거대한 상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선이라는 선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시종 화기애애하다. 그러나 여정은 비포장 도로, 산악 도로, 패리로 이동, 캠핑 등 거칠고 험해서 둥도에 탈락하는 팀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여정 자체를 즐거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동남 유럽의 매력적이고 다양한 풍경에 매료되기도 한다. 

 준비를 기다리는 한 여성의 들뜬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와서, 이 여행을 그만 접고 그들의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었다.

 

대회에 출전하는 차량들
차량들이 스타트하기 전에 새치기하는 즐거움( 잔치상 차려 놨더니 웬 파리가.....)

 

◈레지덴츠 궁전 Residenzschloss

  2차 세계대전 중에 드레스덴만큼 도시의 모든 건물이 무너진 도시는 없었다고 한다. 폭탄에 부서지고, 불에 타서 폐허가 된 도시, 새까맣게 탄 벽돌이 굴러다니는 가운데서 사람들은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수백년을 지켜본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복구할 여력이 없었다. 드레스덴이 가난한 구 동독의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18세기 아우구스투스 2세가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레지던츠 궁전도 거의 다 파괴되었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일부 복원 공사를 시작했지만, 레지던츠 궁전을 되살리기 위한 본격적인 사업은 독일 통일 후에 진행되었고, 2013년 마무리 되었다.  이곳에는 유럽 최대의 보물 저장고인 그뤼네스 게뵐레 Grunes Gewolbe)를 비롯하여 동판화 전시관, 화폐전시관, 투르크 전시관, 리젠잘 등이 있다. 

 드레스덴에 있는 동안 하늘이 눈부시게 파란 날들이 계속됐다. 눈부신 햇살과 쨍하게 푸른 하늘 속에 시꺼먼 건물들이 처연하게 서 있었다. 문화재 복구의 원칙에 따라 본래의 벽돌은 그대로 쓰고, 새 벽돌을 흰색으로 했기 때문에 벽돌의 대조가 도드라져서 역사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는 듯 했다. 

 

레지뎀츠 궁전
아직도 공사중이다.

 

▶ 동판화 전시관

뒤러, 램브란트, 피카소 등 예술가들의 그림과 판화를 전시하고 있다.

오른 쪽 남자가 작센의 아우구스트라고 쓰여 있다.

▶ 투르크 전시관 Turckische Cammer

터키를 제외한 오스만투르크 시대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황금과 실크로 제작한 작품들이 많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소장 보물 중 하나. 세상을 짊어진 아틀라스.

 

▶ 중세 기사 박물관 

리젠잘(Riesensaal) 이라 불리는 대형 홀에 1만 점의 화려한 갑옷과 마상 창 시합을 재현한 인형을 볼 수 있다.

히드라를 죽이는 헤라클라스
갑옷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채 싸웠을 수는 없었을 듯 하다. 저 무게로 말로 뛸 수는 없었을 듯 하니. 다만, 지휘관이 이런 멋진 복장으로 나타나면, 군사들은 자신이 멋진 쪽에 선 듯해서 사기가 올랐을 것 같기는 하다. 능률과 실질이 허세와 치장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다

 

▣ 극장 광장 Theater Platz

 모든 관광 포이트가 다 몰려있는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레지덴츠 궁전, 츠빙어 궁전, 궁정 교회, 젬퍼 오페라 하우스 극장 등이  호위하듯이 둘러 서 있다. 

 

▶젬퍼 오페라 하우스(젬퍼 오퍼 Semperoper)

  1841년 독일의 건축가 '코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nper'가 지은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개관한 이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카를 마리아 폰 베버,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이곳에서 대표작을 초연했다. 특히 '바그너'의 '탄호이저' 이곳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역시 2차 세계 대전에 참화를 겪었고, 1985년에야 다시 극장을 열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음향이 좋은 오페라 극장 중의 하나인 이곳에선 매년 1월 말에 전 세계 음악 축제인 젬퍼 오페라 볼(Semper Opera Ball)이 열린다고 한다. 

1번 타자, 젬퍼 오퍼 Semperoper
극장 앞을 지나는 마차를 보니, 정말 중세의 시간이 흐르는 듯하다.
젬퍼 오페라 하우스Semperoper
젬퍼 오퍼 정면의 지붕위에 퓨마가 이끄는 4두 전차를 타고 있는 디오니소스Dionysus와 아리아드네Ariadne 청동상이 있다. 술의 신이며 감성의 신이 디오니소스와 자신의 감정에 가장 충실했던 아리아드네를 젬퍼 오퍼의 상징으로 세운 것은 어쩐지 잘 어울린다.
정문 입구에 왼쪽에는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오른쪽에는 실러 Friedrich von Schiler가 있다. 음악의 첫 형태는 시였다. 고대에 모든 시들은 노래로 부리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독일의 대표적인 문호 2명이 오페라 하우스 정문 앞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늘이 눈부시다.
극장 광장 한 가운데 있는 작센 '요한Johann 1세' 가마상

 

▶궁정 교회 (Katholische Hofkirche,호프교회,  대성당)

  높이 85m에 이르는 작센 지방에서 가장 큰 카톨릭 교회이다.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에 의해 만들어진 이 건물은 레지덴츠 궁전에 딸린 교회로 작센 지방을 다시 카톨릭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타노 키아베리'의 설계로 1738년에서 1754년 사이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교회 지하에는 작센가 왕족들의 석관과 함께 '아우구스트 2세'의 심장이 묻혀 있다고 한다. 내부에는 18세기 최고의 오르간 제작자인 질버만이 제작한 오르간이 있다. 1755년 봉헌된 이 오르간은 약 3000개의 파이프가 있다고 한다. 외부의 1,2층 꼭대기에는 수많은 성상들이 장식되어 있다.

지붕 난간에 있는 78개의 조각상
카톨릭 궁정교회
왼쪽이 궁정 교회, 오른 쪽 건물이 레지덴츠 궁전

 

 

◈ 츠빙거 궁전(Zwinger)

  1709~1732년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가 궁정 건축가 '다니엘 푀펠만'과 조각가 '발타자르 페르모저'에게 의뢰하여 건설한 작센 바로크 건축의 대표작이다. 독일어로 '츠빙거'는 궁전의 성벽 밖의 공지를 뜻하는 말이니, 이 '츠빙거 궁전'은  레지덴츠 궁전의 바로 밖에 축제의 장소로 지은 건물이라는 뜻이다. 주로 왕족의 파티 장소로 쓰였던 곳으로 화려한 입구를 지나면 대형 분수가 설치된 넓은 안뜰이 나오고, 조각상으로 장식한 건물이 그 주위에 대칭을 이루며 둘러싸고 있다. 이 건물들의 옥상에 수많은 바로크 양식의 조각과 장식을 만들어  옥상 정원을 만들었으며,  옥상에서 내려다 보는 안뜰의 정원과 대칭을 이루는 건물들이 아름답다.

 궁전의 내부는 박물관으로 사용중인데, '루벤스' '렘브란트 뒤러' '라파엘로' 등의 회화 작품을 모아둔 회화관  '알테 마이스터 갤러리', 중국과 동양 등에서 모은 궁중의 도자기 박물관, 무기 박물관, 물리학 박물관 등이 있다. 특히 '알테 마이스터 갤러리'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들이 그려진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가 전시되어 있다. 

 

츠빙거 궁전 입구
반대편, 츠빙거 안뜰에서 본 입구. 문 밖으로 극장 광장의 요한왕 기마상이 보인다.
입구의 조각상. 머리가 9개인 괴물 '히드라'를 죽이는 '헤라클라스'. '헤라클라스'는 '아우구스트 2세 '황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안뜰. 왕족들의 파티가 연상되는데, 오늘 날에도 '드레스덴 음악제' 등 각종 축제의 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분수대 뒤로 보이는 건물이 '파빌리온' 이고, 그 위에 '아우구스트 '황제를 상징하는 '헤라클라스'가 조형되어 있다. 아우구스트 황제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보고 와서 , 이 궁전을 그에 준하여 짓고자 한만큼 화려하고 예쁘게 지어진 궁전이다.
왕관의 문

 

라파엘로, '시스티나 성모',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windcastle78 이 사랑스러운 천사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 박물관은 꼭 들러볼 필요가 있다.

 

♠ 군주의 행렬 (Furstenzug)

 레지덴츠 궁전 슈탈호프(무예 경기장) 외벽에 그려진 군주의 행렬은 처음엔 1876년 작센 왕국 베틴 왕조 8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빌헬름 발터'가 프레스코화로 그린 벽화였다.  가로 101m, 세로 8m에 달하는 길이로 작센가의 군주들 35명이 말을 타고 행진하는 모습과 과학자, 예술가, 병사, 농부 등 총 93명을 연대기 식으로 그린 벽화였다. 그 후, 손으로 그려졌던 기존 벽화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1907년 마이센 도자기 타일 2만 5천장 이상을 사용하여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그려 넣은 벽화이다. 군주의 행렬은 1127년 '콘라트 국왕'부터 1904년 '게오르트 왕'까지 이어지고, 그 뒤는 일반 시민으로 끝난다. 각 왕들의 이름과 재위기간이 인물들 밑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 인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의복, 왕관, 문장, 모자 등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이 군주의 행렬이 감동적인 것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드레스덴 구시가의 90%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는데, 그 중에 유일하게 부서지지 않는 유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벽화를 '드레스덴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나는 전쟁에 패하고 가난과 절망에 빠진 동독의 주민들이 시꺼멓게 타버린 벽돌의 잔재 사이에서 여전히 건재한 이 행렬 앞을 지나 일하러 갈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해 본다. 이 도시가 생긴 이래로 계속 걸어갔던 왕들과 사람들의 행렬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될 수 있다는 무언의 격려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먼 시간을 거슬러 여기에 온 이방인이 나도 이렇게 뭉클해지는데, 그들은 더했을 것이다.

 

* 마이센 도자기  : 강건왕 '아우구스투스'는 연금술사를 불러 당시 드레스덴 근교지역인 '마이센'에서 유럽 최초의 경질 자기를 만들게 했다(1708). 초기에는 아시아 자기를 본 따서 복제품을 만들었으나. 현재는 세계 3대 도자기 브랜드로 불릴 만큼 성장했다. '강건왕 아우구스 투스 2세의 쌍검 표식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츠빙거 궁전에 있는 종들도 이 마이센 도자기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 : 표면에 포개어진 두층 가운데 위층의 부분부분을 긁어내 무늬나 형태가 아래층의 빛깔로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도자기에 화장토(흰색이나 채색된 점토와 물의 혼합물)를 칠한 후 선으로 음각을 하거나 문양을 그리고, 화장토를 긁어내어 태토와 화장토 색깔을 강하게 대비시켜 장식효과를 내는 방법을 말한다.

왕의 그림 아래에 이름과 재위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황제가 '강건황' 아우구스트 2세 이다.
이번엔 가장 오른 쪽 말위에 탄 왕이 강건왕 '아우구스투스 2세'다.

 

 

마지막 그림은 왕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름도, 재위기간도 쓰여있지 않다. 중세가 끝나고 현대로 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 프라우엔키르헤 교회( Frauenkirche: 드레스덴 성모교회)

 웅장한 돔과 완벽한 대칭을 자랑하는 바로크 양식의 이 교회는 루터(개신교) 교회이다. 독일어로 '성모 교회'라는 뜻이다.  이 교회의 설계는 건축가 '게오르게 베어 George Bahr 1666~1738)가 맡아 1726~1743까지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기존의 교회와 달리 정면을 생략하고 제대, 성단소, 파이프 오르간을 신도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배치한 파격적인 평면 구성을 취했다. 특히 중앙 지지대 없이 8개의 기둥이  떠 받드는 12,000톤의 사암으로 제작한 높이 96m의 웅장한 돔은 드레스덴의 랜드마트가 되었다.  교회 내부에는 독일 오르간 제작자 '고트르리트 질버만(Gottfried Silbermann 1684~1753)'이 설계한 파이프 오르간이 1736년  봉헌되었고,  그 해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가 이곳에서 오르간 연주회를 가졌다.

 그러나 '프라우엔키르헤'도 다른 드레스덴의 건물들처럼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45년 2월 13일 영국과 미국 폭격기 1,200여 대가 약 3,900톤의 폭탄을 드레스덴 도시에 쏟아부었다. 이로인해 25,000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드레스덴 전 지역이 불탔다. '프라우엔키르헤'는 이틀을 견뎠지만, 교회 내부 온도가 1000도를 넘어서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돔이 폭발하면서 붕괴됐다. 잔해가 그대로 방치되자 시민들은 폐허에서 파편을 골라내 번호를 매겨 보관하여 재건이 될 때 재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이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려던 당국에 항의해 계획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 '프라우엔키르헤'는 평화와 인권의 상징이 되었고, 독일 통일 후 복구 과정에서 과거 폭격했던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복구에 나섬으로써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건물 꼭대기에 화해의 상징으로 십자가와 보주가 설치되었고, 1945년 2월 공습에 투입된 영국군 병사의 아들이 금세공인으로 제작에 참여했다. 쓰러졌던 '마르틴 루터' 동상도 원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다만 파이프 오르간은 질버만의 원설계도가 남아 있음에도 새 것을 설치했으며,  돔의 쿠폴라 (소형 원형 돔)는 직접 올라가 볼 수 있게 하였고, 실내 회랑은 콘서트, 명상,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하여 2005년에 축성식을 거행했다.

 

당시 불에 거슬렀던 벽돌(약 44%)과 새 벽돌의 차이가 선명하게 보인다.
예수의 승천, 중앙 제단화. 그 아래 그리스도와 은 촛대
파이프 오르간
96m의 종 모양의 돔이 화사하게 아름답다.
이 교회는 오체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2층 3층의 특이한 좌석 배치를 가지고 있다.
프라우엔 앞에 종교개혁자로 너무나 유명한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동상이 있다.

마르틴 루터(독일어: 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는 독일의 종교개혁가이다.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으며, 훗날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인 인물이다. 본래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회개가 없는 용서, 거짓 평안(예레미야 예언자의 가르침을 인용함)이라고 비판했으며,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는(der Rechtfertigung durch den Glauben) 이신칭의(오직 믿음으로써만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를 주장했다. 칭의를 통한 개인 구원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루터는 1517년 95개 논제를 게시함으로써 당시 면죄부를 대량 판매하던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설교자 요한 테첼에 맞섰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오직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면서 성서에 어긋나는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결국 교황에게 파문당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당시 종교와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위키 백과

노이마르크트 Neumarkt 광장

거리의 가수가 저무는 햇살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 브륄의 테라스 Bruhlsche Terrasse

1740년 아우구스트 3세의 친구였던 하인리히 폰 브륄 백작이 원래는 도시를 방어하던 요새의 일부였던 이곳을 멋진 정원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브륄의 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인 괴테는 엘베 강가를 따라 꾸며진 이 정원을 보고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엘베 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전망대이기도 하다.
                     *Enjoy 유럽

브릴의 테라스가 성벽이며 요새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브릴의 테라스에서 계단을 내려와 보이는 아치문을 통과하여 도로를 건너면 엘베 강으로 나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강가에서 유람선을 타기도 하고, 강바람을 맞으며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석양 빛에 물들어 가는 브륄의 테라스 (Bruhlsche Terrasse).  앞에 보이는 건물이 '드레스덴 조형 예술대학'
드레스덴 조형 예술 대학. 225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는 이 대학은 드레스덴답게 복원미술과 무대미술이 유명하다고 한다. 브륄의 테라스에 있는 조각가 '에른스트 리첼'도 이 대학 출신이다.
강 건너 보이는 오른 쪽 주황색 지붕의 건물은 작센 주 청사, 그 옆 왼쪽 건물은 '작센 민중예술 박물관'
에른스트 리첼 Ernst Rietschel,  에른스트 리첼(1804~1861)은 드레스덴 출신의 조각가로 바이에르의 '괴테'와 '실러' 조각상, 보름스의 루터 광장에 있는 루터 기념비를 설계했다.
아우구스투스 다리
브륄의 테라스를 끝까지 가면, 궁정교회와 젬퍼오퍼의 뒷모습이 보인다. 슐로스 광장 Schloss Platz 이다.
왼쪽 '카톨릭 궁정교회'와 오른쪽 '젬퍼 오퍼'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교회의 성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젬퍼오퍼 지붕의 디오니소스 청동상이 석양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