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18 인도('18.1.4~18)

델리

여름숲2 2018. 1. 23. 00:34

*  델리 1월 4일 목요일

  아시아나 항공으로 8시간만인 저녁 6시에 인도 델리 도착. 첫느낌은 자욱한 안개, 혹은 스모크?  낼 되어봐야 뭔지 알듯.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아파트를 찾아가는데, 우버택시 기사가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숙소는...그렇지. 뭐.
관리인의 안내로 슈퍼에 갔다. 헉! 술도, 물도 팔지 않았다. 힌두교국가라 슈퍼에서 술을 팔지 않는단다. 인도에서 느낀 최초의 문화적 충격이다. 공항 면세점에서 눈총받으면서 와인 한병 샀는데, 없었으면 어쩔뻔 했나? ㅋ



* 1월 5일 금요일

  

  일정:  붉은성- 점심(karim hotel) - 자마 마스지드- 라즈가트- 간디박물관-저녁(코너플레이스 태국음식점)


  델리의 아침은 짙은 스모그와 함께 시작되었다. 지독한 공해먼지에 모든 게 뿌옇게 보였다. 가뜩이나 눈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데, 지하철로 걸어가는 잠깐 사이에도 마스크를 했다. 그리고, 햇빛도 없는데 선그라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녁 때쯤 내 눈이 빨갛에 부어오를 것 같았다.
  아침은 토스트,과일, 계란으로 준비해서 든든히 먹었다. 첫 목적지는 '붉은 성'. 사라한 왕이 건설했다는 성이다. 요새처럼 생겼지만, 한때 인구 3만명이 살았다는 성이다. 붉은 사암에 새겨진 꽃문양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넓은 정원을 걸으며, 잠시 델리의 시끄러움과 먼지를 잊었다. 고즈녁하게 평화로웠던 순간도 성밖을 나오는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섭게 달려드는 릭사의 호객행위를 s에게 맡겨두고, 사이클 릭샤를 타고 점심을 먹기위해 카림호텔로 갔다. 곡예 신공을 펼지며 뒤엉켜 있는 자동차,오토락샤. 자전거릭샤 등의 소음과 함께 재래시장을 거쳐  카림(Kirim)호텔에 왔다. 자마 마스지드 남문 바로 앞 골목으로 조금 들어와 왼쪽에 있는 허름한 골목에 카림의 이름을 단 여러개의 식당들이 있고, 식당마다 커다란 화덕을 피우며, 치킨과 양고기, 난 등의 무굴요리를 판매하는 곳이다. 말만 호텔이지 현지민 시장통 골목에 불을 피우며,난이며 양꼬치들을 구워내고 있는 100년 전통의 식당이다. 꽤 유명한 집인지 현지민들과 관광객들로 가득찼다. 우리도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했는데,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바퀴벌레 한마리가 테이블에 기어가고 있었다. 순간 우리 사이에 팽뺑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때 송샘이 바퀴벌레를 탁 밀어서 테이블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헐! 하루만에 인도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다. ㅋㅋ ㅠㅠ
  다음 코스는 '자마 마스지드' 이슬람사원이었는데, 사진찍는 값으로 300 루피를 내야한다고 해서 우리는 카메라를 놓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기여코 무슬림복장을 이유로 100루피를 받아갔다.
 다음은 간디의 무덤인 '라즈가트'와 간디박물관.
 간디는 신이 되어 있었다. 간디 무덤에 가기 위해서는 사원 입장 때처럼 신발을 벗어야했으니, 무덤은 무덤이 아니라 사원이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원이어서 잠시 누워 곤한 허리를 펴주었다. 간디박물관은 익히 우리가 아는 간디의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뉴델리 최고의 번화가인  코넛플레이스였다. 환전하고, 타이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하고, 물어서 주류판매점을 찾아갔다. 와인 한병과 맥주 10캔을 샀는데, 술을 담을 봉투도 주지 않는다.ㅠㅠ 인도 남자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작은 위스키를 하나씩 사더니 몸 어딘가에  재빨리 숨기고 사라졌다. 우리는 배낭에 나눠담고 지하철을 타러갔다. 그런데,지하철 검색대에서 송샘이 걸렸다. 지하철에 술을 가지고 탑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 문화적 충격!  '1일 1충격'이다. 인도는.  어리둥절하고 놀란 우리들의 표정이 딱했는지 다음에는 안된다고 하며 지하철 탑승을 허락했다.ㅠㅠ
  인도는 더럽고  시끄럽고 복잡한데, 묘한 구석이 있다. 아수라장의 교통상황은 나몰라 하는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간디박물관 앞에서는 핼맷 안쓴 청년들을 칼같이 잡아서 벌금 매기고 있었다. 또, 아침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인데,  탑승 후 자리에 앉고 보니, 옆에 아가씨가 여기는 여성 전용칸이라 남자는 못탄다고 알려준다. 쫓겨난 남자들이 탄 옆칸에 가보니,거기는 꽉차서 복잡했다. 이건 뭐지?



*델리 1월 6일

 

  일정; 국립박물관- 점심-인디아게이트- 악샤르담
 

  오늘은 국립박물관이다. 어느 나라나 최고급 문화의 정수는 박물관에 있다. 그러나 힘이 드는 일이라 일행에게 권하기가 망설여졌지만, 또 박물관을 빼고 어찌 인도에 왔다 하겠는가?
  아름다웠다. 이미 1세기부터 양각의 조각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시바 청동상'과 '상아 제단'이 아름다웠다.
  점심을 먹고 인디아게이트에 갔다. 개선문 같은 형식인데,거대했다.
  다음 코스는 아침에 만난 아파트 주인이 아름답다고 추천해서 힌두교 사원에 갔는데, 근처에 가면서부터 거대한 주차장에 꽉찬 차들을 보니,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거대한 인파..인파...가방과 핸폰은 맡기고 가야한다고 해서 .또,줄....짐을 맡기고, 다시 입장 줄. 줄..줄....  외국인은 없고, 사방에 인도인들로 꽉찬 게이트 줄은 숨막혔다. 폐쇄공포증을 부르는  낯선 사람들의 벽이였다. 그렇게 불쾌한 줄을 섰는데, 결국 입장을 거절당했다. 핸드폰 1개를 가져온 탓이었다. 아까 출입구에서 4명에 1개는 허용된다 해서 가져온 것인데, 아까 짐 맡기는 데서 허가증을 받아와야 한단다. ㅠㅠ  결국 우린 포기하고 돌아와야 했다. 테러 위험 때문일까?  종교기관에 들어가는 일이 이토록 어려워서야....
오늘의 '1일 1쇼크'는 사람, 사람 , 사람이다.

 결국 이 힌두 사원은 출국하는 날인 1월 18일 다시 왔는데, 그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사진은 허용되지 않았다. 힌두교도의 자존심을 걸고 거대하고, 아름답게 조각했는데, 현대 예술의 완성도는 고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 1월 4일 델리 공항




* 1월 5일

 레드 포트 Red Fort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타지마할을 지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 왕이 건설한 요새다. 힌디어로 붉은 성을 뜻하는 ‘랄 낄라(Lal Qila)’로도 통용된다. 1938~1948년 사이에 세워졌으나 샤자한 왕이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를 당하고 아그라 포트에 갇히면서 레드 포트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아우랑제브가 통치하던 시기, 무굴 제국은 내란으로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고, 19세기 델리를 침략한 영국은 이곳을 군용 막사와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완공 이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대리석 상감을 비롯한 내부 장식들은 모두 약탈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터에 남아 있는 웅장한 건물들과 한겨울에도 항상 푸르른 정원은 한때 번성했던 무굴 제국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해마다 독립기념일(8월 15일)에는 총리의 대국민 연설이 이곳에서 열린다.




라호르 문(Lahore Gate)

레드 포트 안으로 입장하는 문으로 현재 파키스탄령인 ‘라호르’를 향하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독립 이후 항상 인도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나우바뜨 카나(Naubat Khana)

‘드럼의 집’은 음악가들이 왕족과 손님들을 위해 연주하던 공간이다. 위층에는 인도 전쟁 기념관(Indian War Memorial Museum)이 있다


나우바뜨 카나(Naubat Khana) 의 뒷면.

붉은 사암에 조각된 꽃 문양이 아름답다.



디와니암(Diwan-I-Am)

왕은 공개 접견실인 이곳에서 신하들의 의견을 듣곤 했다. 정교한 대리석 상감과 귀한 보석들로 꾸며져 있었지만 대부분 약탈을 당했다. 영화를 누렸던 흔적만 남은 채, 방치되어 있던 홀은 1898~1905년에 복원되었다.



내부 모습











디와니카스(Diwan-I-Khas)

카스 마할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비공개 접견실인 디와니카스가 나온다. 왕은 이곳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했다. 우윳빛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중앙에는 순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공작 모양의 왕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739년 나디르 샤(Nadir Shah)가 약탈해갔고, 1760년 마라타 족이 은으로 된 천장을 떼어갔다.



모띠 마스지드(Moti Masjid)

진주 모스크로 알려진 이곳은 1659년 아우랑제브에 의해 지어졌다. 뒤늦게 추가된 건물이지만 요새의 다른 부분들과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살짝 비틀린 내벽은 정확히 메카를 향하고 있다.


 이슬람 시장 거리 - 찬드니초크




카림 호텔 가는 길.


인도 최대의 이슬람 사원 자마마스지드(Jama Masjid)



1656년에 샤자한에 의해 완공된 인도의 이슬람 사원이다.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라 하는데, 게이트를 통과하면, 맨발로 다녀야 한다. 그 보다 불쾌한 것은 사진을 찍으려면, 300루피를 내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을 안찍겠다고 하고 들어갔는데, 결국 들어가자마자 이슬람 복장이어야한다며, 망또같은 것을 하나 걸쳐주더니, 100루피를 받아낸다. ㅋㅋ 큰 돈은 아니지만, 종교 기관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한다는 게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인데, 이런 식으로 폐쇄적인 것이 못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Jama Masjid, Delhi.jpg

마스지드이 자한 누마(페르시아어: مسجد-ا جہاں نما→세계를 바라보는 모스크)는 인도 델리에 있는 모스크로, 인도 최대의 모스크 하나이다. 간단히 자마 마스지드(우르두어: جامع مسجد, 힌디어: जामा मस्जिद)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통칭 자체는 '금요일 (집단 예배에 사람들이 모이는) 모스크'라는 뜻이며, 이슬람권 전역의 도시와 비슷한 명칭으로 알려진 사원이 다수 존재한다.

25,000여명이 예배할 수 있다. 또한 북문 근처의 수용 창고에는 사슴 가죽에 쓰여진 코란을 비롯한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위 사진과 글은 위키 백과에서 캡처한 것임)



 라즈가트 Rajghat & 간디박물관


간디 추모 공원, 1948년 1월 30일 극우파 힌두교도 청년에게 암살당한 마하트마 간디의 유해를 화장한 곳.


화장터로 가는 길은 이처럼 평화롭고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저 잔디에 누워 델리의 소음과 복잡함을 잠시 잊었다.





화장터 중앙에는 흑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면단이 있다. 중앙에 간디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오, 신이여 Hey, Ram'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저 입구부터 신발을 벗게 하고 있어, 간디가 '신격화' 되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라즈가트의 뜻이 '왕의 무덤'이라고 하니, 인도인들에게 '간디'는 이미 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위인들이 비슈누의 화신(부처도 비슈뉴의 아바타임)이라고 믿는 그들의 힌두 사상에 의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신의 아바타 보다는 인간 '간디'가 더 좋다.


화장터 가는 길에는 이처럼 간디가 남긴 말들이 새겨져 있어, 명상에 잠기게 한다. 특히 그의 비타협을 생각했다.


 간디 박물관(Gandhi Museum )








1757년부터 1947년까지 인도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는 간디 박물관이다. 인도에는 5개의 ‘간디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1948년 델리에서 간디가 암살당할 당시 입었던 피 묻은 도띠(Dhoti)가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디는 마두라이를 여러 번 방문했는데, 1921년 인도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의미로 마두라이에서 처음 도띠를 입었다고 한다.(* 다음 백과 인용)


유명한 간디의 7대 사회악이 걸려 있었다.

1.철학없는 정치(PoliticswithoutPrinciple)

2.도덕없는 경제(CommercewithoutMorality)

4.노동없는 부(WealthwithoutWork)
5.윤리없는 쾌락(PleasurewithoutConscience)
6.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withoutHumanity)

7.헌신없는 종교(WorshipwithoutSacrifice)



* 1월 6일

 국립 박물관


 간단한 인도 역사

  1.인더스 문명 : BC 3000~2000 . 청동기. 흑인계 원주민이 드라비다족이 인더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이룬 문명

      - 고대 도시 '모헨조다로' 유적- 현재 파키스탄에 위치.

      - 북인도 '하라빠' 문명

  2. 아리아 문명(베다 시대) : BC 2000~1000. 힌두교

     - 중앙 아시아 지역에 살던 백인계 유목민이 아리아인들이 들어와 드라비다인들을 노예로 삼음.

       이때 부터 카스트 제도가 생김. 산스크리트어 및 힌두교 성립. 청동기 후기에서 철기 초기

  3. 마우리아 제국 (공작 왕조): BC 321~184.

     - 인도 최초의 통일 국가. 불교가 융성

     - 마가다 국의 찬드라 굽타가 BC321년 난다 왕조를 멸망시키고 건립

     - 3대 아소카 왕이 전 인도 통일

  4. 쿠샨왕조 : BC 78~AD 226. 불교

     - 박트리아 지역의 쿠샨족의 카니슈카왕이 건립. AD 100 대승불교 발생

     - AD 226넨에 이란 지방에 기원을 둔 사산 왕조에 멸망. 이후 소국으로 분열

  5. 굽타 왕조 : 380~606년. 힌두교 융성

     - 찬드라굽타 1세 건립. 606년 훈족에 멸망함

  6. 이슬람 침략기 :607~1525

    - 711년 이슬람 세력이 인도  무슬림 국가 건립

    - 10세기 말부터 터키가 침략 → 소국 분할→ 13세기 델리에 델리 술탄 왕국 건립

  7. 무굴 제국 : 1526~1858. 이슬람 왕국

    - 1526년 징기스칸의 후손인 '바부르'가 건립

    - 3대 악바르 시대 대제국 건설, 이후 150년간 전성시대. 특히 5대 샤자한 시대의 '타지마할' 등의 건축물 유명함

    - 1857년 영국 동인도 회사에 대한 저항인 세포이 항쟁을 거쳐 1858년 영국 직할시로 편입됨

    -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됨



인도 카스트 제도

카스트에 따른 인도인의 신분은 브라만(승려).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바이샤(상인). 수드라(일반백성 및 천민) 등 4개로 구분되며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는 않는 불가촉천민이 있 다. 불가촉천민은 '이들과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각 계급에서도 구체적인 직업에 따라 계급이 세분되어 바이샤와 수드라의 경우 2천여개 이상으로 세분된다. 1947년 카스트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었으나 인도사회에서는 여전히 카스트에 따른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신분이 다른 계급간에는 혼인을 금지하며 이름에서부터 신분간의 차이가 있다. 독립 후 불가촉천민제는 폐지되었으며 차별 금지를 위한 특별법도 만들어졌다. 정부에서는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장학금제도를 설치하고, 의석의 일부를 할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제도 개혁과 사회의식의 변화로 인해 카스트 제도는 점차 해체되어 가는 추세이나 내혼제를 비롯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대도시와는 달리 촌락에서는 차별이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한중 근현대사 블러그 인용)




Surya: 태양신 수리야로 13세기 작품이다.

Surya (Sun god). Eastern Ganga, 13th century AD.
 Konarak, Orissa. Stone.Eastern Ganga Stone


수라야에게는 아내 삼즈나(Samjna), 아들  마누(Manu), 딸 야무나(Yamuna), 그리고 쌍둥이 남매 야마(Yama)와 야미(Yami)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수라야의 열기를 참지 못한 삼즈나가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뒤쫓아온 수라야에게 장인이 열기를 줄이기 위해 천상의 대장장이 '비슈와카르만(Visvakarman)에게 몸을 다듬을 것을 권합니다. 수라야의 허락으로 비슈아카르만이 그의 몸 1/6만 남겨두고 , 5/6를 잘라내어 천상의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쉬누의 원반', '시바의 삼지창', '쿠베라의 마차', '야마의 지팡이', '스칸다의 창' 입니다.

이후, 수라야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삽타마트리카스 Saptamatrikas ( "7 명의 신성한 어머니")

힌두교 판테온의 주요 신들. Matrikas는 브라흐마니 Brahmani (창조자 신 Brahma에서), 바이슈나비 Vaishnavi (비슈누 신에서), 마헤스와리 Maheshvari (Shiva), 인타라니 Indrani (Indra, 신의 왕),쿠마라 Kaumari (Skanda의 Shiva의 아들뿐만 아니라) 전쟁의 신), 바라히Varahi (Varaha, 멧돼지 형태의 Vishnu 아바타), 짜문다Chamunda (Devi의). 악과 싸워 선을 보호하는 여신. 플레이아데스 성단에 있는 일곱개 별의 인격화로 보기도 한다.





모히니(Mohini)

'우유의 바다'에 나오는 섹시한 여자.

우유의 바다를 젓는데 힘이 부족한 신들이 아수라의 도움을 얻어 감로수인 '암리타(Amrita)'을 얻는다. 그러나, 아수라들이 이 암리타를 가로채갔다. 이에 신들이 비쉬누에게 도움을 청했고, 비쉬누는 자신의 모습이 이 모히니로 바꾸어 아수라들에게 다가가 자기가 암리타를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모히니의 미모에 혼을 빼앗긴 아수라들은 암리타가 담긴 항아리를 넘겨주었고, 모히니는 이것을 신들에게 돌려주었다.

이 모히니는 비쉬누가 변한 모습이지만, 아바타로 여기지는 않는다.





브라하마, 비슈뉘, 시바



18`19세기 왕족에 의해 만들어진 상아제단. 조각이 대단히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20세기 만들어 것으로 부처님의 일생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세밀화. 인도의 신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엄청난 세밀화들이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왼쪽은 16세 소녀의 단장이란 그림이고, 오른쪽은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와 그의 부인 '시따', 그리고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원숭이신 '하누만'이다.

  비슈누는 여러 화신(아바타)의 변신해 인간세상의 악을 물리치는데, 물고기의 화신 마츠야, 거북이의 화신 쿠르마, 멧돼지의 화신 바라흐, 사자의 화신 나라심하, 난장이 바마나, 라마야냐의 라마, 도끼를 든 파라수라마, 푸른색의 피리부는 사나이 크리쉬나, 붓다, 그리고 세상의 끝에 인간을 구원하러 나타난다는 칼키이다.

 칼키는 세상의 끝에 백마를 타고,큰칼을 들고 나타나 세상의 정의를 구원하고,마

 침내 세상이 순수와 평화로 가득차게 되면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고 한다.











왼쪽의 '나타라자'에 감동해서 자이살메르 성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산 '나타라자'. 엄청 더럽고 새까맣는데, 있는 힘을 다해서 이렇게 만들었다. ㅎㅎ


Nataraja

Chola, 12th Century CE Tamilnadu

높이 96Cm, 넓이 82.2cm, 청동


시바 신은 4개의 팔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무지를 상징하는 난쟁이 아파스마라푸루샤를 딛고 서서 머리털을 날리며 춤추는 모습을 하고 있다. .

뒤쪽의 오른손은 다마루(ḍamaru:모래시계 모양의 북)를 들고 있고, 앞의 오른손은 시무외인(abhaya-mudrā:손바닥을 밖을 향해 펴는 수인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을 짓고 있다. 뒤쪽 왼손은 아그니(agni:불)를 단지에 담아 맨손으로 받치고 있고, 앞의 왼손은 가자하스타(gajahasta:코끼리코)의 자세로 가슴을 가로질러 팔목을 반쯤 돌려 위로 올린 왼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몇 다발로 곤두선 머리카락은 강가(Gaṇgā:갠지스 강을 인격화한 여신)·꽃·해골·초승달을 사이사이에 끼워 변화를 주었으며 그의 몸은 원광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나타라자 상(像)에서 가장 흔한 형태인데, 춤에 관한 고대 산스크리트 문헌에서는 부장가트라사(bhujaṅgatrāsa:뱀의 전율)라고 하였다.

나타라자 상이 중요한 뜻을 갖는 이유는, 불꽃으로 된 원형이 상징하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의 근원은 바로 시바 신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춤의 목적은 인간을 미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고 춤을 추고 있는 곳인, 우주의 중심 치담바람(chidambaram)은 인간의 마음속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춤추는 모습은 시바의 5가지 행위(pañcakṛtya)를 상징한다. 북은 창조를, 시무외인은 보호를, 불은 파괴를, 땅을 밟고 있는 발은 화신을, 위로 들어올린 발은 해탈을 나타낸다.

조각품이나 그림에서 보이는 시바 신의 다른 춤으로는 배우자인 데비와 함께 화장터에서 추는 춤과, 카일라사 산에 모인 신들 앞에서 몇몇 신들이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가운데 추는 저녁 춤이 있다(→ 탄다바).(* 다음 백과)







가네샤(Ganesha)

 시바와 파르바티의 둘째 아들입니다. 원래는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파르바티가 목욕을 하면서, 가네샤에게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때 오랜 출타 중이었던 시바가 돌아왔고, 파르바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가네샤는 아버지를 못알아보고 길을 막습니다. 시바가 아무리 '시바'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막습니다. 시비끝에 시바가 삼지창으로 소년의 목을 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파르티바가 불같이 화를 내며 아들을 살려내라고 하자, 다급해진 시바가 마침 지나가던 코끼리으 머리를 잘라 대신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시바는 가네샤의 탄생기념으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무한한 힘'을 선물했고, 파르바티는 시바의 군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브라흐마와 그의 아내 '사라스와티'는 책과 연필을, 비쉬누의 아내 락쉬미는 돈주머니를 주었습니다. 결국 가네쉬는 힘과 군대, 총명함, 부귀영화...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이기도 합니다. 그의 상징은 만(불교의)자 입니다.

  하나 더! 아수라 가자무카가 시바를 찬양하며 고행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시바가 그에게 영생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가자무카는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누구도 그를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가네샤에게 간청했고, 가네샤가 자신의 오른쪽 상아를 분질러 카자무카의 몸에 꼽았습니다. 그러자 카자무카는 괴로움에 뒹굴다가 생쥐로 변합니다. 가네샤는 이 생쥐를 자기의 탈 것(바하나 Vahana)로 삼습니다. 그래서 가네샤 그림에는 생쥐가 함께 나옵니다.

 또 하나 더! 가네샤는 인도과자 모다끄를 좋아해서, 항상 그의 손에는 '모다끄'를 담은 그릇이 있습니다. 어느날 수행자가 모다끄(인도과자)를 시바에게 선물했습니다. 스칸다과 가네쉬는 서로 먹겠다고 싸웁니다. 그래서 시바가 말하지요. " 누구든 이 세상 세 바퀴를 빨리 돌고 온 놈이 먹어라" 스칸다가 쏜살같이 공작을 타고 달려나갑니다. 가네쉬는 생쥐의 등에 타고 서 있던 시바의 주위를 뱅뱅 돌았습니다. 스칸다가 돌어왔을 땐 이미 모다끄를 다 먹은 가네샤가 배를 쓰다듬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말합니다 " 나의 세상은 아버지야"

  가네샤가 뚱뚱해진 몸으로 생쥐를 타고 돌아가다가 그만 굴러 떨어져 그만 목이 뿌러집니다. 그리고, 그 부러진 목으로 모다끄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달이 깔깔 거렸습니다.  창피하고 화가 난 가네샤가 오른쪽 상아를 부러뜨러 달을 향해 던지며 저주를 했습니다 " 이제부터 달은 영원히 밤을 밝히지 못하리라" . 그러자 세상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편히 쉴 수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이 가네샤에게 간정합니다. 제발 달을 용서해주라고. 아직 분이 덜 풀린 가네샤는 한달에 한번만 둥근달이 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지금도 인도에서는 매월 음력 4일 ( 이 날이 달이 웃은 날)에는 달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날 달을 보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날 단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행동을 조심한다는 의미겠죠.




Yogini Vrishanana. Pratihara, 10th - 11th century AD.
Lokhari, District Basti, Utttar Pradesh. Stone.

 원래 프랑스 사람에게 불법 거래된 것이었는데, 그의 사후 미망인이 2008년 인도 정부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Siva Parvati and Family

Early western Chalukya. 10세기

높이 108, 넓이 99Cm. storn

'파르바티'는 항상 '시바'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시바가 공처가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사이좋은 이 부부의 모습 때문인지 인도 가정에서는 이 가족 그림을 많이 걸어 놓는다고 한다.


오른쪽 아래에는 새를 타고있는 첫째 아들 스칸다(Skanda), 왼쪽 아래에 아들 가네샤(Ganesha)가 보인다.

머리 뒤로 보이는 것이 히말라야 카일라스(kailash) 산으로 시바신의 집이다.  이산은 티벳 서쪽 히말라야 해발 6714m의 바위산이다. 이곳에서 시바는 명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바신은 명상과 수행의 신이기도 하다.





델리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그래서 이곳이 성지 순례 코스이기도 한가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 탑 주변에서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Buddha

간드라(Gandhara), 2세기




Kubera(God of wealth)

Kushana, 2세기


부의 신

땅·산 및 광물질이나 보석 같은 지하의 모든 보물, 기타 일반적인 재물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랑카(스리랑카)에 살았으나 이복형제인 라바나가 궁전을 빼앗아서 지금은 카일라사 산 위의 시바의 집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산 속의 집에서 살며 그곳에서 모든 종류의 요정들의 시중을 받는다고 한다. 쿠베라는 북쪽의 수호신이고 대개 돈자루나 석류나무를 들고 때때로 사람 위에 올라 탄 배가 커다란 난쟁이로 묘사된다. 바이슈라바나 또는 잠발라로도 알려져 있어서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자이나교 신화에서도 친숙한 존재이다. 불교 조각에서는 몽구스와 같이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다음 백과)




ㅇ인도 가기 전에 '라마야나'를 읽고 갔는데, 라마와 라마의 동생 '락슈마나'에게 원숭이인 '하누만'이 절하는 장면을 그린 세밀화를 보니, 반가웠다.

18세기에 그려진 '자이푸르'스타일의 그림이라고 적혀 있다.





'라마'와 그의 아내 '시타'. '라마'는 비쉬누의 화신이다.







중국의 고대신 '복희'와 '여와'

복희여와도는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남신인 복희와 여신인 여와를 주제로 한 그림이다. 한(漢) 나라 때의 돌에 새긴 그림, 당(唐) 나라 때의 채색한 비단 그림, 아스타나 무덤에서 발견된다. 복희와 여와는 상반신은 사람 모습을 하고, 각각 손에는 창조의 상징물인 구부러진 자(曲尺)와 컴퍼스를 들고 있다. 몸을 꼬고 있는 모습은 세상의 조화와 만물의 생성이 초래됨을 나타내고 있다.










중정에 있는 비슈누 상. 세상을 유지하는 비슈누는 4개의 팔을 가진 신상으로 표현된다. 위 사진의 오른쪽 손에 든것이 운명의 수레바퀴인 '차크라' 왼쪽 손에 든 것은 생명의 탄생과 창조를 상징하는 '소라'이다.

 


인디아 게이트(India Gate)




세계 제 1차 대전에서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영국은 전쟁을 도와주면 인도를 독립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영국의 약속을 믿고,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인도 병사 약 8만 5천명이 전사했다. 이후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인도의 독립투쟁은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전사한 인도 병사를 추모하는 위령비로 파리의 개선문을 바탕으로 '에드워드 루티언스'에 의해 설계된 문 모양의 기념비이다. 높이 42m의 아치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인도 병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힌두사원 악사르담(Akshardham)

2005년에 완공된 인도 최대의 힌두사원이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 인터넷을 검색하여 재작성한 것임. 사진 또한 인터넷에서 재작성된 것을 다시 받아온 것임.



   악사르담 사원은 '스와미나라얀(Swaminarayan) 악사르담으로 불리기도 한다.이 사원은 1만 년 역사에 이르는 인도의 전통과 힌두문화,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7000명의 장인과 300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2005년 완공되었다.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이 사원은 석재로만 정교하게 만든 중앙의 신전과 바그만 스와미나라얀의 삶과 인도 역사으 사건들을 전시한 전시관, 영화관, 음악분수,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전의 크기는 높이 43m, 폭 96m, 길이 110m 이고, 겉은 붉은 사암으로, 내부는  흰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있다. 철재나 콘크리트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신전은 화려하게 조각된 234개의 기둥, 9개의 돔,그리고 2만여개의 신상, 힌두의 위대한 사두(Sadhu,  고행자)들, 신도들, 아차르야(acharya,종교적 스승)의 인물상들이 있다. 기념물은 또한 기초의 가젠드라 삐트( Gajendra pith: 코끼리 기단)가 특징이다. 이곳에는 실물크기의 코끼리 148마리가 조각되어있는데,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코끼리와 자연, 코끼리와 인간, 코끼리와 신 이라는 주제로 장식되어 있다.





  신전 내부 중앙의 돔 아래에 3.4m 크기의 무르띠(Murti: 신상) '바그바 스와미나라얀(Bhagwan Swaminarayan)'의 상이 놓여져 있다. 신상의 주변에는 구루(Guru: 각 지역의 지도자, 스승)들이 배알하고 있다. 각 조각상은 힌두 전통에 따라 빤츠 다뚜(Paanch daatu다섯개의 금속)로 만들어졌다. 이곳에는 라마와 시따, 라다 끄리시나, 시바와 파르바티, 락시미 나라얀 등 다른 힌두의 신상들도 있다.

또한 이 사원에는 돌아가며 '스와미나라얀'의 일생과 관련된 조각들과 그림들이 있어. 이 사원이  힌두 종파 중  스와미나라얀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외벽의 코끼리: 주제가 코끼리와 자연임을 알 수 있다





 섬세한 조각들. 그러나, 수는 많고 정교하고 아름답기는 한데. . . 고대 건축물이 주는 감동은 없다.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에게 보란듯이 작심하고 세운 거대한 사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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