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일본(07.7.오사카,나라, 교토, 고베

셋째날( 나라, 호류지)

여름숲2 2008. 8. 2. 13:54

 *일정표

 

7/20

(일)

시간

일정

내용

비고

07:30-08:30

숙소

기상 및 아침식사

 

08:30-10:30

나라

미노스지센 - 난바 (20분)

JR 난바 - 나라(40분) 540엔

 

11:30

①도다이지

JR나라역에서 버스를타고 도다이지까지 이동(15분 소요)

남대문(정문)- 금강역사

대불전(500엔) - 세계문화유산, 현재건물은 1709 건립

 청동 대불(747-749년, 세계 최대)

나라 1일 교통권 구입(600엔)

12:30

②니가쓰도(이월당)

무료,대불전 출구 왼쪽으로 10분

 

1:00

③산가쓰도(삼월당)

500엔

 

1:20

④나라코엔

사슴공원

 

1:40-

2:40

 

⑤나라국립박물관

420엔 

국보로 지정된 고미술품, 불교미술품의 정수를 보여줌

<국보 법륭사 금당전> 관람(1000엔)

 

4:00

호류지

JR 나라역-JR 이카루카역(12분, 210엔)

남쪽 출구에서 버스(편도 170엔, 8분)

입장료 1000엔

 ①금당 -세계 最古의 목조 건축물

         담징의 금당벽화 모사

 ②오중탑

 ③백제관음상 - 아스카 시대 만들어진 불상

 ④동원 -앞의서원에서 100여미터

          성덕태자의 명복을 빌기위함

 ⑤주우구지(중궁사) -성덕태자가 그의 어머니을 위해 창건한 절, 500엔

 

5:00-

6:00

오사카

JR 호류지 -JR 우메다(620엔,20분)

 

8:00

도톰보리

저녁

 

10:00

숙소

 

 

 

  

 * 여정

 실제 나라의 일정표는 마구 수정되었다. 긴데스 전철이 아니라 JR을 타면서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불볕 날씨와 맞물리면서 엉크러졌다.

 JR 나라역에 도착하자 온세상이 불타고 있었다. 도로에 발을 내딛자마자 갑자기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고, 무조건 버스를 타야한다며, 1일 교통권을 끊었다. 긴테스 나라역과  달리  JR 나라역은 너무 멀었다. 결국 버스를 타고 동대사까지 직접가기로 했다

 

 동대사로 가는 길에 나라코엔이 있는데, 그곳에 사는 사슴이 도로 한복판까지 나와서 사람들과 뒤엉켜 있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준 탓인데, 손에 뭘 들고 있다가 끝까지 쫓기는 사람을 보니 무섭다. 인형은 귀여운데,실제 달려드는 사슴은 짐승(?)이었다!

 

 11:59

동대사의 사천왕상!

 목조 사천왕상은 묵은 것들이 풍기는 거무튀튀한 어둠을 풍기며,

부리부리한 두 눈을 힘주어 뜨지만, 그 선량함만은 어쩌지 못하고 ......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 건축물

쇼오무황제가 부처의 위대한 이미지를 신성시하기 위해서 세웠으며, 일본의 모든 지방 절의 총본사로 되었다. 752년 완공된 건물은 화재로 붕괴되고 ,1692년에 현재의 건물 지어졌는데, 원래 크기의 3분의 2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본당 앞에 있는 석등

 

 세계 최대라는 청동 대불상높이 16.2m, 무게 250t )

 

 대불전 안에 있는 목조 사천왕상

 

 이 거대한 막새가 이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탓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좁은 통로을 통과하려고 애쓴다.

건물이 크다보니, 건물을 받치는 기둥이 이처럼 굵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관광상품이다.

아무튼, 일본에 오니, 이 나라는 참 축복받은 나라다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불에 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부석사'를 생각하며 잠시 마음이 무거웠다.

 

 12:55

더위에 겁을 내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가까스로 오른 이월당, 삼월당!

 

 일종의 신사 구실을 하는 절인데, 여러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 같다

 

 

 이월당에서 본 나라의 전경

 

 이월당과 삼월당, 입장료와 내려가기로 약속한 시간 등을 고려해서 삼월당의 내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원래 계획에 있었던 춘일대사(가스가타이샤)는 이 무더위를 뚫고 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아쉽지만 접었다.ㅠㅠ

대신, 나라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마침 나라박물관에서 <호류지(법륭사) 금당전>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담징의 호류사 금당벽화(12면 관음보살)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박물관은 인산인해였다.

우리가 담징이 그린 것으로 알고 있는12면 관음보살을 일본에서는 담징이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한다. 더구나 불에 타서 지금있는 것은 복원한 그림이다. 그러나, 얼마나 정교하게 복원했는지 복원한 그림 자체가 그야말로 감동이다. 생각보다 거대한 크기로 사람키를 훌쩍 뛰어넘는 관음보살이 12면에 그려졌으니, 금당의 모습이 얼마나 화려했을지 상상해본다. 가슴이 뛴다

그밖에 여러 부처상과 사천왕상, 천장덮개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천장 덮개의 섬세하고 우아한 조각이 아름다웠다. 1000년을 살아 우리 앞에 서 있는 나무와 금속은 세월을 뛰어넘는 영원에 속하는 것이 같는 감동을 준다. 오래된 것의 아름다움! 오래오래 가슴이 먹먹했다.

 

 

* 호류지

더위가 사람의 이성을 잠시 마비시켰나보다

버스를 타고 JR역에 하차하여 기차를 타면 12분에 갈 것을 긴테스 역을 보자마자 버스타자고 내려버렸다.  기다려 탄 버스는 1시간 넘게 갔고, 결국 버스비도 7000원이나 받았다.(헉!. JR은 2400원에다, 시간도 짧은 것을;;;)

4시가 넘어서 호류지에 도착했다 ㅠㅠ

 

호류지절은 아스카시대(6세기 중엽-8세기 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찰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졌다.

유래문을 보면 요메이 천황이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절과 불상을 건립하도록 명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며, 후일 스이코천황과 쇼토쿠 태자가 요메이 천황의 유언을 받들어 607년에 절과 본존 약사여래상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670년 불에 소실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가람건립연대에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한다.

 

 중문(6세기 중기-8세기 초기) 

지붕이 깊숙히 덮혀 있는 처마, 그 처마 밑에 정교하게 새겨진 공포와 아름답게 휘어진 난간, 그 난간을 받쳐주는 엔타시스 양식의 기둥, 하나하나가 아스카 건축양식의 진수를 결집시킨 건조물이다. 육중한 대문과 좌우에 배치된 소상으로 만들어진 금강역사상(나라시대 8세기)은 동서로 길게 이어진 회랑과 살창과 대조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나란히 세워진 탑과 금당을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

 

 오층탑

아스카시대(6세기 중기-8세기 초기)

높이는 기단부에서 약 31.5m이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오층탑이다. 이 탑의 최하층의 내진 속에는 나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소상( 塑像)들이 다수 안치되어 있으며, 동쪽 면에는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문답하는 장면, 북쪽면은 석존의 입적 장면, 서쪽면은 석존의 유골(사리)의 분할 장면, 남쪽면은 미륵보살의 설법장면이 그려져 있다

 

 멋진 금당!

 아스카시대(6세기 중기-8세기 초기)

호류지절 본존이 안치된 불당. 이 건물 속에는 쇼토쿠 태자를 위해 건조된 금동석가 삼존상, 태자의 부왕인 요메이 천황을 위해 건조된 금동 약사여래좌상, 자당인 아나호베노 하시히토 왕후를 위해 건조된 금동 아미타여래좌상(가마쿠가시대 12세기 후기-14세기 전기), 이들을 수호하듯이 지켜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장목으로 만들어진 사천왕상은 사귀(邪鬼)의 등위에서 위엄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밖에도 목조 길상천 입상, 비사문천 입상 등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또한 천정에는 서역문화의 영향이 짙은 천인과  봉황새가 비상하는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린 닫집이 걸려 있으며 주위의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가 그 유명한 담징의 12면 관음보살상이다. 1949년 소실되어 현재는 패널에 그려진 모조 벽화임)

- 이 금당 내부의 보물들은 이미 나라박물관에서 보고 왔지롱!

 

*7세기 고구려승 담징의 걸작으로 알려진 일본 호류지 금당벽화 12폭을 대면하는 순간들은 긴장과 희열의 연속이다. 벽화 감상의 황홀경을 절이 있는 일본의 옛 도읍 나라의 국립 나라박물관(www.narahaku.go.jp)에서 누렸다. 6월14일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금당의 보물들을 꺼내어 선보이는 ‘국보호류지금당전’(7월21일까지)이 열린 덕분이다. 금당이 최근 반세기 만에 당분간 내부 대수리에 들어가면서 그 사이 안의 사천왕과 불상, 불상 덮개 장식 등 주요 보물들을 잠시 모셔왔다. 금당에 가도 어둑한 실내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벽화와 불상의 실체를 밝은 조명 아래서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모두 12폭의 벽화는 금당 동서남북 벽면에 각각 붙은 4개 부처의 사방 극락정토도와 8개 보살 그림으로 이뤄진다. 60년 전 비극적 화재로 원래 그림은 크게 손상되고, 1968년 일본의 최고 회화 거장 14명이 1년여간 지고의 노력으로 완성해 금당에 대신 봉납한 정밀 복제화들(불탄 원화는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하지만 생생한 원작의 감동을 떠올리는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다. 화재 피해를 면한 금당 안 불상 천장벽 부근의 원화 비천상벽화 두 조각도 같이 나와 전시는 더욱 뜻깊었다.

호류지는 우리 민족사와 밀착된 문화유산이다. 6~7세기 백제·고구려 장인들의 영향으로 세계 최고의 목조건물로 꼽히는 금당과 오중탑 등 일본 아스카 시대 건물을 지었으며, 해방 이래 역사 교과서는 금당벽화가 고구려승 담징의 작품으로 전해진다고 기술해왔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소설가 정한숙의 <금당벽화>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소설 속 담징은 수나라와 전쟁 중인 조국을 걱정하다가 승전 소식을 듣고서 벽화를 그린다. 담징의 관음상 그림에 대한 작가의 시구 같은 묘사를 떠올려본다. “거침없는 선이여, 그 위엔 고구려 남아의 의연한 기상이 맺혔고… 목에 걸린 구슬이여, 이는 소식조차 아득한, 조국 땅에 남아 있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이런가?”

허망하게도 담징의 소설 속 신화는 실체를 찾을 수 없다. 12폭 벽화에 붙인 전시장의 설명판은 물론, 특별전 전시 도록의 논문 어디에도 담징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학계는 벽화를 아잔타 석굴 벽화에서 비롯해 서역과 중국 둔황, 윈강석굴, 고구려 등의 조선반도(한반도)를 경유한 동양 불교회화의 정수로 대개 요약한다. 제작자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중론이다.

이를 두고 일본인들 나름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이면에 뒤엎기 어려운 합리적 근거가 존재하며, 100년 이상 묵은 호류지의 재건·비재건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일본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7세기 초 고대국가 일본의 기틀을 닦은 쇼토쿠 태자가 호류지를 건립했으나, 원건물은 670년 큰 불에 탔으며 이후 다시 지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논란은 지금 호류지 금당이 정말 새로 지은 것인지 원형인지를 둘러싼 것으로, 벽화가 담징의 작품인지와도 직결된다. 담징은 631년 사망했기 때문에, 재건설이 맞다면 벽화는 담징과 무관해진다. 한·일 미술사가들은 삼국시대 화풍이 벽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대부분 인정하지만, 담징 제작설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호류지 근방의 발굴 성과와 금당 부재에 대한 연대 측정 결과 때문이다. 1939년 현재 금당이 있는 서원 가람 동남쪽에서 먼저 지어진 백제식의 초창기 절터인 약초가람(와카쿠샤 가람) 터가 발견돼 절을 다시 지었다는 결정적 근거가 성립됐다. 2004년 말에는 원래 절터인 약초가람 안에 그렸다가 불타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 채색 벽화 조각들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고열에 변색되거나 그을린 파편들의 발굴로 절이 불탔다는 구체적 증거가 확보된 것이다. 금당 나무 부재의 연대를 정밀 분석해보니 벌채 연대가 650~660년대란 결과도 나왔다. 재건 연대 논란이 사라진 건 아니나, 새 금당 건물을 짓고 벽화를 그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정설로 굳어졌다.

담징의 신화와 실제 벽화 사이의 장막은 언제쯤 온전히 걷어낼 수 있을까. 민족주의 관점만으로는 벽화의 진가를 온전히 보기 어렵다. 금당벽화에는 아잔타 석굴의 연화보살상, 중국 둔황·윈강 석굴의 도상과 닮은 보살상이 적지 않다. 정토도나 보살상 묘사 등은 6~7세기 인도와 동아시아의 국제양식 유행 측면에서 보아야 흐름이 자연스럽다. 벽화의 국제양식은 법수(法水·불법)를 세상 곳곳에 퍼뜨리고 싶다는 당대 불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발현된 시각적 산물이다. 금당벽화가 1300여 년 전 당대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숭고한 꽃봉오리라는 사실 자체에 감동할 수는 없는 것인가. < 노형석, 아트파일: 칼럼, 한겨레 21>

 

 금당과 오중탑

 금당과 오중탑을 바라보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굽이굽이 펼쳐지는 산자락에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을 새겼다는 최순우를 생각했다. 최순우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 앞에서 건축물과 자연이 어울어진, 자연을 품안에 품고 완성된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했지만, 나는 오래오래 법당 앞에 서서 이 오래된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혔다. 건축물 자체가 갖는 경건함과 장엄함에 압도된 것이다. 맨 1층의 보호전각을 철거한 모습을 상상하며 바라보면 비례미와 날렵함이 천년의 숨결을 머금고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은주샘은 바로 이런 비례미가 백제인들이 건축한 것이라는 증거하고 말한다. 일본고대건축은 비례미가 없으며(확인해봐야겠다), 아쇼카왕 시절의 일본은 원시적인 형태라 이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축물도 백제가 망할 무렵 백제의 기술자들이 와서 지은 것이라는 은주샘의 설명이다.

 그건 잘모르겠지만, 이 건축물이 후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하면?  일본 자체의 기술과 자본의 축적 없이 이런 건축이 선진 백제인인들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둘 다 안은 공개하지 않아서 무척 아쉬웠다.

  

놀라운 풍경 둘!

이곳은 5시에 문을 닫는다. 정말 닫는다. 4시 30분까지만 입장시키고, 5시에 문을 닫는다.

우리가 늦게 왔다고 500엔을 깎아줬다. 늦어서 인지, 금당 등의 보물을 못봐서 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5시 조금 넘어서 밖에 나오니,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한여름 5시면 대낮인데,상가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버스정류장에 와 보니, 헉! 버스는 5시 7분이 막차란다. 이럴수가! 세계적인 관광지의 폐관시간과 동시에 버스가 끊기다니!

우리나라 감각으로 어슬렁거리며 나와보니 이미 막차는 떠났고, 우리는 JR 호류지까지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여름 40여분을 땡볕에 걸어가야하다니......

우리나라 관광지가 12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것이 좀 뭐하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5시에 문닫으면 마지막으로 화장실 들러 걸어나오면 막차 놓친다는 이야기다. 관광객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다. 물론 가게에서 쉴수도 없다.ㅠ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하는 사람들도 빨리 집에가서 가정을 돌봐야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공산주의 국가도 아니고 이게 뭔가! 재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국민이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오래된 사찰을 보려고 했다가는 외진 곳에서 밤새 떨어야 하는 나라다!! 쳇! 낭만도 없이.......

 

*오사카의 밤!

 

JR 호류지 -JR 우메다(620엔,20분)

다시 썬그라스도 찾을 겸 도톰보리로 갔다. 물어물어 생맥주집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초밥 딱 3개 나오고 10000원이 넘었다. 우리는 3 이라는 숫자와 추천메뉴를 보고 이것이 3세트인줄 알았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생선회도 세 젓가락쯤 집으면 끝이었다 ㅠㅠ

그래도 아사이 생맥주는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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