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실라 Taxila
두산백과
소재지 : 파키스탄 펀자브주 북서쪽 끝.
시대 : BC 6세기∼AD 5세기 말
산스크리트로는 탁샤실라라고 한다. 고대 상업도시 유적으로서 1913년부터 10년에 걸쳐 영국의 고고학자 J.H. 마셜 등이 발굴하였다. BC 6세기∼BC 4세기에는 페르시아제국 아케메네스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침입하여 헬레니즘 문명이 전파되었다. BC 3세기에는 마우리아왕조가 들어와 불교문명을 전하였으며, BC 2세기 무렵에는 그리스문명, 1세기에는 쿠샨왕조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다.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중요 유적들은 BC 6세기부터 박트리아 말기에 이르는 비르 언덕, 파르티아기의 도시 시르카프, 쿠샨왕조가 건설한 기원 전후에서 5세기 무렵의 도성 시르수흐 등 3곳이다. 비르 언덕은 가장 오래된 계획도시로서 광장을 만들고 주변에 주거를 배치하였으며 하수처리 시설도 설비해 놓았다. 시르카프는 BC 2세기 무렵 그리스인들이 건설하였는데, 거리는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하였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만들었다. 시르수흐 유적은 시르카프와 같이 그리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유적 전체가 높은 도시벽에 둘러싸여 있다. 이외에도 많은 사원터와 스투파(불탑) 유적들이 동서문화의 교류역사상 귀중한 증거로 보존되어 있다. 1980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탁실라 [Taxila] (두산백과)
고대 탁실라는 3개의 큰 무역로( 동부 인도에서 오는길, 서아시아에서 오는길, 카슈미르와 중앙아시아에서 오는길)의 교차점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현재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번영했던 고대 왕국 간다라 문명에 의해 세워진 도시입니다. BC 5세기~ AD 2세기까지 이곳은 불교 학문의 중심지로서 종교와 철학, 예술 등이 발달했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 탁실라를 점령하면서 페르시아, 그리스, 중앙아시아 민족들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이 떠난 후에도 일부가 남아서 박트리아 그리스 왕국을 세웠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는 마우리아 왕조의 통치하에 놓이고 인도 아쇼카 왕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불교가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1세기경부터는 쿠샨 제국 통치 하에서 불교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후 5세기 훈족의 침략으로 약탈당하고 폐허가 되었다가 19세기 이후에 발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타사실라'라 불리었다는데, 그 뜻은 '뱀족의 왕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후에 그리스 b발음인 '탁실라'로 불리게 되었고요.
◈ 쥴리앙 Jaulian
AD 2C~5C 동안 번성했던 사원이자 승려들의 학교였던 승원입니다. 당대 학문의 중심지인 대학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은 평지가 아닌 100m 산 등성이에 있어서 계단을 한동안 올라와야 합니다. 그 계단 중간 쯤 그늘진 자리에서 느닷없이 사람이 나타나 입장료를 받습니다. 그렇게 올라가 좁은 문을 통과하니, 작은 안뜰이 나옵니다.
이런 뜰인데, 보이는 석축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일정하게 다듬은 돌이 아니라 제각각 맞춘 돌인데, 그것이 오히려 오랜 세월을 버티게 해준 것이라고 합니다. 큰 돌이 든든히 버텨주면, 작은 돌들이 그 사이사이에 들어가 큰 돌이 미처 막지 못한 틈들을 메꿔 더욱 공고해지는 원리이지요.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나고, 둥글고 모나고, 제 각각이지만 다 쓰임새가 있어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세상 이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아름답습니다.
바로 맞은 편에 어수선하게 가려져 있는 건축물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조금 기다렸더니, 이 분이 오셔서 열쇠로 문을 열어 줍니다. 붉은 수염이 멋진 이 분을 따라 들어갔더니, 작은 수투파들이 보입니다. 중앙에 거대한 스투파가 있고, 그 주위에 이런 21개의 작은 봉헌 스투파가 있다고 합니다. 중앙의 거대한 스투파는 파괴되어 지금은 보이는 것처럼 덮어두었습니다.
보이는 작은 봉헌 스투파는 아래쪽에 작은 감실을 파고 다양한 형태의 붓다와 보살들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감실 안에 모셔진 불상을 통해 간다라 미술의 조각이 어떤 형태로 조성된 것인지 짐작케 합니다.
조각된 모습은 붓다와 보살, 코끼리와 사자같은 동물 등인데 재료는 주로 점토로 형태를 만들어 구운 테라코타이거나 석회에 모래와 물 등을 넣고 개어서 굳힌 스투코라고 합니다. 훼손된 것도 많았지만, 보존상태가 훌륭한 것들도 많아서, 그 오랜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 .스투코(stucco) : 회반죽. 4~5세기경에 조각에 적합한 석재를 구하기 힘들었던 탁실라에서 석회에 모래 등을 개어서 굳힌 스투코를 써서 간다라 고대 사원의 불상 조각을 자유로운 소조 기법으로 만들었다.
* 소조 : 찱흙이나 밀납처럼 점성이 있는 재료를 덧붙여 나가면서 입체적 형상을 빚는 미술기법
* 테라코타(Terracotta) : 건축자재나 장식, 도기의 제작에 사용되는 점토 소성 방식, 이탈리아어인 테라 (흙)과 굽다(코다)에서 나온 말이다.
맨 아래 좌대에는 코끼리, 사자, 아틀라스 신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위에는 부처와 보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다시 코씨리, 사자, 아틀라스 신, 다시 그 위헤 부처님과 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는 구조인데, 이런 구조가 일반적입니다.
이런 스투파는 조금 다르네요. 맨 아래가 부처님, 2단이 코끼리, 3단이 부처님, 4단도 부처님인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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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첫번째는 탁실라 박물관에 있는 모헨 조다로의 스튜파이고, 오른쪽은 여기 쥴리앙의 스튜파입니다. 이것을 보면, 쥴리앙의 스튜파 상륜부가 파손된 형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있습니다. |
이교도들의 침략으로 목이 잘린 불상이 많습니다. 그래서 탁실라 박물관에 가면 목만 전시되어 있습니다.
옆에서 보니 코끼리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이곳에 새겨진 동물들은 코끼리, 사자라고 하니, 사자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용맹한 사자라기보다는 순박하고 귀여운 얼굴입니다. 가운데 있는 조각은 아틀라스 신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엄청 귀엽게 생긴 동물이 스투파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코끼리입니다. 그 옆에는 그리스 근육질의 남자도 보이네요. 지구를 짊어진 아틀라스가 연상됩니다. 그래도 이번엔 코끼리와 함께 짊어지고 있으니 좀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장식인 많은 것으로 보아 보살상인듯 합니다.
고행하는 부처님 |
오른쪽의 보살상은 흡사 그리스 여신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요? 머리모양과 흘러내린 옷자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잘생긴 붓다의 모습입니다. 오른 쪽 부처님은 마치 그리스인 같습니다. 곱슬머리와 갸름한 얼굴, 몸을 감싸는 얇은 옷자락이 그리스 조각상 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형적인 간다라 예술작품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네요
날카롭게 조각된 잘생긴 부처님(왼쪽)과 둥글둥글 인자한 부처님(오른쪽)입니다. 엄마 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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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실 가운데 부처님 좌우에는 서 있는 불상이 있고, 뒤에는 시중드는 시자상 둘이 있습니다. 원본은 탁실라 박물관에 있고, 이것은 모조품이라고 합니다. 갸름한 얼굴형과 섬세하게 흐르는 옷자락이 간다라 미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감실 안에 있는 불상을 보고, 라호르 박물관의 고행하는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불상들의 기본 형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석굴암에 있는 불상도 기본 구조는 이것과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층 올라오면, 이런 공간이 나옵니다. 가운데 안뜰을 중심으로 28개의 작은 승방이 ㅁ자 형태로 둘러쌓여 있는 형태입니다. 옛날에는 윗층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왼쪽 끝을 보면,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름다운 돌쌓기 입니다. 큰돌과 작은 돌을 절묘하게 배치해서 지진같은 충격에도 견디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합니다.
중세 수도원의 방처럼 작고 견고해보이는 방입니다. 역시 감실이 있어 작은 불상을 모셔두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벽이 두꺼워서 안에 들어와 있으면, 덥지 않고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그 옛날 신라의 혜초도 이곳에 왔었다하니, 이중 어느 방에선가 묵었겠지요? 밤이면 칠흑같이 어두웠을 이곳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원래 2층에도 1층과 똑같은 방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규모로 보아 이곳은 고대 시대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서 불교와 철학 등을 공부하고 토론하였던 곳이었던 듯합니다. 신라시대 혜초스님이 그들과 어울려서 토론하는 광경을 떠올려 봅니다. |
뜰 한쪽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돌이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나름 추측해보기도 하는데, 조리도구 아니었을까요?
시르캅 Sirkap
시르캅은 기원전 2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대 중 일부가 남아 세운 박트리아 왕국(Bactrian Greeks)의 고대 도시라고합니다. 폭이 6m나 되는 남북을 관통하는 주도로가 있고, 그 양옆으로 주택, 상점, 사원 등을 지은 바둑판 형태의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도시는 총 5.5km에 달하는 평균 높이 9m, 두께 5~6m에 달하는 성곽으로 둘러쌓인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직선의 큰 도로와 반듯반듯한 간선 도로들로 형성된 도시라 어떤 이는 '동양의 로마'라고도 부릅니다.
박트리아 왕국은 약 200여년간 시르캅에서 번성하다가 BC 1 세기 무렵 사카족에게 멸망하고, 나중에 인도를 통일한 쿠산 왕조에 속하게 됩니다.
폭이 6m나 되는 주 도로입니다.
▶ 압시달(Apsidal) 템플(Temple)
AD 1~2세기 경에 세워진 사원인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습니다. 자인교(자이나교)의 사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원형 스투파(round stupa)
AD 1~2세기 경에 세워진 스투파고 불교나 자인교 사원으로 추정됩니다. 부처님 사후 모습을 만들지 말라 하여 불상 대신 탑을 만들었던 불교 초기의 스투파 형태라 이러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 쌍두취탑(Shrine of the Double Headed Eagle)
쌍두 독수리 조각이 있는 시르캅 유적지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입니다. 일명 '태양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힌두 유적지입니다. 그리스 양식과 힌두 양식(동양적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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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세계에서 보이는 그리스 사원 양식의 지붕모양을 돋을 새김으로 형상화했다 |
인도의 석굴 사원에서 보이는양식 |
초기 인도의 힌두 사원의 탑 문 '토라나' 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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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서 독수리의 쌍두를 확대한 사진입니다. 쌍두 독수리는 스키타이의 일족인 샤카족의 상징입니다. 유목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는 러시아 대평원을 장악했던 잔인하고 대담무쌍한 걸로 유명한 민족이었습니다. 지금 이란인 조상에 해당합니다. 쌍두 독수리는 로마, 러시아, 터키 등 이슬람 국다 들에서 사용한 상징입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왕국의 주권과 동서양을 초월한 로마제국의 지배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동로마 제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러시아는 국기로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축구보다 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포개 쌍두 독수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할 만큼 유럽과 러시아, 이슬람 국가에서는 유명한 상징입니다. 예로부터 독수리는 '불멸, 용기, 멀리볼 줄 아는 힘' '신의 전령' 등을 의미하며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거기다가 쌍두로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으니, 이 건축물에 동서양의 양식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과도 잘 통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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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화려한 장식과 나뭇잎을 묶은 듯한 모양의 주두가 특징인 코린트식 기둥, 오른쪽은 여성적이고 섬세한 이오니아식 기둥이라고 합니다. 모두 그리스 건축 양식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기둥모양도 살펴보면, 둥근 기둥도 있고, 사각 기둥도 있어서 다양한 형태가 시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인성소 (잔디알 사원, Jain Shrine)
기원전2세기~AD 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조르아스터교 사원이다. 네개의 이오니아식 기둥 뒤에 신전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지성소가 나온다. 예전에는 여기에 탑이 있어 불을 피우고 숭배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다른 이름이 '배화교'이니 신성한 불을 숭배한다는 뜻입니다. 조르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에 이란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종교로 페르시아 뿐 아니라 인도에까지 널리 퍼졌던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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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불을 피웠던 저 자리에서 우린 '망중한'의 한때를 보내며, 즐겁습니다.
한쪽에선 아직도 한창 유적을 발굴하고 있었는데, 손길이 참 정성스럽습니다. 희수염과 흰 옷이 참 잘 어울립니다.
탁실라 박물관
탁실라 박물관은 이곳 탁실라에 발굴된 초기 간다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불살 뿐만 아니라 도자기, 동전, 항아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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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입구에 있는 모흐라 모라두 사원에서 발굴된 소형 스투파가 있습니다. '모흐라 모라두 '사원에 있는 봉헌 스투파의 복제품이라고 합니다. 5단의 원형 대좌 위에 돔을 조각하고, 그 위에 방형 상자 모양의 평두를 얹고, 또 그 위에 7단의 산개와 맨 끝의 뽀족한 첨탑까지 얹어 간다라 스투파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다고 합니다. 원형 대좌에는 불상, 토끼리, 아틀란티스 등이 스투코 조각되어 있습니다. |
보리수 아래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는 장면입니다. 불법을 상징하는 법륜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습니다.
AD 2~5세기. 인디라의 방문. 탁실라. 인드라(제석천)는 원래 힌두교의 신이었는데,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습니다 축복의 꽃을 뿌려주고 있습니다
Buddha in Attitude of Reassurance. 2~3 AD.
명상에 잠긴 부처님. 5세기.
이 부처님의 머리는 박물관에서 마주보고 2개가 있습니다. 가이드는 이 불두 사이를 지나가면, 부처님의 눈동자가 같이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글쎄요,ㅎㅎ. 많은 사람들이 이 불두를 이 박물관에서 내세우는 '소년의 두상'으로 알고 있는데,
'소년의 두상'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의 위 두번째 줄 가운데 있는 큰 얼굴이 '소년이 두상'입니다. AD 200~400년. 탁실라 Dbarmarajika.
2~4세기 무렵의 쥴리앙 Casket 유적의 스튜파 모양이라고 합니다.
2~4세기 쥴리앙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왼쪽 아래 작게 조각된 근육질의 남자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어디 사람일까요?
쥴리앙에서 보았던 부처님의 원본입니다.
AD 100년. 아프로디테. 탁실라 Dbarmarajika. 봉긋한 가슴, 몸을 감고 흐르는 투명한 옷자락 등이 그리스 헬레니즘 조각을 그대로 닯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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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세기~AD 1세기 무렵의 주방도구들과 항아리입니다.
BC 3세기~AD 1세기. 시르캅에서 출토된 장난감입니다.
술의 역사는 도도하네요. 그 옛날 이렇게 고급의 증류주를 마실 줄 알았던 그들에게 술 한잔 권하고 싶습니다.
AD 1세기 무렵의 Toilet Tray. 고대 화장 그릇의 일부로 겉면에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나 괴물 등이 조각되어 있다. 종교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이런 디자인은 간다라 예술의 또 다른 형태로 조각의 섬세함이나 문양의 다양함으로 눈길을 끕니다. 주로 사원 근처에서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종교의식와 관계있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동전입니다.가장 오래된 동전은 오래된 것은 기원전 400년 것도 있다고 합니다. 인도 및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과 페르시아 사이의 긴밀한 상업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전은 구리,은,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쿠산 왕조 때 주로 만들어졌습니다. 문양은 왕의 흉상, 왕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어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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