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여름숲2 2009. 8. 24. 08:37

 

 

 

 

 

 누구든 '여기'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그 '다른 곳'이 여기만 못할지라도 '여기'가 아니기를 남몰래 꿈꾸며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어떤 이에게는 술로, 여자로, 놀이로, 매니아적인 취미로, 지식과 변혁에 대한 실천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이 트래킹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 빌 브라이슨은 3,520km의 애팰래치아 트레킹 종주를 선택한다. 해마다 2000여명이 도전하지만 10%도 안되는 숫자만이 성공하는 장거리 트레킹이다.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350개, 종주 기간만 최소 5개월이 소요되는 미동부의 대표적인 등산코스다.

 혼자 가는 것이 두려워 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에 동참을 물었는데, 거기에 답을 준 것이 고교 동차 스티븐 카츠다. 카츠는 25년 전 유럽여행을 같이 했으나 크게 싸우고 헤어진 친구로 마약소지 전과자, 알콜 중독 치료를 겨우 견뎌낸 친구다. 거기다가 비만하기까지 하니 최악의 파트너인 셈이다.

  처음부터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연달아 치지만, 그가 선사하는 웃음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자칫 딱딱하기 쉬운 이야기에 훈훈한 사람의 냄새를 담으면서, 왠지 묘한 위안이 되는 친구다.  종주는 실패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등산로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미국 역사 및 애팰래치아 트레킹 코스의 개발에 담긴 역사, 급격하게 무너지는 자연훼손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잘 그려져 있다.

 브라이슨은 전체구간의 40%에 해당하는 1392km를 걸었다.

 곰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으로 책 앞부분을 채웠던 브라이슨은 끝내 순한 사슴 한 마리만을 만날 뿐이다.

 

뒤에 역자인 홍은택은 이 책의 꿈을 아메리카 자전거 횡단으로 실현하게 된다. 

 

 ‘바라옵건대 멀찍이,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서, 그리고 곰은 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 만약 우리를 보고 다가온다면 카츠에게만 배타적으로 흥미를 느낀다는 조건’으로 곰을 만나고 싶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사이트 연구원 북리뷰에서 인용한 부분

 

5. 이 책의 무게는 1파운드도 안된다. 장거리 등산을 떠날 때 배낭에 꼭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무게는 중요한 문제다 ? 빌 맥키번

->유감스럽게도 한국판 책은 아주 무겁다. 장거리 등산 배낭에 넣기에는 무척 고심되는 무게다. 다른 말로 하면 안가져가도 된다는 의미이다. 등산용이 아니더라도 외국의 페이퍼백처럼 한국에도 가벼운 책들이 나오면 좋겠다숙녀의 핸드백은 책 한 권만으로도 불쾌할 만큼 무거워진다.

 

7. 맛있는 향응이었다. ? 뉴욕 뉴스데이

->글을 음식에 비유하는 이 센스, 책의 감동을 잘 응축하고 있다.

 

17-. 북쪽 잉글랜드 지역의 길고도 험악한 겨울을 감안하면 매년 이 트레일을 종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트레일의 북쪽 끝인 메인 주의 마운트 캐터딘에서 출발하려면 5월 말이나 6월 초까지 눈이 녹길 기다려야 한다. 반대로 남부 조지아 주에서 출발하려면 반드시 눈이 내리기 전인 10월 중순 안에 종주를 끝내야 한다. 대부분 봄에 남에서 북으로 종주를 한다.

19. 끝에서 끝까지 종주하려면 적어도 5개월은 걸리고 500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리고 그냥 걷는 게 아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야외에서 자야하고 음식을 해먹어야 한다맨 몸으로 걷는 것과 봇짐을 지고 3 2백 킬로를 걷는 것은 분명 다르다.

->wow! 종주에 대한 이런 친절한 가이드는 계속 이어진다. 그가 자료를 얼마나 글에 잘 이용하는지는 그의 20년 기자 경력만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7. 그들(어린이 야영단)은 저녁을 지어 먹은 뒤 남은 음식물을 주머니에 넣어서 30미터쯤 떨어진 숲의 나무 사이에 매달아놓았다.

-> 곰의 손이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철칙처럼 지킨다. 곰의 습격은 영화에서의 일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 책에서 브라이슨은 갖가지 곰의 습격에 대한 실화들을 열거하며 스스로 공포에 떨기도 하고, 대비도 하는 모습을 위트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ㅋㅋ

 

34. 진실은 당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곰들은 예측불가능하다.

 

45. (종주를 시작하기 전 브라이슨의 집에서 하루 자고 난 아침, 배낭을 메고 나타난 카츠에 대한 묘사) 20분 뒤 그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힘들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난간을 꽉 잡은 채 마치 계단들이 얼음장으로 뒤덮인 것처럼 천천히 내려왔다. 다행히 배낭은 메고 있었다. 지저분한 운동화, 장화같이 생긴 것, 냄비와 프라이팬, 아내의 옷장에서 슬쩍 한 것 같은 로라 애쉴리 쇼핑 가방과 그 밖에 신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ㅋㅋ)주렁주렁 배낭에 매달려 있었다.

 

52.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메인 주의 인적이 드문 숲에 3.2킬로의 길을 내는 것을 끝으로 1937년 8월 14 공식적으로 완성되었다.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긴 보도를 건설했지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53.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더 이상 최장거리 트레일이 아니다. 미서부의 퍼시픽 크레스트와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애팔래치아 트레일보다 조금 길다. 하지만 최초의, 그리고 가장 위대한 트레일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이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54. 매년 3월 초와 4월 말 사이 2천여명의 등산객들이 스프링어에서 캐터딘을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종주에 성공하는 사람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반은 전체 길이의 3분의 1도 안되는 버지니아 주 중부까지도 못간다. 4분의 1은 코 앞의 노스캐롤라이나 주까지도 못 간다. 무엇보다 20퍼센트가 등반 첫 주에 포기한다.

 

59. 미 전역에서 사람들은 출근하기 싫은데 억지로 회사로 나가고, 교통 체증과 매연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는 숲 속을 걸으려 하는 것이다. 도전하려는 의지가 불끈 솟구쳤다.

-> 결심은 좋다. 출발은 항상 건강한 결의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61. 지옥이었다. 등반 첫날은 항상 그랬다. 내 몸 상태는 구제불능이었다. 배낭은 그냥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천근만근이었다. 준비가 안된 채 이렇게 무거운 걸 메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힘겨운 투쟁이었다.

> 등반 첫 날부터 힘들다. 책의 60페이지가 넘어서야 첫날 기록이 시작된다. 그럼 그 이전 페이지는? 그는 서설이 긴 남자다. ~

 

62. 꼭대기라고 생각한 곳까지 억지로 몸을 끌고 올라가면 그 너머에 또 다른 봉우리가 솟아올라 있다마침내 그 너머로 맑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고 가장 높이 있는 나무들의 맨 위를 볼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가면 바로 저기다 하면서 전의가 다시 살아나지만 이내 기만으로 끝난다. 교묘하게 치고 빠지는 산 정상은 나아간 만큼 후퇴한다그래도 비틀거리며 갈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70. 깨어나자 마자 눈이 부셨다. 텐트 안은 흥미롭게도 조각조각의 무빙(霧氷)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순간 나는 간밤 내내 코를 골았고, 마치 호흡의 역사를 스크랩해 놓은 책처럼 내가 뱉은 입김이 얼어서 텐트 천에 달라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80. 1987년 산림청은 무심결에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 근처의 유서깊은, 전인미답의 피스가 국립 산림보호구역에서 민간기업들이 연간 수백에이커씩 벌목하는 것을 허용하고 벌목된 곳의 80퍼센트에는 이른바 과학적 조림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과학적 조림이란 단지 자연경관에 대한 야만적인 모독일 뿐아니라 거대하고 무모한 산사태를 불러일으켜 하류 지역의 수킬로에 생태학적인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아니다. 강간이다.  

 

83. 우리는 단순한 일상에 빠져 들었다. 매일 아침 첫 햇살에 일어나 추위에 진저리를 치고 손을 비비며 커피를 끓이고, 짐을 정리하고 한 줌의 건포도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 뒤 고요한 숲 속으로 다시 출발했다.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4까지 걸었다.

 

84. 심지어 대낮에도 숲은 위대한 고독의 공급처다. 몇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을 때, 카프마저 다른 사람마저 오지 않을 때, 나는 완전무결한 고독을 맛보아야 했다.

 

85. 가만히 누워서 기묘하게도 명료하고 분명한 밤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람과 나뭇잎이 안달하면서 내쉬는 한숨과 나뭇가지의 지루한 신음,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살랑거림에 마치 전기가 나간 회복기의 환자 병동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숲의 정경과 지은이의 행동이 그림처럼 이미지로 펼쳐지게 하는 글이다.

 

86. 살다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과 얼마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게 신의 섭리라는 걸 안다.

-> 아무도 못말리는 메리 앨런이라는 여자의 등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 때문에 얼마간의 그들 여정이 '사건들'로 즐거워진다.

 

89. 그녀는 칠칠맞지 못하게도 배낭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몸을 내뻗다가, 예를 들면, 군부대에서 영화상영도 할 수 있는 커다란 등짝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91.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경험이 바로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그래서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나는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 ㅎㅎ, 나는 상실이란 단어 대신 부족 혹은 결핍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부족하지 않다면 우리가 가진 것을 감사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으로부터 배운다. 모든 것이 부족한 등산 중이니 말해서 무엇하랴.

 

117-.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는 머나먼 거리고, 2킬로는 상당한 길이이며, 10킬로는 엄청나며, 50킬로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지구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 만의 작은 비밀이다. 그리고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곳 숲에서)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다. 필요한 것도 눈꼽 만큼 없다. 당신은 격렬한 마음의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윌리엄 바트럼의 표현대로라면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 뿐이다.

-> 그러게, 너무 훌륭하다. 브라이슨이 옆에 있다면 하이 파이브를 해주고 싶다. 나도 이런 단순한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다.

 

118. 당신의 머리는 줄에 묶여있는 풍선 같다. 당신과 같이 가지만 실제 그 밑에 있는 몸의 일부분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여러시간 수킬로를 걷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특별할 게 없다. 글자 그대로 자동적이다.

 

121. 배낭을 내려놓고 지도를 꺼냈다대부분이 10만 분의 1 척도여서 실제 세계의 1킬로가 1센티로 표시된다. 생각해보라. 1평방킬로미터의 물리적 세계를. 그 안에는 벌목로와 개울, 두 개의 산봉우리와 소방탑 같은 작은 산, 민둥산, 그리고 꼬불꼬불한 애팔래치아 트레일, 게다가 한 쌍의 중요한 보조 트레일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새끼 손가락의 손톱 만큼도 안되는 공간에 어떻게 이런 정보를 다 담을 수 있는지를.

 

127. 폭설이 내린 날 깊은 산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완벽하고도 광대한 적요. 눈덩이들이 여기저기 나뭇가지에서 무너져내렸다.

 

146. 흥분할 이유! 먼저 우리는 세번째인 테네시 주를 거쳐가게 되었다. 여러 주를 넘나드는 것은 언제나 트레일의 성취감을 더해준다언제나 내가 원할 때마다 왼발은 이 주에, 오른 발은 저 주에 걸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 주계를 가로질러 오줌을 갈길 수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153-. 스모키는 국립공원관리국의 지도 편달 없이도 자연의 광휘를 이루어냈고, 지금도 관리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관리국이 예산 부족으로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일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부족하다는 한 해 예산 2억 달러를 채워주면 관리국은 나무를 보호하고, 귀중하고 사랑스런 고지평원을 복원하기 보다 아마 주차장을 증설하고 캠핑 차의 야영지를 만드는데 돈을 다 써버릴 것이다.

 

157. 비는 모든 것을 망쳐놓는다. 비옷을 입고 걷는 것은 불쾌하다. 걸을 때마다 나일론이 빳빳하게 바스락거리고 합성섬유 위로 빗방울이 후두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낙담이 된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비옷을 입어도 몸은 젖는다는 것. 비옷을 입으면 비는 가릴 수 있지만 땀이 나 곧 끈적끈적해진다.

 

164. 몇 해 동안 미국인들이 차에 잔뜩 싣고 엄청난 거리를 달려 경이로운 자연 풍광의 입구까지 와서 결국 원하는 것은 미니 골프를 하거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이라는 걸 간파한 상인들에 의해 이 마을(개틀린버그)은 번성했다.

->우리의 휴가 문화(실은 개발, 성장, 발전 논리까지)라는 것이 미국을 답습하고 있다.

 

166. 세계가 항상 움직인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미국에서 변화의 속도는 그저 현기증이 날 뿐이다.

 

167. 오늘날 미국의 모든 사무실과 상가의 절반은 1980년대 이후에 세워진 것이다. 딱 절반이다. 건물의 80퍼센트가 1945년 이후에 세워졌다. 미국의 모텔방 23만 개가 지난 15년에 건축되었다.이제 이 모든 것을 애팔래치아 트레일과 비교해보자. 우리가 종주할 시점에 애팔치아 트레일은 59년이 되었다. 미국식 기준에 의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명예로운 것이다.

 

168. 미국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상품이나 사업도 끊임없이 스스로 개조하지 않으면 더 크고 새롭고 그리고 거의 항상 더 추한 것에 의해 잠식당하고 버림받고 밀려나고 만다. 그래서 오래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좋은 것이다. 60년이 지나서도 조용히 숨쉬면서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도 찬란하고, 창설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의식하지 않은 채 버티어 오지 않았는가. 그건 정말 기적이다.

 

168-175.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내 앞에 펼쳐져있는 모두 120센티미터의, 무릎에서 머리 끝까지 닿는 트레일의 전장(全長)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의 길이는 밑바닥 5센티 밖에 안된다

제기랄!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게 없네.

->카츠의 등산화 끈이 필요해서 간 등산용품점 벽에 14개 주를 관통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도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도 앞에 바짝 다가간 브라이슨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집 뉴 햄프셔를 떠나온 이래 트레일의 전모를 그려본 적은 없었다. 벌써 오랜 기간을 추위와 싸우며 고통스럽게 걸어왔는데 여태 걸은 거리가 전체 트레일 120센티의 5센티에도 못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기분이 어땠을까. 좀 더 들어보자.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 말없이 앉아있었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고 극복해온 것, 모든 노력과 수고와 고통, 습기, , 지긋지긋한 국수, 눈보라, 네리 앨런과의 지겨운 밤, 끊임없이, 지루하게, 끈덕지게 쌓아온 마일리지, 그것이 고작 5센티미터였다. 머리카락도 그것 보다 더 자랐을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는 결코 메인 주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 했는가.

 

한편으로 그건 해방이었다. 트레일의 전 거리를 다 걸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고역-조지아 주에서부터 메인 주까지 울퉁불퉁한 땅을 한 뼘 한 뼘 걸어야 하는 지루하고 정신 나간 일-은 이제 끝났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아무리 이렇게 변명을 해도 그건 합리화일 뿐이다. 그들은 정말 중간에서 탈락하고도 스스로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난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식사 후 갑자기 열린 가능성을 놓고 연구했다. 우리는 (트레일의 일정 구간을 뛰어넘어) 언스트빌 근처의 스파이비 갭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바글바글 사람이 들끓는 스모키 대피소와 엄격한 규정을 떠나 바로 즐겁게 등산할 수 있는 세계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택시 전화번호부를 뒤져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다시 바꾸어 모든 트레일을 건너뛰고 버지니아 주로 가기로 했다. 그것은 이틀 전 대피소에서 만나 누군가로부터 버지니아 트레일의 평이함과 셰넌도어 강을 따라 펼쳐지는 기막힌 풍광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합리화는 계속된다. 속으로 켕기지 않으면 변명은 그치는 법이다.

 

183. 운동화 신은 할머니가, 우드로라는 이름의 인간 비치볼이, 그리고 3 9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캐터딘까지의 종주에 성공했는데 우리가 그 욕구를 포기한 기분은 어땠을까. 사실, 괜찮았다. 우리는 여전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는 중이었다. 단지 전부를 걷지 않았을 뿐이지. 당신이 믿건 말건 카츠와 나는 이미 50만 발자국을 찍었다. 그리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어떤지 알기 위해 앞으로 450만 발자국을 더 찍어야한다는 건 필수적인 일은 아니었다.

-> 그래서 그들은 택시 기사와 함께 녹스빌로 갔고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개틀린버그 시내를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놀았다. 어제만 해도 깊은 숲에 있던 그들이었다. 느낌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183. 기묘한 대조였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이니까. 실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했다. 물론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활발한 도시와 복잡한 공장들, 붐비는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눈이 미치는 범위 안의 모든 것이 나무인 곳에 있으면 숲이 지배를 한다. 그러나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얼마나 기만을 당했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단지 숲과 산은 배경일 뿐이다.

 

193. 나무는 덩치에 비해 상당히 민감한 존재다. 내부적인 생명은 오로지 껍질 바로 안쪽의 종이만큼 얇은 3개의 조직층, 즉 체관부, 목질부, 형성층 안에서만 존재한다. 얼마나 크게 자라든 나무는 단지 뿌리와 나뭇잎 사이에 엷게 퍼져있는 몇 파운드의 살아있는 세포에 불과하다. 3개의 부지런한 세포층은 모든 복잡한 과학과 공학의 집합체다. 야단법썩을 떨지도 않고 숲의 나무 한 그루는 엄청난 양(큰 나무의 경우 수백 갤런)의 물을 뿌리로부터 나뭇잎으로 빨아올려 대기로 돌려준다. 소방서에서 그만한 양의 물을 빨아올리기 위해 기계를 가동할 경우 생겨나는 소음과 소동, 그리고 혼란을 상상해보라..자연은 그렇게 작동한다.

-> 나무에 대한 예찬을 한없이 늘어놓던 저자,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재치가 넘친다.

 

195. 그러나 여기서 멈추자. 여러분이나 나나 과학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하지 말자. 그래도 이것만은 간직하자. 애팔래치아 숲을 지날 때마다 거기 서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것을!

 

199. 먼저 대피소를 사용한 사람이 그레이엄 그린의 페이퍼백판을 두고 간 걸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뻤고 정말로 감동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하루에 24-26킬로를 주파했다통증이나 물집이 내 존재의 일부분이 되는 경지에 이르러, 이제는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199. 첫 날에는 등산이 끝날 무렵 자신이 조금 지저분해졌다는 걸 의식한다. 다음 날에는 지저분해졌다는 게 불쾌해진다. 그 다음날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 다음날에는 지저분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규정된 단계를 따른다. 첫날 밤에는 국수를 갈망한다. 다음날 밤에는 배는 고프지만 국수를 원하지 않는다. 그 다음날 밤에는 국수를 먹고 싶지 않지만 다른 뭔가는 먹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 다음날 밤에는 전혀 식욕을 못 느끼지만 그냥 먹는다 그리고 수시로 진짜 세상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203. 우리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20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미국인이 평균 일주일에 걷는 것보다 더 걷는 셈이 된다. 집 바깥을 나서기만 하면 거리가 얼마가 되든, 무슨 목적으로 나가든 외출의 93퍼센트가 차에 의존한다. 요즘 미국인의 평균 보행거리는 일주일에 2.24킬로, 하루에 320미터 밖에 안된다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 어느 누구도 걸어다니려 하지 않는다. 5백미터 떨어진 직장을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백미터 떨어진 체육관에서 러닝머신에 올라타기 위해 차를 몰고 가서는 주차할 공간이 없다고 심각하게 열을 내는 사람이 있다.

-> , 이 수치가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겠다. 외출을 하지 않는 날이면 나는 집안에서 먹고 싸고 최소한의 일들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일을 빼고는 일부러 산책을 나가거나 운동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마음이 내킬 때, 혹은 가끔 이래서 되나 하는 위기의식을 느낄 때 일부러 하는 운동을 제외하고는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고 앉아있는 일이 전부다. 작년에 요가 학원에 반 년 열심히 다녔고, 계단을 열심히 오르내렸고, 주차는 되도록 멀리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새 이전의 습관으로 돌아와 있는 나를 본다. 이 글을 읽으니 각성이 생긴다. 다시 계단을 이용하고, 주말에 등산을 가고, 동네는 되도록 걸어다니고, 집안에서 하는 스트레칭이라도 더 열심을 내봐야겠다. 몸은 얼마나 주인에게 잘 길들여지는지. 내가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내 몸 역시 탄력을 금방 되찾을 것이다.      

 

253. 프런트 로얄까지 걸으면 아내가 이틀 안에 우리를 태우러 온다. 나는 다른 일 때문에 한달 간 등산을 그만두어야하고, 카츠는 디모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여름철 공사판에서 일자리를 구해둔 상태로, 8월에 복귀해 나와 함께 메인 주의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를 함께 종주하기로 했다우리는 애미캘롤라를 떠난 이후 800킬로미터, 125만 발자국을 걸어왔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등산가다. 우리는 숲에서 똥을 누었고, 곰들과 함께 잤다. 우리는 산사람이 되었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256. 내가 숲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5월말, 6월초였다. 나는 집 주위의 숲으로 산책을 떠났다.

 

310. 나는 새로운 결의와 각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트레일에 복귀했다. 카츠가 나와 함께 메인 주의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를 종주하기 위해 돌아올 때까지 7주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뉴잉글랜드를 등산할 계획이었다.

 

318. 내가 아는 전부는 때때로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 뿐이야. 하지만 그게 인생을 흥미롭게 하지. 알아? 나는 정말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공짜로 음식 대접을 받았지.-치킨 존(트레일을 앞에 두고도 찾는, 항상 트레일을 잃어버리는 괴이한 등반가, 브라이슨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거의 5개월을 걷고 있었지만 아직도 캐터딘까지는 1/4이 남아있었다)

 

320. (엄청나게 달겨드는 혹파리 때문에 고생하며) 인간의 땀은 그들에게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환희의 절정을 제공하고, 방충제는 오직 그들을 더욱 흥분시킬 뿐이었다.

 

321. 그레이록은 애팔래치아에서 가장 문학적인 산이다.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한 곳이고, 매기 스타이어와 론 맥카도가 지은 <산 속으로>도 그렇고, 나다니엘 호손과 에디스 와튼도 근처에 살면서 집필을 했다. 1850-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뉴잉글랜드와 관련된 문학가 중에 그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그레이록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327. 나는 트레일에 기계를 갖고 다니는 사람을 싫어한다. 몇몇 애팔래치아 트레일 등산객들이 랩톱 컴퓨터와 모뎀을 가지고 다니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일 보고를 전송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바 있다. 조금 전에 병상에 누워있다 바로 트레일로 온 것처럼 맥박을 재기 위해 전깃줄을 몸에 둘러야 하는 감지기나 에비로 모니터와 같이 전자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이 책에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다는 것이 놀랍다. 기행문이라면 의당 사진을 기대하는독자로서는 조금 불편할 듯 싶다. 그렇지만 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소통 방식인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글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그의 뚝심을 보는 것 같아 한편 반갑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나 역시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가.

 

362. (드디어 카츠와 다시 등반을 시작하는 날) 완전 배낭을 멘 것은 거의 4개월 만이다. 나는 그 무게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그 압박은 즉각적이었으며 실의에 빠지게 했다. 그래도 나는 형편이 나았다. 계속 등산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츠에게는 너무나 분명했다. 그는 출발점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366. 카츠가 텐트를 치는 동안 나는 식사 준비를 위해 물을 길러 갔다물가에서 무릎을 굽히자 내 왼쪽 어깨 너머의 숲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4-5미터 떨어진 그늘진 덤불 속에서 말코손바닥사슴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서로 한참 바라보았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그 놈은 상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매혹되었다.

 

374.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것은 내가 일생에서 시도한 것 중에 가장 힘든 일이고, 메인 주의 구간은 애팔래치아 트레일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384. 나는 격분했다. 최근 수년 동안 무엇에든 그렇게 화가 난 적은 없었다. 나는 그가 다시 음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모든 것- 그 자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심각하고 어리석은 배반이었다.

 

389. 우릴 트레일 입구까지 태워주기로 한 키스의 밴을 기다리는 동안 우린 마치 재산권 분쟁으로 법정에 불려나가길 기다리는 앙숙처럼 어색한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386. 숲은 더욱 불길하고 수심에 잠긴 듯했다. 명백히 남쪽의 숲과 달랐다. 더욱 어둡고, 그늘지고, 녹색보다 흑색에 가까웠다나무들은 추하게 생겼고 사악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험이었다. 불안하게 다가오는 곰과 꽁무니를 따라오는 뱀, 빨간 레이저 눈을 가진 늑대, 괴기스런 소리와 갑작스런 공포의 숲, 소로가 깔끔하고 소심하게 묘사한대로 멎어있는 밤(standing night)의 숲이었다.

-> 카츠와 불편한 감정을 아직 정리 못한 그의 심리 상태가 자연을 보는 눈까지 바꾸어 놓았다.

 

390-391 브라이슨, 난 정말 노력하고 있다고, 정말이야, 하지만내가 버지니아를 떠나 디모인으로 돌아가 집짓는 공사판에서 일할 때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선술집으로 달려가곤 했지. 그들은 항상 나보고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지. 안돼, 친구들, 나는 술을 끊었어. 그런 뒤 작은 아파트로 돌아와 냉동식품을 데우고 나면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고결해진 느낌이 들었지. 그러나 그런 일을 매일 밤 되풀이하고 나면 무어 풍요롭고 흥미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스스로 납득하는 게 어렵게 되거든. 만약 인생의 재미를 재는 기계가 있다면 냉동식품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바늘이 오르가슴 구역으로 훌쩍 올라가진 않을 거 아냐. 그래서였을 거야,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는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지. 하지만 긴 하루 끝에 마시는 맥주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잖아. 친구들은 꼬셨지. 이봐 맥주 한 잔 하라고, 마시고 싶잖아. 한 병 마신다고 해로울 거 없잖아. 3년 동안 안 마셨는데 이제 통제할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어. 그들은 내 맘이 약해진 걸 알고 나를 잡아챈 거야. 내가 여전히 숨쉬는 걸 알고서…’

하지만 브라이슨, 나는 술을 좋아하거든. 어쩔 수가 없어. 내 말은 나는 그걸 사랑해. 그 맛을 사랑하고, 두 병 마셨을 때 취하는 기분을 사랑하고, 선술집 냄새와 분위기를 사랑해. 나는 음담패설과 주변 당구대의 공이 부딪히는 소리, 밤에 술집의 어두침침하고 푸른 빛 도는 분위기를 그리워했어.

 

398. (그런 다음 숲 속에서 함께 걷던 카츠가 길을 잃었고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후에 어떻게도 구조할 방법이 없어 낙담한 브라이슨) 나는 그를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가 길을 헤매는 모습을 그려보지 않기로 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대신 나는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았다. 호수는 고통스럴 만큼 아름다웠다.  

 

405. (다음날 어렵게 서로 만난 두 사람, 카츠가 말했다)

네가 나타났을 때 정말 기뻤어. 사실 내 인생에서 벌거벗은 여자들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이렇게 기뻐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의 표정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니?

, 돌아가고 싶어.

나도 그래.

그래서 우리는 트레일을 떠나기로 했고 우리가 산사람인 것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결코 아니니까.

 

407. 그래서 우리는 캐터딘을 보지 못했다. 단지 먼지 풀풀 나는 도로를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로 쿵쿵거리고 거칠게 달리는, 아마 시속 110킬로는 될 법한 속도의 픽업트럭 짐칸에서 잠시 그 흐릿한 윤곽만 보았을 뿐이다.

 

411-414.

그래 트레일을 포기해서 기분이 어떠니? 카츠가 물었다.
확실치가 않아 잠시 생각했다. 나는 애팔래치아에 대해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끝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했지만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보았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나 항상 그랬다.

너는 어때?

카츠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아는 한 말이야,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어. 눈 속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남부에서도 걸었고, 북부에서도 걸었어. 내 발에 피가 나도록 걸었어.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어 브라이슨!


우리의 여행은 메인 주의 밀로에서 캔 크림 소다 6개로 끝났다. 카츠는 디모인의 아파트와 공사판, 그리고 술을 끊은 명징한 삶으로 돌아갔다. 나는 10월 중순 낙엽이 절정에 달했을 때 버몬트 주의 킬링턴 피크로 마지막 등산을 다녀왔다. 영광스러운 날들이었다나는 열정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신선한 공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킬링턴 산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내 발 밑으로 자유분방하고 잘 관리된 트레일 3 520킬로가 거의 똑같이 장엄한 숲과 산봉우리들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신이, 내가 태어난 대지를 얼마나 편애하는지 이보다 더 선명하게 느낀 순간은 내 일생에 없었다. 그곳은 멈추어야 할 완벽한 곳으로 보였다.

 

415. 나는 1 392킬로를 주파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절반도 안되는 거리다나는 요즘도 일이 잘 안풀리면 집 근처의 트레일로 등산을 다녀온다.

 

숲은 아름답고 찬란할 뿐 아니라 더 이상, 개량의 여지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걸 느끼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걸어 산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 눈보라를 뜷고 기신기신 걸을 필요도 없고, 진흙 속에 미끄러질 필요도 없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널 필요도 없고 매일매일 체력의 한계를 느낄 필요도 없다

-> 종주하지 못했어도 산을 자체로 사랑하고 즐길 수 있으니 충분하다고 자위한다. 그러면서도 끝내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는 브라이슨. 자위먀말로 최대 방어인가.

 

416. 물론 아쉽다. 케터딘까지 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언젠가는 갈 거라고 비록 다짐은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나는 딱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는 보장만 있다면(ㅋㅋ)-정면으로 죽음을 돌파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를 칠 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 것도 배웠다. 몸도 튼튼해졌고 날렵해졌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도 느꼈다. 전에는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용기와 인내심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를 걸었다.


 

5. 이 책의 무게는 1파운드도 안된다. 장거리 등산을 떠날 때 배낭에 꼭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무게는 중요한 문제다 ? 빌 맥키번

->유감스럽게도 한국판 책은 아주 무겁다. 장거리 등산 배낭에 넣기에는 무척 고심되는 무게다. 다른 말로 하면 안가져가도 된다는 의미이다. 등산용이 아니더라도 외국의 페이퍼백처럼 한국에도 가벼운 책들이 나오면 좋겠다숙녀의 핸드백은 책 한 권만으로도 불쾌할 만큼 무거워진다.

 

7. 맛있는 향응이었다. ? 뉴욕 뉴스데이

->글을 음식에 비유하는 이 센스, 책의 감동을 잘 응축하고 있다.

 

17-. 북쪽 잉글랜드 지역의 길고도 험악한 겨울을 감안하면 매년 이 트레일을 종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트레일의 북쪽 끝인 메인 주의 마운트 캐터딘에서 출발하려면 5월 말이나 6월 초까지 눈이 녹길 기다려야 한다. 반대로 남부 조지아 주에서 출발하려면 반드시 눈이 내리기 전인 10월 중순 안에 종주를 끝내야 한다. 대부분 봄에 남에서 북으로 종주를 한다.

19. 끝에서 끝까지 종주하려면 적어도 5개월은 걸리고 500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리고 그냥 걷는 게 아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짊어지고 걸어야 한다야외에서 자야하고 음식을 해먹어야 한다맨 몸으로 걷는 것과 봇짐을 지고 3 2백 킬로를 걷는 것은 분명 다르다.

->wow! 종주에 대한 이런 친절한 가이드는 계속 이어진다. 그가 자료를 얼마나 글에 잘 이용하는지는 그의 20년 기자 경력만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7. 그들(어린이 야영단)은 저녁을 지어 먹은 뒤 남은 음식물을 주머니에 넣어서 30미터쯤 떨어진 숲의 나무 사이에 매달아놓았다.

-> 곰의 손이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야영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철칙처럼 지킨다. 곰의 습격은 영화에서의 일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 책에서 브라이슨은 갖가지 곰의 습격에 대한 실화들을 열거하며 스스로 공포에 떨기도 하고, 대비도 하는 모습을 위트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ㅋㅋ

 

34. 진실은 당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곰들은 예측불가능하다.

 

45. (종주를 시작하기 전 브라이슨의 집에서 하루 자고 난 아침, 배낭을 메고 나타난 카츠에 대한 묘사) 20분 뒤 그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힘들게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난간을 꽉 잡은 채 마치 계단들이 얼음장으로 뒤덮인 것처럼 천천히 내려왔다. 다행히 배낭은 메고 있었다. 지저분한 운동화, 장화같이 생긴 것, 냄비와 프라이팬, 아내의 옷장에서 슬쩍 한 것 같은 로라 애쉴리 쇼핑 가방과 그 밖에 신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ㅋㅋ)주렁주렁 배낭에 매달려 있었다.

 

52.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메인 주의 인적이 드문 숲에 3.2킬로의 길을 내는 것을 끝으로 1937년 8월 14 공식적으로 완성되었다.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긴 보도를 건설했지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53.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더 이상 최장거리 트레일이 아니다. 미서부의 퍼시픽 크레스트와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은 애팔래치아 트레일보다 조금 길다. 하지만 최초의, 그리고 가장 위대한 트레일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이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있을 것이다. 많은 친구들을 가지고 있고,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54. 매년 3월 초와 4월 말 사이 2천여명의 등산객들이 스프링어에서 캐터딘을 향해 출발한다. 하지만 종주에 성공하는 사람은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반은 전체 길이의 3분의 1도 안되는 버지니아 주 중부까지도 못간다. 4분의 1은 코 앞의 노스캐롤라이나 주까지도 못 간다. 무엇보다 20퍼센트가 등반 첫 주에 포기한다.

 

59. 미 전역에서 사람들은 출근하기 싫은데 억지로 회사로 나가고, 교통 체증과 매연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는 숲 속을 걸으려 하는 것이다. 도전하려는 의지가 불끈 솟구쳤다.

-> 결심은 좋다. 출발은 항상 건강한 결의로 가득차게 마련이다.

 

61. 지옥이었다. 등반 첫날은 항상 그랬다. 내 몸 상태는 구제불능이었다. 배낭은 그냥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천근만근이었다. 준비가 안된 채 이렇게 무거운 걸 메본 것도 처음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힘겨운 투쟁이었다.

> 등반 첫 날부터 힘들다. 책의 60페이지가 넘어서야 첫날 기록이 시작된다. 그럼 그 이전 페이지는? 그는 서설이 긴 남자다. ~

 

62. 꼭대기라고 생각한 곳까지 억지로 몸을 끌고 올라가면 그 너머에 또 다른 봉우리가 솟아올라 있다마침내 그 너머로 맑은 하늘밖에 보이지 않고 가장 높이 있는 나무들의 맨 위를 볼 수 있는 높이까지 올라가면 바로 저기다 하면서 전의가 다시 살아나지만 이내 기만으로 끝난다. 교묘하게 치고 빠지는 산 정상은 나아간 만큼 후퇴한다그래도 비틀거리며 갈 수 밖에 없다. 그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70. 깨어나자 마자 눈이 부셨다. 텐트 안은 흥미롭게도 조각조각의 무빙(霧氷)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순간 나는 간밤 내내 코를 골았고, 마치 호흡의 역사를 스크랩해 놓은 책처럼 내가 뱉은 입김이 얼어서 텐트 천에 달라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80. 1987년 산림청은 무심결에 그레이트 스모키 산맥 근처의 유서깊은, 전인미답의 피스가 국립 산림보호구역에서 민간기업들이 연간 수백에이커씩 벌목하는 것을 허용하고 벌목된 곳의 80퍼센트에는 이른바 과학적 조림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과학적 조림이란 단지 자연경관에 대한 야만적인 모독일 뿐아니라 거대하고 무모한 산사태를 불러일으켜 하류 지역의 수킬로에 생태학적인 파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아니다. 강간이다.  

 

83. 우리는 단순한 일상에 빠져 들었다. 매일 아침 첫 햇살에 일어나 추위에 진저리를 치고 손을 비비며 커피를 끓이고, 짐을 정리하고 한 줌의 건포도로 아침 식사를 대신한 뒤 고요한 숲 속으로 다시 출발했다.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4까지 걸었다.

 

84. 심지어 대낮에도 숲은 위대한 고독의 공급처다. 몇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을 때, 카프마저 다른 사람마저 오지 않을 때, 나는 완전무결한 고독을 맛보아야 했다.

 

85. 가만히 누워서 기묘하게도 명료하고 분명한 밤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바람과 나뭇잎이 안달하면서 내쉬는 한숨과 나뭇가지의 지루한 신음, 끊임없는 중얼거림과 살랑거림에 마치 전기가 나간 회복기의 환자 병동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숲의 정경과 지은이의 행동이 그림처럼 이미지로 펼쳐지게 하는 글이다.

 

86. 살다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과 얼마간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게 신의 섭리라는 걸 안다.

-> 아무도 못말리는 메리 앨런이라는 여자의 등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 때문에 얼마간의 그들 여정이 '사건들'로 즐거워진다.

 

89. 그녀는 칠칠맞지 못하게도 배낭에서 뭔가를 꺼내려고 몸을 내뻗다가, 예를 들면, 군부대에서 영화상영도 할 수 있는 커다란 등짝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91.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경험이 바로 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그래서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나는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 ㅎㅎ, 나는 상실이란 단어 대신 부족 혹은 결핍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부족하지 않다면 우리가 가진 것을 감사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으로부터 배운다. 모든 것이 부족한 등산 중이니 말해서 무엇하랴.

 

117-. 발로 세계를 재면 거리는 전적으로 달라진다. 1킬로는 머나먼 거리고, 2킬로는 상당한 길이이며, 10킬로는 엄청나며, 50킬로는 더 이상 실감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지구넓이에 대한 그런 계측은 당신 만의 작은 비밀이다. 그리고 삶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곳 숲에서)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너무도 훌륭하지 않은가이젠 어떤 약속이나 의무, 속박, 임무, 특별한 야망도 없다. 필요한 것도 눈꼽 만큼 없다. 당신은 격렬한 마음의 동요를 거쳐 더 이상 자극이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윌리엄 바트럼의 표현대로라면 투쟁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고요한 권태의 시간과 장소에 놓인 존재.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 뿐이다.

-> 그러게, 너무 훌륭하다. 브라이슨이 옆에 있다면 하이 파이브를 해주고 싶다. 나도 이런 단순한 생활을 경험해보고 싶다.

 

118. 당신의 머리는 줄에 묶여있는 풍선 같다. 당신과 같이 가지만 실제 그 밑에 있는 몸의 일부분은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여러시간 수킬로를 걷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특별할 게 없다. 글자 그대로 자동적이다.

 

121. 배낭을 내려놓고 지도를 꺼냈다대부분이 10만 분의 1 척도여서 실제 세계의 1킬로가 1센티로 표시된다. 생각해보라. 1평방킬로미터의 물리적 세계를. 그 안에는 벌목로와 개울, 두 개의 산봉우리와 소방탑 같은 작은 산, 민둥산, 그리고 꼬불꼬불한 애팔래치아 트레일, 게다가 한 쌍의 중요한 보조 트레일이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생각해보라. 새끼 손가락의 손톱 만큼도 안되는 공간에 어떻게 이런 정보를 다 담을 수 있는지를.

 

127. 폭설이 내린 날 깊은 산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완벽하고도 광대한 적요. 눈덩이들이 여기저기 나뭇가지에서 무너져내렸다.

 

146. 흥분할 이유! 먼저 우리는 세번째인 테네시 주를 거쳐가게 되었다. 여러 주를 넘나드는 것은 언제나 트레일의 성취감을 더해준다언제나 내가 원할 때마다 왼발은 이 주에, 오른 발은 저 주에 걸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또 주계를 가로질러 오줌을 갈길 수 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153-. 스모키는 국립공원관리국의 지도 편달 없이도 자연의 광휘를 이루어냈고, 지금도 관리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관리국이 예산 부족으로 굶어죽도록 내버려두는 일도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부족하다는 한 해 예산 2억 달러를 채워주면 관리국은 나무를 보호하고, 귀중하고 사랑스런 고지평원을 복원하기 보다 아마 주차장을 증설하고 캠핑 차의 야영지를 만드는데 돈을 다 써버릴 것이다.

 

157. 비는 모든 것을 망쳐놓는다. 비옷을 입고 걷는 것은 불쾌하다. 걸을 때마다 나일론이 빳빳하게 바스락거리고 합성섬유 위로 빗방울이 후두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낙담이 된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비옷을 입어도 몸은 젖는다는 것. 비옷을 입으면 비는 가릴 수 있지만 땀이 나 곧 끈적끈적해진다.

 

164. 몇 해 동안 미국인들이 차에 잔뜩 싣고 엄청난 거리를 달려 경이로운 자연 풍광의 입구까지 와서 결국 원하는 것은 미니 골프를 하거나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이라는 걸 간파한 상인들에 의해 이 마을(개틀린버그)은 번성했다.

->우리의 휴가 문화(실은 개발, 성장, 발전 논리까지)라는 것이 미국을 답습하고 있다.

 

166. 세계가 항상 움직인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미국에서 변화의 속도는 그저 현기증이 날 뿐이다.

 

167. 오늘날 미국의 모든 사무실과 상가의 절반은 1980년대 이후에 세워진 것이다. 딱 절반이다. 건물의 80퍼센트가 1945년 이후에 세워졌다. 미국의 모텔방 23만 개가 지난 15년에 건축되었다.이제 이 모든 것을 애팔래치아 트레일과 비교해보자. 우리가 종주할 시점에 애팔치아 트레일은 59년이 되었다. 미국식 기준에 의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명예로운 것이다.

 

168. 미국에 있는 그 어떤 것도 그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상품이나 사업도 끊임없이 스스로 개조하지 않으면 더 크고 새롭고 그리고 거의 항상 더 추한 것에 의해 잠식당하고 버림받고 밀려나고 만다. 그래서 오래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좋은 것이다. 60년이 지나서도 조용히 숨쉬면서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도 찬란하고, 창설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도 의식하지 않은 채 버티어 오지 않았는가. 그건 정말 기적이다.

 

168-175.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내 앞에 펼쳐져있는 모두 120센티미터의, 무릎에서 머리 끝까지 닿는 트레일의 전장(全長)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의 길이는 밑바닥 5센티 밖에 안된다

제기랄!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게 없네.

->카츠의 등산화 끈이 필요해서 간 등산용품점 벽에 14개 주를 관통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전도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도 앞에 바짝 다가간 브라이슨은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집 뉴 햄프셔를 떠나온 이래 트레일의 전모를 그려본 적은 없었다. 벌써 오랜 기간을 추위와 싸우며 고통스럽게 걸어왔는데 여태 걸은 거리가 전체 트레일 120센티의 5센티에도 못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기분이 어땠을까. 좀 더 들어보자.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채 말없이 앉아있었다.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고 극복해온 것, 모든 노력과 수고와 고통, 습기, , 지긋지긋한 국수, 눈보라, 네리 앨런과의 지겨운 밤, 끊임없이, 지루하게, 끈덕지게 쌓아온 마일리지, 그것이 고작 5센티미터였다. 머리카락도 그것 보다 더 자랐을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는 결코 메인 주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 했는가.

 

한편으로 그건 해방이었다. 트레일의 전 거리를 다 걸을 수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고역-조지아 주에서부터 메인 주까지 울퉁불퉁한 땅을 한 뼘 한 뼘 걸어야 하는 지루하고 정신 나간 일-은 이제 끝났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아무리 이렇게 변명을 해도 그건 합리화일 뿐이다. 그들은 정말 중간에서 탈락하고도 스스로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난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식사 후 갑자기 열린 가능성을 놓고 연구했다. 우리는 (트레일의 일정 구간을 뛰어넘어) 언스트빌 근처의 스파이비 갭으로 직행하기로 했다. 바글바글 사람이 들끓는 스모키 대피소와 엄격한 규정을 떠나 바로 즐겁게 등산할 수 있는 세계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택시 전화번호부를 뒤져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 그러나 그들은 생각을 다시 바꾸어 모든 트레일을 건너뛰고 버지니아 주로 가기로 했다. 그것은 이틀 전 대피소에서 만나 누군가로부터 버지니아 트레일의 평이함과 셰넌도어 강을 따라 펼쳐지는 기막힌 풍광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합리화는 계속된다. 속으로 켕기지 않으면 변명은 그치는 법이다.

 

183. 운동화 신은 할머니가, 우드로라는 이름의 인간 비치볼이, 그리고 3 9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캐터딘까지의 종주에 성공했는데 우리가 그 욕구를 포기한 기분은 어땠을까. 사실, 괜찮았다. 우리는 여전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는 중이었다. 단지 전부를 걷지 않았을 뿐이지. 당신이 믿건 말건 카츠와 나는 이미 50만 발자국을 찍었다. 그리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어떤지 알기 위해 앞으로 450만 발자국을 더 찍어야한다는 건 필수적인 일은 아니었다.

-> 그래서 그들은 택시 기사와 함께 녹스빌로 갔고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개틀린버그 시내를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놀았다. 어제만 해도 깊은 숲에 있던 그들이었다. 느낌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183. 기묘한 대조였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이니까. 실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했다. 물론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활발한 도시와 복잡한 공장들, 붐비는 고속도로가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눈이 미치는 범위 안의 모든 것이 나무인 곳에 있으면 숲이 지배를 한다. 그러나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얼마나 기만을 당했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단지 숲과 산은 배경일 뿐이다.

 

193. 나무는 덩치에 비해 상당히 민감한 존재다. 내부적인 생명은 오로지 껍질 바로 안쪽의 종이만큼 얇은 3개의 조직층, 즉 체관부, 목질부, 형성층 안에서만 존재한다. 얼마나 크게 자라든 나무는 단지 뿌리와 나뭇잎 사이에 엷게 퍼져있는 몇 파운드의 살아있는 세포에 불과하다. 3개의 부지런한 세포층은 모든 복잡한 과학과 공학의 집합체다. 야단법썩을 떨지도 않고 숲의 나무 한 그루는 엄청난 양(큰 나무의 경우 수백 갤런)의 물을 뿌리로부터 나뭇잎으로 빨아올려 대기로 돌려준다. 소방서에서 그만한 양의 물을 빨아올리기 위해 기계를 가동할 경우 생겨나는 소음과 소동, 그리고 혼란을 상상해보라..자연은 그렇게 작동한다.

-> 나무에 대한 예찬을 한없이 늘어놓던 저자,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재치가 넘친다.

 

195. 그러나 여기서 멈추자. 여러분이나 나나 과학에 대해 너무 알려고 하지 말자. 그래도 이것만은 간직하자. 애팔래치아 숲을 지날 때마다 거기 서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것을!

 

199. 먼저 대피소를 사용한 사람이 그레이엄 그린의 페이퍼백판을 두고 간 걸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뻤고 정말로 감동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 둘 다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수준의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하루에 24-26킬로를 주파했다통증이나 물집이 내 존재의 일부분이 되는 경지에 이르러, 이제는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199. 첫 날에는 등산이 끝날 무렵 자신이 조금 지저분해졌다는 걸 의식한다. 다음 날에는 지저분해졌다는 게 불쾌해진다. 그 다음날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 다음날에는 지저분하지 않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린다. 배고픔도 규정된 단계를 따른다. 첫날 밤에는 국수를 갈망한다. 다음날 밤에는 배는 고프지만 국수를 원하지 않는다. 그 다음날 밤에는 국수를 먹고 싶지 않지만 다른 뭔가는 먹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 다음날 밤에는 전혀 식욕을 못 느끼지만 그냥 먹는다 그리고 수시로 진짜 세상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203. 우리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20분 걸을 때마다 우리는 미국인이 평균 일주일에 걷는 것보다 더 걷는 셈이 된다. 집 바깥을 나서기만 하면 거리가 얼마가 되든, 무슨 목적으로 나가든 외출의 93퍼센트가 차에 의존한다. 요즘 미국인의 평균 보행거리는 일주일에 2.24킬로, 하루에 320미터 밖에 안된다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 어느 누구도 걸어다니려 하지 않는다. 5백미터 떨어진 직장을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백미터 떨어진 체육관에서 러닝머신에 올라타기 위해 차를 몰고 가서는 주차할 공간이 없다고 심각하게 열을 내는 사람이 있다.

-> , 이 수치가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겠다. 외출을 하지 않는 날이면 나는 집안에서 먹고 싸고 최소한의 일들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일을 빼고는 일부러 산책을 나가거나 운동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마음이 내킬 때, 혹은 가끔 이래서 되나 하는 위기의식을 느낄 때 일부러 하는 운동을 제외하고는 엉덩이를 책상에 붙이고 앉아있는 일이 전부다. 작년에 요가 학원에 반 년 열심히 다녔고, 계단을 열심히 오르내렸고, 주차는 되도록 멀리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새 이전의 습관으로 돌아와 있는 나를 본다. 이 글을 읽으니 각성이 생긴다. 다시 계단을 이용하고, 주말에 등산을 가고, 동네는 되도록 걸어다니고, 집안에서 하는 스트레칭이라도 더 열심을 내봐야겠다. 몸은 얼마나 주인에게 잘 길들여지는지. 내가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내 몸 역시 탄력을 금방 되찾을 것이다.      

 

253. 프런트 로얄까지 걸으면 아내가 이틀 안에 우리를 태우러 온다. 나는 다른 일 때문에 한달 간 등산을 그만두어야하고, 카츠는 디모인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는 여름철 공사판에서 일자리를 구해둔 상태로, 8월에 복귀해 나와 함께 메인 주의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를 함께 종주하기로 했다우리는 애미캘롤라를 떠난 이후 800킬로미터, 125만 발자국을 걸어왔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등산가다. 우리는 숲에서 똥을 누었고, 곰들과 함께 잤다. 우리는 산사람이 되었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256. 내가 숲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5월말, 6월초였다. 나는 집 주위의 숲으로 산책을 떠났다.

 

310. 나는 새로운 결의와 각오, 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트레일에 복귀했다. 카츠가 나와 함께 메인 주의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를 종주하기 위해 돌아올 때까지 7주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뉴잉글랜드를 등산할 계획이었다.

 

318. 내가 아는 전부는 때때로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는 것 뿐이야. 하지만 그게 인생을 흥미롭게 하지. 알아? 나는 정말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공짜로 음식 대접을 받았지.-치킨 존(트레일을 앞에 두고도 찾는, 항상 트레일을 잃어버리는 괴이한 등반가, 브라이슨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거의 5개월을 걷고 있었지만 아직도 캐터딘까지는 1/4이 남아있었다)

 

320. (엄청나게 달겨드는 혹파리 때문에 고생하며) 인간의 땀은 그들에게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 환희의 절정을 제공하고, 방충제는 오직 그들을 더욱 흥분시킬 뿐이었다.

 

321. 그레이록은 애팔래치아에서 가장 문학적인 산이다. 허먼 멜빌이 <모비딕>을 집필한 곳이고, 매기 스타이어와 론 맥카도가 지은 <산 속으로>도 그렇고, 나다니엘 호손과 에디스 와튼도 근처에 살면서 집필을 했다. 1850-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뉴잉글랜드와 관련된 문학가 중에 그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그레이록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327. 나는 트레일에 기계를 갖고 다니는 사람을 싫어한다. 몇몇 애팔래치아 트레일 등산객들이 랩톱 컴퓨터와 모뎀을 가지고 다니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일 보고를 전송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바 있다. 조금 전에 병상에 누워있다 바로 트레일로 온 것처럼 맥박을 재기 위해 전깃줄을 몸에 둘러야 하는 감지기나 에비로 모니터와 같이 전자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이 책에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다는 것이 놀랍다. 기행문이라면 의당 사진을 기대하는독자로서는 조금 불편할 듯 싶다. 그렇지만 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소통 방식인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글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그의 뚝심을 보는 것 같아 한편 반갑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나 역시 아날로그 세대라서 그런가.

 

362. (드디어 카츠와 다시 등반을 시작하는 날) 완전 배낭을 멘 것은 거의 4개월 만이다. 나는 그 무게를 믿을 수 없었다. 아니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그 압박은 즉각적이었으며 실의에 빠지게 했다. 그래도 나는 형편이 나았다. 계속 등산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츠에게는 너무나 분명했다. 그는 출발점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366. 카츠가 텐트를 치는 동안 나는 식사 준비를 위해 물을 길러 갔다물가에서 무릎을 굽히자 내 왼쪽 어깨 너머의 숲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4-5미터 떨어진 그늘진 덤불 속에서 말코손바닥사슴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서로 한참 바라보았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그 놈은 상대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매혹되었다.

 

374.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것은 내가 일생에서 시도한 것 중에 가장 힘든 일이고, 메인 주의 구간은 애팔래치아 트레일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384. 나는 격분했다. 최근 수년 동안 무엇에든 그렇게 화가 난 적은 없었다. 나는 그가 다시 음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모든 것- 그 자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심각하고 어리석은 배반이었다.

 

389. 우릴 트레일 입구까지 태워주기로 한 키스의 밴을 기다리는 동안 우린 마치 재산권 분쟁으로 법정에 불려나가길 기다리는 앙숙처럼 어색한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386. 숲은 더욱 불길하고 수심에 잠긴 듯했다. 명백히 남쪽의 숲과 달랐다. 더욱 어둡고, 그늘지고, 녹색보다 흑색에 가까웠다나무들은 추하게 생겼고 사악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험이었다. 불안하게 다가오는 곰과 꽁무니를 따라오는 뱀, 빨간 레이저 눈을 가진 늑대, 괴기스런 소리와 갑작스런 공포의 숲, 소로가 깔끔하고 소심하게 묘사한대로 멎어있는 밤(standing night)의 숲이었다.

-> 카츠와 불편한 감정을 아직 정리 못한 그의 심리 상태가 자연을 보는 눈까지 바꾸어 놓았다.

 

390-391 브라이슨, 난 정말 노력하고 있다고, 정말이야, 하지만내가 버지니아를 떠나 디모인으로 돌아가 집짓는 공사판에서 일할 때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선술집으로 달려가곤 했지. 그들은 항상 나보고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지. 안돼, 친구들, 나는 술을 끊었어. 그런 뒤 작은 아파트로 돌아와 냉동식품을 데우고 나면 내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고결해진 느낌이 들었지. 그러나 그런 일을 매일 밤 되풀이하고 나면 무어 풍요롭고 흥미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스스로 납득하는 게 어렵게 되거든. 만약 인생의 재미를 재는 기계가 있다면 냉동식품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바늘이 오르가슴 구역으로 훌쩍 올라가진 않을 거 아냐. 그래서였을 거야,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는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지. 하지만 긴 하루 끝에 마시는 맥주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잖아. 친구들은 꼬셨지. 이봐 맥주 한 잔 하라고, 마시고 싶잖아. 한 병 마신다고 해로울 거 없잖아. 3년 동안 안 마셨는데 이제 통제할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어. 그들은 내 맘이 약해진 걸 알고 나를 잡아챈 거야. 내가 여전히 숨쉬는 걸 알고서…’

하지만 브라이슨, 나는 술을 좋아하거든. 어쩔 수가 없어. 내 말은 나는 그걸 사랑해. 그 맛을 사랑하고, 두 병 마셨을 때 취하는 기분을 사랑하고, 선술집 냄새와 분위기를 사랑해. 나는 음담패설과 주변 당구대의 공이 부딪히는 소리, 밤에 술집의 어두침침하고 푸른 빛 도는 분위기를 그리워했어.

 

398. (그런 다음 숲 속에서 함께 걷던 카츠가 길을 잃었고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후에 어떻게도 구조할 방법이 없어 낙담한 브라이슨) 나는 그를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가 길을 헤매는 모습을 그려보지 않기로 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대신 나는 바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았다. 호수는 고통스럴 만큼 아름다웠다.  

 

405. (다음날 어렵게 서로 만난 두 사람, 카츠가 말했다)

네가 나타났을 때 정말 기뻤어. 사실 내 인생에서 벌거벗은 여자들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이렇게 기뻐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그의 표정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니?

, 돌아가고 싶어.

나도 그래.

그래서 우리는 트레일을 떠나기로 했고 우리가 산사람인 것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결코 아니니까.

 

407. 그래서 우리는 캐터딘을 보지 못했다. 단지 먼지 풀풀 나는 도로를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로 쿵쿵거리고 거칠게 달리는, 아마 시속 110킬로는 될 법한 속도의 픽업트럭 짐칸에서 잠시 그 흐릿한 윤곽만 보았을 뿐이다.

 

411-414.

그래 트레일을 포기해서 기분이 어떠니? 카츠가 물었다.
확실치가 않아 잠시 생각했다. 나는 애팔래치아에 대해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그것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그들의 광대무변함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끝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했지만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보았으면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나 항상 그랬다.

너는 어때?

카츠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아는 한 말이야,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어. 눈 속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남부에서도 걸었고, 북부에서도 걸었어. 내 발에 피가 나도록 걸었어.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어 브라이슨!


우리의 여행은 메인 주의 밀로에서 캔 크림 소다 6개로 끝났다. 카츠는 디모인의 아파트와 공사판, 그리고 술을 끊은 명징한 삶으로 돌아갔다. 나는 10월 중순 낙엽이 절정에 달했을 때 버몬트 주의 킬링턴 피크로 마지막 등산을 다녀왔다. 영광스러운 날들이었다나는 열정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신선한 공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킬링턴 산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내 발 밑으로 자유분방하고 잘 관리된 트레일 3 520킬로가 거의 똑같이 장엄한 숲과 산봉우리들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신이, 내가 태어난 대지를 얼마나 편애하는지 이보다 더 선명하게 느낀 순간은 내 일생에 없었다. 그곳은 멈추어야 할 완벽한 곳으로 보였다.

 

415. 나는 1 392킬로를 주파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절반도 안되는 거리다나는 요즘도 일이 잘 안풀리면 집 근처의 트레일로 등산을 다녀온다.

 

숲은 아름답고 찬란할 뿐 아니라 더 이상, 개량의 여지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 이걸 느끼기 위해 수 킬로미터를 걸어 산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 눈보라를 뜷고 기신기신 걸을 필요도 없고, 진흙 속에 미끄러질 필요도 없다.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널 필요도 없고 매일매일 체력의 한계를 느낄 필요도 없다

-> 종주하지 못했어도 산을 자체로 사랑하고 즐길 수 있으니 충분하다고 자위한다. 그러면서도 끝내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는 브라이슨. 자위먀말로 최대 방어인가.

 

416. 물론 아쉽다. 케터딘까지 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언젠가는 갈 거라고 비록 다짐은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나는 딱 한 번만이라도-살아남을 수 있는 보장만 있다면(ㅋㅋ)-정면으로 죽음을 돌파하고 싶다. 어쨌든 많은 경험을 축적했다. 텐트를 칠 줄도 알게 되었고, 별빛 아래서 자는 것도 배웠다. 몸도 튼튼해졌고 날렵해졌다.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 깊은 존경도 느꼈다. 전에는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있는 줄 몰랐던 용기와 인내심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를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를 걸었다.



나를 부르는 숲[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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