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이야기/산행기

설악산 서북능선(07.6.17)

여름숲2 2007. 6. 24. 17:25

산행지: 설악산 서북능선

일시 : 2007.6.17(금)

코스 : 한계령휴게소- 한계령 - 귀때개청봉- 장수대 -하산

함께한 이 : 나, sK

교통편 : 88고속도로 -양평(6번)- 홍천(46번) - 인제 - 한계령휴게소

지도 :

 

 설악은 아직도 생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육중한 바위에 깔린 한계령길의 계곡은 얼마나 지나야 물줄기를 드러낼 지 까마득해보였다. 지난 여름의 수해는 아직도 현재형이다. 작전 지역에 들어온 듯 곳곳의 도로가 공사중이었고, 처음 작정했던 장수대 출발은 주차장 공사가 안되어서 한계령으로 변경해야 했다.

 전날 백담사 입구에서 자고, 6시 30분쯤 한계령에 도착했다. 포장마차에서 간단하게 우동과 오뎅으로 요기를 한 후, 휴게소 옆길로 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게 7시였다. 어제까지 허리가 아팠는데, 괜찮을라나?

 조심조심 한계단씩 오르노라니, 양 옆으로 하얀 함박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었다. 길가에는 노란 마타리꽃이 맞이하고.

한계령 길은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지만, 사면을 계속오르는 것이 아니라, 굽이 굽이 돌아가며 다른 봉우리를 찾아가는 길이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각오한 탓인지, 허리도 무사하고, 생각보다 빠르게 안부에 도착했다. 멀리 설악의 능선이 펼쳐지며 유혹하고 있었다. 산악회에서 온 팀들은 안부에서 대청봉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는 그들로 정반대로 장수대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호젓한 산길이 시작되었다.

오솔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장엄한 골격을 보여주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아침햇살을 받아 선명하게 몸을 일으키는 공룡의 등뼈를 보며 마음이 벅차올랐다. 다음에는 저 능선에 서서 이 서북능선을 보리라!

 아름다운 오솔길은 처음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베푼 친절이었을 뿐, 본심은 다른 데 있음을 곧 보여주었다. 너덜바위!  아... 지긋지긋한 너덜바위였다. 너덜바위를 온 몸이 너덜거리도록 탔다.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는 길은 뻔히 보이는 산 정상을 향해 끝도 없이 계속되는 너덜바위를 밟고 지나야 했다. 큼직한 바위를 잘못 딛기라도 하면 금새 발목이 나갈 것 같아 조심조심 걸었다. 결국 여기에서 SK는 발목을 삐끗했고. 서북능선을 타는 내내 힘겹게 씨름해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무가 없어 설악의  전모가 한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자랑했다. 하늘은 티 한점 없이 맑고, 바람은 인심좋게 불었으나, 오뉴월의 땡볕은 사나웠다.

 야전식량에 물을 붓고 마지막 힘을 다하여 귀때기 청봉에 올랐다. 11시 30분!  정상부는 키작은 관목과 여름들꽃들이 한창이었다. 꽃들에게서 눈을 돌려 산을 둘러보니 동서남북 거칠 것 하나 없는 장쾌한 풍광이 펼펴�다. 동쪽으로는 공룡능선이 서쪽으로는 안산, 가리산, 뾰족봉이 , 남쪽으로는 점봉산이 눈에 담기 벅차도록 피어났다. 여기가 오늘의 정상이려니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나자 이제 하산하는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오만한 판단인가? 서북능선은 이제 겨우 시작인 것을....

 너덜바위 지대가 끝나면 능선에 걸맞은 오솔길이 펼쳐지겠지 하는 소박한 기대를 갖고 출발한 길은 그야말로 험난한 바윗길이 태반이었다. 이것이 아래로 내려가는 능선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험한 바윗길을 올랐다 내리기를 수십번!  결국 스틱을 접고, 릿지등반하는 자세로 걸었다. 바위가 나오면 타 주고, 로프가 나오면 잡아주고, 급경사가 나오면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난관을 극복하고, 수직 계단이 난간도 없이 펼쳐지면 기어서라도 오르고 내리고, 인심좋게 오솔길이 나오면 최대한 속력을 내는, 그야말로 산 넘어 또 산이었다.

 점심을 먹는 시간은  전투치르듯 했다. 준비한 점심이 군대용 야전 식량인 '볶음밥'이었고, 덤벼드는 왕파리와 전투를 치루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준비한 술은 한방울도 입에 댈 수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어떤 복병과 만날 지 모르는데 술에 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먹는 즐거움을 반납한 대신 눈으로 호사를 누리는 수밖에 없었다. 

 길은 길고 멀었다. 2시간 30분이라고 써 있는 능선주파시간은 턱도 없었다. 혹시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무렵 '안산'이 보였다.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안심이 '안산'을 보고야 들었다. 마지막 고비(난간없는 급경사 계단- 지금 한창 공사중이었다)을 지나 한고비 숨을 돌리고 나니 장수대 내려가는 안부였다. 3시 30분이었다. 한계령 안부부터 시작하면 5시간 30분이 걸린 셈이었다.

 휴~

 다시 스틱을 꺼내 양손에 잡고, 제대로 속도를 내보기로 했다. 앞서가는 사람들을 앞지르며 무모하게 달려가는 나의 모습은 선수(?) 같지 않았을까?  거의 빨치산의 여전사가 내었을 법한 속도로 내려가다 보니, 한계령 휴게소에서 함께 출발했던 산악회 회원들을 다시 만나 앞지르게 되는 역설을 연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뿔사! 내려가는 데만 한 눈 팔다 보니 '대승폭포'를 놓쳐 버렸다. ㅎ ㅎ

'그 포도는 시어서 못먹을거야'라던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나도 한마디!

'에이! 대승폭포라야 괭이 오줌같은 물줄기만 내려올텐데...뭘!  아까 본 그  절벽-그거가 대승폭포야' ㅋ ㅋ'

 장수대 매표소에 도착하니 5시, 한 10분 지나니, 아까 위에서 부른 택시기사가 온다.

만사 오케이다!  한계령으로 돌아가 차를 가지고 홍천길에서 봤던 '화로구이'를 먹었다. 그냥 그렇더군!

아! 오늘도 다 지거다! 내일은 어디로 갈거나! 올해는 설악에 올인하리!

 멀리 소청이 보이고

 

 가리산과 뽀쪽봉

 

 귀때기청봉

 

 공룡능선

 

 요강나물

 

 산앵도나무

 

 

 세잎종덩굴

 

 ㅋㅋ

 

 매발톱나무

 

 터리풀

 

 정향나무

 

 두루미

 

 풀솜

 

 범의 꼬리

 

 당조팝나무(자신없어요)

 큰앵초

 

 바람꽃

 

 금마타리

 

 삿갓나물